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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cobalt Jan 06. 2023

나의 방이 생겼습니다





   나의 방이 생겼다. 사실 아직도 공용의 방이지만, 공용의 방 한 편의 '나만의 공간'이라고 해야겠다. 나와 남편, 그리고 셋째 아이의 침실이고 나의 책장, 옷장이 있고 어느샌가 내 책장에 책은 두 겹으로 꼽고 남은 공간은 아이들의 책이 들어왔다. 집안 어디에도 나만의 공간은 없었다. 첫째 아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남편이 이케아에서 아이 책상을 사 오면서 내 책상도 사 왔다. 남편은 하루종일 가구를 조립하는 노동 끝에 침대 아래 아이들 놀이공간이었던 텐트를 치우고 나의 책상을 놔주었다. 

    별 기대 없이 마침내 완성된 방 한 편, 나의 공간을 마주했다. 왜 집 인테리어를 다시 해주는 tv 프로그램에서 엄마들이 눈물을 흘리는지 이해가 되었다. 너무나 오랜만에 가져본 나의 공간 앞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남편은 내 책상에 올리브 나무와 자기 사진, 그리고 내가 예쁘다는 이유로 구매했지만 우리 집과는 어울리지 않았던 스탠드를 올려놔 주었다. 내 책상 하나 놓은 것뿐인데, 내 공간이 생긴 것 같았다. 그리고 나의 일상에 큰 변화가 시작됐다. 

   간소한 나의 공간을 갖게 되니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고 아이들을 보내고 저 공간에 앉아 무슨 책을 읽을 까, 어떤 글을 쓸까 나의 일상을 기대하게 됐다. 나의 공간을 완벽하게 정리해 놓고 보니 왜 그리 내가 집안 곳곳을 청소하느라 시간을 보냈는지도 이해가 됐다. 내가 편안하게 혼자 앉아 있을 공간이 없으니 이리저리 방황하다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고 눈앞에 거슬리는 것들을 치우며 집 청소나 했던 것 같다. 내 공간에 안착하니 그 밖에 다른 공간은 그대로 둘 줄도 아는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보내는 얼마 안 되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기에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게 됐다. 가만히 있다가도 입꼬리가 올라가고 미소가 번졌다. 

   나만의 공간이 생겼으니,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축사처럼 읽기로 했다. "여성이 소설을 쓰려면 반드시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라고 울프는 말했다. 대학에서 울프가 한 강의 바탕으로 쓰인 에세이집, <자기만의 방>은 1929년에 쓰였는데도 여전히 유효한 주장들이 많다. 울프는 글을 쓰는 여성이 자기의 방 또는 서재 없이 공용 거실에서 온갖 소소한 방해를 받아가며 글을 써야 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브론테 자매도, 제인 어스틴도, 조지 엘리엇도 분산된 시간, 그리고 공용의 공간에서 글을 썼다는 것이다. 이제 대부분의 여성 작가들은 울프처럼 상속받은 유산은 아니어도 자기만의 방 정도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 작가'라면 어떨까? 그리고 작가는 아니어도,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엄마라면 어떨까? 그들이 처한 상황은 19세기, 20세기 여성작가들이(혹은 작가 지망생들이) 처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자는 밤에 혹시라도 아이들이 물을 마시러 나오지 않기를, 잠에서 깨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쓰다, 누군가 나오는 소리에 모니터를 닫으며 한숨을 쉴 것이다. 아니면 공용거실에서 가족들의 소음을 들으며 자기 글에 집중하려는 모든 인내심을 발휘해서 글을 써야 할 것이다. 아이들을 어린이집, 학교를 보내놓고 식탁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다가도 '공용 공간'의 어수선함을 참지 못하고 결국에는 청소를 하게 될 것이다. 

    영미 문학에서 대표적으로 꼽는 여성 작가들 - 에밀리 브론테, 샬롯 브론테, 조지 엘리엇, 제인 어스틴,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 그 누구도 아이가 있는 작가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대에도 작가 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자유롭게 글을 쓰고 싶다면, 누가 아이를 낳으라고 했나?"라고 물을 수 있지만, 어느 삶이나 기록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 엄마일지라도 말이다. 

      울프는 "언제나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세상에 내보냈습니다. 그중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전부 사라져 버리지요...."라는 노부인의 말을 옮기며 말한다. "나는.... 이런 무한히 애매한 인생사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안다. 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아이들을 키우는 것도, 글로 남기다 보면 그 글들은 엮여 한 책으로 묶일 수 있고, 엄마는 '그냥 먹고 입히는' 인생사에서 보다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자기만의 방>을 통해 울프가 큰 지지를 해 주었다. 여성은 돈과 자기만의 방이 없으니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 한쪽 귀퉁이에라도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 "일시적이고 개인적인 것들을 재료 삼아 굳건하게 남을 튼튼한 건축물"을 지으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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