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사원들요? 한국 시스템 따라옵니까? 영어는 해요?”
내가 따졌다.
“효율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꼭 필요합니다.”
지혜가 바로 대답했다.
“외국인 사원들 늘이는 건 반대합니다. 시스템 적응하는 데 너무 시간이 들고 한국인 직원들과 갈등도 생길 수 있어요. 차라리 한국인 사원 월급을 올려서 많이 모집해야 합니다.”
“외국인 사원들도 시스템 금방 적응해요. 시스템이 어렵지도 않고요.”
지혜가 설명했지만 신경이 거슬린 건 스티브의 깐죽거림이었다.
“비즈니스 모르는... 인건비가 회사 비용에 얼마나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지 몰라요? 지금 비용을 줄여야 할 판에 늘리자는 저 무지한 기술쟁이!”
스티브의 비웃는 얼굴에 나는 참을 수 없었다. 바로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무지한 기술쟁이??? 외부 감사가 왜 우리 회사 경영에 왈가왈부합니까? 대표님!!!”
내가 병훈이 형에게 도움을 청하듯 돌아봤지만 형은 난감한 얼굴로 보기만 하고 있었다. 그 틈새를 타고 스티브가 바로 대응을 해 왔다.
“김 상무님! 지난주 10만 건 배송지연 사건 알아요?”
아차 싶었다. 지난주 10만 건이나 배달이 지연되는 사고가 있었다. 시스템은 문제없이 돌아갔지만 인력이 부족했다. 해마다 주문이 3~4 배씩 늘어나는데 제대로 대처를 못하고 있다.
“우리 빠른 배송으로 시장을 장악한 회사인데 이틀 만에 배송했다고요. 고객 센터에 전화 빗발치고 인터넷에 난리난 거 몰라요? 배상해 주느라 수십억 깨진 거 모르냐고!”
이때다 하고 스티브의 반격에 들어왔다. 할 말이 없었다.
“당신 때문이잖아? 기술 최고 책임자님! 물류 센터 시스템이 받쳐주질 못하잖아.”
화가 솟구쳐 올라 주먹을 쥐는데 병현이 형이 나섰다.
“상무님! 잠시 진정하세요”
입을 다물 수밖에. 병현이 형이 분위기를 정리하며 외국인 사원 채용을 늘리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임원들이 모두 찬성하고 그렇게 정리가 되었다.
스티브의 속셈을 훤히 안다. 사실 회사를 잡어 먹기 위해 왔다. 스티브가 회사 안에서 감사 자리를 요구한다며 병현이 형이 의논을 해 왔을 때부터 우리는 그렇게 눈치를 채고 있었다. 그렇다고 대 놓고 얘기할 수는 없다.
병현이 형은 ‘너는 맨날 컴퓨터만 들여다보면 되지만 난 그렇지 않아. 사람을 들여야 봐야 한다고,’하며 승인을 했다. 왜냐하면 재벌인 스티브의 아버지가 우리 회사에 큰 금액의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병현이 형으로서는 매출이 올라가는 만큼 대규모로 추가적인 시설 투자를 해야 했다. 경영 결정은 형이 하는 일이므로 내가 뭐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요즘 들어 스티브가 나를 찍어 뽑아내려는 낌새가 보인다는 점이다. 회사의 중추는 병현이 형과 나인데 회사 설립자인 병현이 형이 수많은 네트웍을 잡고 있어 어쩔 수 없고 대신 나를 찍은 거 같다. 내가 가진 주식을 노리고 있다.
스티브가 지금 회사 IT 시스템을 문제 삼는다고? 거기에 대응해야 한다. 내가 3년 동안 어떻게 키운 시스템인데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대처 방안은 있다. 나는 회의가 끝나자마자 CEO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 가자 병훈이 형과 스티브가 함께 있었다.
“사람이 없어서 물류 지연되면 꼭 사람 써야겠습니까? 물류 자동화시키겠습니다.”
병현이 형과 스티브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자동화??”
“네. 외국인 쓰는 대신 스마트 시스템 쓰겠습니다.”
스티브가 묻자 내가 대답해 주었다.
“스마트 시스템 쓰려면 현재 물류 센터 시스템으론 안 돼. 근본적으로 바꿔야지.”
“맞습니다. 그래서 내가 물류 센터 말단으로 내려가려고요. 시스템을 밑바닥부터 점검해야 합니다.”
내가 선언하자 병현이 형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고 스티브는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가 슬쩍 입꼬리가 올라갔다.
“말단으로?”
