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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연스레 Sep 10. 2020

5. 그러라 그래, 그럴 수 있어

우아한 존버 정신


복세편살 :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 (옛 신조어..네?ㅋ)


원인 불명의 희귀 난치병 (에반스 증후군)으로 판정되었을 때 교수님이 물어보셨다.
“최근에 극도의 스트레스나 정신적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었나요? 급성으로 발병한 케이스 대부분은 스트레스가 원인입니다.” 수많은 질병들이 억울하게 랜덤으로 찾아오기도 하나, 스트레스/정신적 충격을 자주 혹은 강하게 받은 사람이 '0순위'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여 말씀해 주셨다.


백혈구/적혈구/혈소판을 스스로 파괴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어떤 정신적 데미지를 받았길래 희귀 난치병을 소환했을까? 도통 모르겠다.




첫 직장에서 만난 사장님은 당시 65세 정도였는데, 별명이 무려 백발마녀 (성별은 남성)였다. 구전으로 전해오길 이 분이 젊은 시절에 로또 맞은 정도의 일생일대 기회가 왔었다. 수십억 대의 계약이 단 하루 미팅을 통해 결정되기에 사활을 걸고 본인을 박박 갈아 넣으며 미팅을 준비했다. 미팅 당일 아침, 정신 차리려 찬물 세수를 하러 갔다 하루 만에 All 백발이 된 자신을 발견. 흑발을 바치고 계약을 따냈다는 백발마녀의 전설이다. 엄청난 중압감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이라...




지인 K 씨는 7급 공무원. 남들은 부러워하는 직장을 다니며 혼자 속앓이를 해왔는데, 본인 말로는 일머리와 센스 부족으로 주변에 민폐를 주는 것이 고민이라 했다. 돌려 돌려 털어놨으나 어째 내 귀에는 ‘직장 내 (대놓고) 따돌림’으로 들렸다. 출퇴근 왕복 4시간 거리에도 주말에 혼자 나와서 떠맡은 일을 하며 본인을 탈탈 소진시켰다. 불규칙 식사와 식욕부진이 반복되더니 결국엔 침샘이 깡그리 말라버렸다. 맘고생으로 인해 바짝 타버린 입안이라...





친구 L군은 패밀리 회사에 다녀 우리 사이에선 “CEO 쎄오아드님”으로 불렸다. 평소에는 멀쩡하다 흥분하고 긴장하면 말을 더듬고 약간의 틱 증상 (같은 말 반복)이 있다는 특이점이 있다. 술자리에서 절친들은 종종 놀려댔고, L군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쳤었다.


한 번은 L군이 운전하는 차를 얻어 탄 적이 있었는데,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사장님 (아버지)이 언제쯤 서울에 도착해서 사무실로 나올 수 있는지 급하게 물어오셨다. L군은 길이 막히니 3시간 정도 잡고 최대한 빨리 가보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여기까지는 평범했는데 그 뒤로 입이 떡 벌어지는 일이 펼쳐졌다. 이미 서울행 도로 위였고, 충분한 답변을 드렸음에도 아버님은 10분에 한 번씩 전화 걸어오셨다. 아마도?? 본인 예상 밖인 상황에 갑자기 화가 나셨고, 점진적으로 커져갔다. “어디냐?”로 시작해서 “도착 예정시간?” “왜 갔냐?” 급기야 “정신이 있는 새 x냐?” (원래 휴가였음;;) 등의 질문이 무한반복. 지져스..아놔!! 결국 L군은 급격히 무너졌고, 말 더듬기가 시작됐다. 그 와중에 내게 미안하다고 반복해 말했다.

나중에 소주 한잔 하며 말해주길 어린 시절부터 성미 급한 아버지한테 시달렸다고 한다. 항상 고함을 치며 “잘못했어 안 했어? 응? 응? 응? 응?” 이런 식으로 계속 다그쳤는데 그때마다 뇌가 경직되며 말이 제대로 안 나왔다 했다(이날 이후 애들이 놀리면 대신 화내 줬다). 극도의 긴장감이 만들어낸 말더듬과 틱 증세라...



타인의 고통을 거울삼아 위안 받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허나 떠올려 보니 강도 높은 스트레스/정신적 충격/트라우마로 인해 몸에 이상이 왔다는 케이스들은 생각보다 흔했다. 희귀 난치병이 웬 말인가 싶다가도 사람 억장 무너뜨리는 병들은 차고 넘쳤고, 이해할 수 없는 증세로 고통받는 이들은 수없이 많다. 반면 극한의 상황에서도 멀쩡히 잘 사는 사람도 역시 많다. 역시 인생사 케바케/사바사/복불복이야!! ㅠㅠ


그렇담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라며 괴로워해 봤자 알아주는 이는 결국 나뿐이네..^^하하;;??이라고 현타가 왔다. 그래.. 지랄 총량의 법칙이 있지 않은가!! ㅋㅋ 인생 전반전에 왕건이 하나 받은 셈 치자. 후반전은 좀 수월하겄지ㅎㅎ.




병이 왜땜시 찾아왔는지 아무리 짱구를 굴려봐도 답은 없었지만 앞으로 어찌 살지는 확실히 감이 왔다.

흠... 대충 생각하고 살기로 했다ㅋㅋㅋㅋ 예에~~

Every thing happens for a reason 모든 일엔 이유가 있겠거니 하면서 말이다. 여태껏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뜻대로 되지 않은 인생, 대충 살자. 어쩌겠는가 병을 무를 수도 없고 함께 잘 사는 요령이나 모색해봐야지 허허허. 3주간 치료를 받았으나 입원 전보다 악화된 몸이 야속하지만 어쩌겠는가 껄껄껄.


먹다보면 치킨씹는 기분이 난다. 정신승리?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ㅋㅋ


염세주의자에서 낙관주의자로 돌아서고자 용쓰고 있을 때 교수님은 반대 행보를 보이셨다. 예에??

2차 긴급 호출을 하셨고, 3주간의 진료가 무의미한 것 같다는 비관적 결과와 함께 의료진 종합 의견을 알려주셨다.

허허허 역시 쉽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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