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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cobalt Jul 04. 2023

공간에 삶이 담긴다

피크닉 전시 <Visite Privee> 리뷰

알라르의 집, 아를, 2020.

   좋은 전시를 보고 나면 여운이 깊고 오래간다. 어떤 때에는 좋은 여행을 다녀온 뒤 서울에 도착해서 느끼는 생경함처럼 내 주위 현실이 생경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번에 보고 온 전시 <Visite Privee>는 아주 오랜만에 깊고 진한 감정을 느끼게 해 주었다.

    전시 <Visite Privee>는 'privee', 프랑스 어로 '사적인'이라는 뜻으로, 프랑스 사진작가 프랑수아즈 알라르가 사람들의 사적인 곳, 집을 방문하여 찍은 사진전이다.

    알라르가 "내 사진에 장소를 담고 싶지 않다. 장소가 지닌 분위기, 영혼, 그리고 감정을 담고 싶다"라고 말한 바 있듯이, 그의 사진들은 우리가 흔히 인테리어 사진이라며 보는 집이나 물건을 과시하는 집이 아닌, 사람의 삶을 담은 공간이었다.

    대부호의 집들과 코코 샤넬, 이브 생 로랑, 마크 제이콥스, 데이비드 호크니등과 예술가의 집은 일반적인 사람이 흉내 낸다고 해서 닿을 수 없는 취향과 공간 작품들이다. 그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낡고 오래된 루이스 부르주아의 뉴욕 아파트나, 바랜 벽지에 무심코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 책상, 쌓아둔 책들, 빛바랜 가구들이 있는 예술가들의 집들이다.  그 공간들이 숨 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조르조 모란디의 집, 볼로냐, 2017.

    특히 당대 미술사조에 관심을 두지 않은 채 그릇이나 병, 도기와 같이 일상적인 사물을 고요하게 그린 조르조 모란디의 4평 남짓한 집은 그의 사색적인 작품들과 닮아있어 오래되고 빛바랜 그의 가구와 물건들을 바라보고 있게 된다. 

   금욕적이고 수도사와 같은 절제된 인생을 산 모란디의 공간은 말없이 그의 삶을 반증하고 있었다. 일상적인 도기와 물컵, 물병 등의 정물화를 주로 그린 모란디의 소품 하나하나가 일상적이고 더 특별해 보이는 이유이다. 손때 탄 가구들과 사물들은 말없이 그를 추억하고 있다. 

    

   






라 쿠폴라, 이탈리아, 2020.

모란디의 작은 방과는 대조적인 인상적인 공간도 있다. 영화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와 배우 모니카 비티는 지중해 바다를 품은, 직선이나 모서리가 없는 완전한 유기적인 형태로만 은신처'라 쿠폴라'를 만들었다. 오로지 곡선으로만 만들어진 동굴 같은 공간에서 사랑을 하는 두 남녀. 생각만 해도 며칠이고 그렇게 서로를 보듬고 끌어안고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오래가지 않아 끝나고, 라 쿠폴라는 무참히 버려지고 만다. 이토록 이상적인 공간 안에 담길 사랑이 부족했던 것일까, 아니면 공간이 사랑을 담기에 너무 장대하고 허황된 것이었을까.

       폐허가 되어 버린 사랑의 공간은 불꽃같은 사랑 뒤에 오는 다타버린 잿빛을 간직하고 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집, 아무도 살지 않는 집에서 느껴지는 쓸쓸함을 넘어선 공허한 감정이 밀려온다.

     고대 그리스를 동경한 나머지 가구, 식기, 조각과 벽화 모두 고대 그리스 인이 살았던 것 처럼 꾸며 놓은 고고학자 테오도르 라이나흐의 집,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는 디자이너 드리스 반 노튼의 아름다운 정원과 풍성한 꽃으로 장식된 실내...., '나의 공간'은 한 개인의 공간적 확장이기에 이 전시는 당신의 공간은 어떠한지, 어떤 공간을 만들어 나가고 싶은지 묻는듯 했다.

좌측은 석유재벌 슐룸베르거의 딸 도미니크의 집, 우측은 앤트워크 인근에 있는 12세기에 지어진 성, 악셀 베르보르트의 집.

    위의 두 공간은 매우 다른 두 공간이지만, 두 공간 모두 사색, 독서, 대화, 진정한 쉼이 가능할 것 같은 공간이다.  집주인의 예술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풍요로운 삶이 엿보인다. 사람이 공간을 만들지만, 공간의 형태에 따라 우리의 삶도 빚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공간의 거주자들을 닮은 공간이었다. 똑같은 아파트에, 소파 앞에 가장 럭셔리한 tv가 위치한 공간에서는 우리의 삶도 그렇게 형성되고 있는지 모른다. 하루하루, 같은 일을 반복하며 도기를 물레에 정성 들여 빚듯이 그렇게 만들어 가는 개개인의 삶의 형태가 각각의 취향과 영혼만큼이나 다양하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빚을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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