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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연스레 Aug 31. 2020

3. 우라질 역병, 네놈을 끝까지 쫓아갈 테다!!

단서는 무조건 남아있다.


쓸모없는 기록은 없다.


의료진들은 질병 관련하여 환자에게 수많은 질문들을 하게 된다.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X-ray, CT, MRI, 초음파, 혈액 등 기록 외에도 환자의 답변이 때론 진료 방향과 방법의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원인 불명의 희귀병(에반스 증후군)이라서 내가 기억하는 증세와 상태가 모두 참고 대상이 되었다. 되도록 의료진에게 정확히 답변을 하고자 노력했고, 실제로 모범 답안이었다는 칭찬을 듣기도 했으며 그중 몇 가지는 결정적이라 했다. 칭찬은 소중해 :)




2019년에는 건강검진 대상자라 12월에 혈액검사를 받았고, 이상 무였다. 그렇담 역병의 시작은 올해 2020년부터다. 여기에 추가로 2020년 1월과 2월 사이에 발병한 사실을 잡아냈다.


에반스 증후군의 대표적인 증상이 온몸에 멍이 잘 든다 (혈소판 감소로 인해) & 어지럽고 숨이 가쁘다 (용혈성 빈혈로 인해) 두 가지인데, 나 역시 두 증세가 있었다.

문제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느냐?인데, 기억이 들쭉날쭉했다. KF94 마스크를 쓰고 다닐 때도 호흡에 어려움을 느꼈고, 멍은 원래 자주 있어 신경을 안 썼다.


단서는 “운동일지 사진첩 폴더”에 있었다.

셀프 기록용으로 요가 수업 시작 전에 ‘타임스탬프’ 어플을 사용하여 같은 장소에 앉아 한 컷씩 찍어 폴더에 모아놨다. 첨엔 백수되서 근무 시간에 요가 수업 왔다는 것에 감격하여 남기기 시작ㅋㅋ 나중엔 루틴이 돼서 항상 찍어 버릇했다.


사진이 찍힌 총기간은 2019년 11월 26일부터 2020년 6월 24일 (건강검진 전날)까지 였고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요가 수업을 참석했다. (코로나 19 휴강 기간인 2월 22일부터 5월 8일 까지를 제외)


이것들을 생각 없이 한 장 한 장 보다 2월 18일 사진에서 양팔에 생긴 멍들이 최초로 발견되었다. 우어 유레카!!


건강검진 전날 사진이 끝이다. 다시 요가 수업 듣는 날을 고대한다 ㅜㅜ


꼭 SNS 용이 아니더라도 셀프 기록용으로 내 몸, 얼굴을 OOTD, 눈바디, 운동 인증샷 등을 다양한 형식으로 자주 혹은 매일 남기기 추천해본다.

처음엔 멋쩍기도 귀찮기도 하고 굳이??라는 생각에 카메라 꺼내기 어렵지만, 사진 기록이 쌓여 나의 역사를 만들고 있다는 점에 흥미로워진다. 이렇게 엉뚱한 단서를 주기도 하고 ㅎㅎ 혼자 볼 거니까 보정 어플 켜지 말고 적나라하게 찍어서 폰 사진첩 깊숙한 곳에 모으는 걸로ㅋㅋ

소소한 Love myself :)




 

2020년 굿잡 어워드 상반기 편에서 1위가 ‘뜬금없이 건강검진받기’라면 2위는 ‘두통 일기’다.


올해 초부터 갑자기 편두통이 찾아왔다.

편두통이 사람 잡는다더니.. 와따매!! 한쪽 관자놀이가 아프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구토까지 이어졌다. 타이레놀 등의 두통약이 전혀 듣지 않았고 한번 시작하면 꼬박 4~6시간 말도 못 하게 아팠다. 편두통 부위만 도려내고 싶은 심정.. 아파본 이들은 알거다. 으으~~~~ㅠ


어라?? 시간이 갈수록 편두통 발병 텀이 점점 짧아지는 느낌적 느낌?? 점점 혼자 참아내기 버거워 내원하기로 했다. 내원하기 앞서 내가 겪고 느낀 편두통을 정리해봤다. 시간 들여 간 병원에서 “요즘 자주 스트레스받으시나요?”라는 추상적 질문보다는 찰떡같은 설명을 듣고 싶었다.


머리 아플땐 폰 만지기도 싫어 굴러다니는 수첩에 편두통 일지를 쓰기 시작. 날짜/발병 시간/증세/고통 강도/먹은 약 등을 나만 알아볼 정도로 대충적 자세히?ㅋ 휘갈겼다.


어느 병원을 내원해도 항상 수첩을 가져가 의사 선생님의 코멘트들을 기록했다. 이 수첩은 입원 후 병상일지로 바뀌게 되는데, 매일의 컨디션/치료 내용/치료약/질병 정보/교수님 코멘트/Q&A 등을 기록하였다. 환자계의 유노윤호.


무엇을 필기하는지 궁금해하는 의료진들도 꽤나 많았다. 한 번은 ‘10ml 투약 예정’ 하고 대충 받아 적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mg 이요... ‘라고 수줍게 정정 요청함ㅋㅋ

필기를 기다려 주시며 천천히 말씀해 주시는 선생님도 계셨다. 다들 FM 범생이셨죠?? ㅋㅋ


병상일지의 일부, 메모도 하다보면 스킬이 좀 더 늘겠지?? ;;


두통 일기(부제:병상일지)는 간단히 메모하는 수준으로 투박히 썼지만 손맛이 더해지니 정이 붙었다.

3년 치 기록이 저장된 생리 주기 어플을 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랄까. 아날로그 감성쓰 ㅎㅎ


아픔을 기록해 본인의 몸 상태를 수시로 체크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굿 포인트 ;) 아아! 나의 편두통은 빈혈에서 출발한 증세였고, 관련 없는 신경외과에서 한 달가량 시간을 허비했다는 것으로 쫑남ㅠ 이 또한 두통 일기에 기록을 상세히 남겨두어 담당 교수님께 보고 드릴수 있었다. 굿잡!


내 기록이 모이면 내 역사가 된다.

쓸모없는 기록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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