“아이구 그거 생각 잘했네! ”
스티브가 깐족거릴 줄은 예상했다. 그러나 난 단호하게 나갔다.
“세 달 주십시오. 세 달 안에 알고리즘 완성해 오겠습니다.”
‘음...’ 병현이 형은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안 되면 회사 그만두셔야 합니다.”
스티브가 능글거리는 얼굴로 이렇게 말하자 나는 전투 의지가 불타올랐다. 성공하기 전에 이 자리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저희 비행기는 대한민국 상공을 진입하여 곧 인천 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비행기 안에서 기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이제 이 정도 한국어는 나도 대강 알아듣는다. 옆에서는 태국 동료들이 상기된 얼굴로 어수선해지기 시작한다. 나도 새롭게 시작된 인생에 마음이 부풀어 갔다.
입국 심사대 앞에서 나의 여권을 확인하던 심사관이 말해 주었다.
“E7 비자, 한국 입국을 축하드립니다.”
공식적으로 한국 입국 심사원에게 인정을 받으니 진짜 감개 무량했다. 심사대를 통과해 동료들과 함께 산업 인력 공단 기숙사로 버스를 타고 가 그곳에서 2박 3일간 교육을 받았다.
버스 안에서도 나는 근로 계약서를 보낸 회사가 어딜까 너무 궁금했다. 회사 소개에는 ‘서원 마켓 / 온라인 쇼핑과 물류’라고 적혀 있는데 그게 정확히 어떤 일인지는 모른다. 힘든 일일 거라는 건 각오했지만 인간적으로 외국인을 대해 주는 회사이기만을 바랄 뿐이다.
인력 센터 교육장에서 4년 10개월간 E7 비자으로 한국에서 일하실 수 있다는 걸 알려 주었다. 일하는 회사에서 동의하면 다시 4년 10개월 더 일하실 수 있다. 거의 10년을 한국에서 일할 수 있는데 그만큼 오래 일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3일째 되는 날 서원 마켓 직원이 나를 데리러 왔다. 그의 차를 타고 회사로 향했다.
회사 건물은 10층이 넘는 거대한 쌍둥이 빌딩이었다. 도시의 고층 빌딩과는 달랐다. 나는 자동차가 회사 앞 입구에서 멈출 줄 알았다. 하지만 차는 건물 입구를 지나 경사면을 오르게 시작했다. 자동차는 원통 형의 도로를 빙글빙글 돌며 오르는데 모든 게 너무나 신기했다. 눈이 커져 보는데 1층, 2층, 3층, 4층... 원통 기둥 사이로 건물의 층층이 보였다. 건물이 마치 바벨탑 같았다.
7층까지 오른 후 옥상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직원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들어간 곳은 사무실이었다. 빡빡한 칸막이 책상 안으로 여러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다. 그 사이를 지나며 나는 정신이 빠진 듯 얼얼했다. 그저 나를 데려가는 직원을 따라갈 수밖에. 우리는 작은 회의실에 들어갔다.
인사부 직원은 내게 태블릿을 내밀었다. 화면에는 ‘근로 계약서 – 이름 : 람야이.’
“람야이님은 특히 체력 시험 점수가 좋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선택했어요”
직원이 설명했다. 하긴 당연하다. 나는 10 키로 모래주머니 들고 100 미터 달리기에서 남자들을 물리치고 1 등을 했다. 직원은 특히 다음 문구를 손으로 짚으며 강조했다. ‘1개월 수습 기간 후 정식 계약합니다. 단 근무 중에 불법 행위가 있으면 바로 추방입니다.’ 이 문구는 태국에서 이미 알고 있었고 별 의미 없이 관행적인 내용이라고 태국 송출 업체는 알려 줬다. 나는 계약서에 사인했다.
그 후 직원은 일할 때는 사방을 살피면서 위험한 게 없는지 확인하라는 등 안전 교육을 했다. 그때 문이 열리며 한국 여자가 들어섰다. 하얀 얼굴, 갸름한 얼굴선, 세련된 옷차림, 전형적인 한국 여자였다.
그러자 직원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인사했다.
“이사님! 웬일이세요?”
“이 분 공단에서 바로 오신 분이죠? 집품장으로 배치했어요?”
“네. 오늘 바로 업무 투입하려고요.”
“그럼 내가 이분 데리고 집품장으로 갈게요.”
이사가 말하는데 말투도 사근사근하고 한국 여자답게 좋은 향기가 나는 듯했다. 나는 너무 고마웠고 이런 건 확실히 표현을 해야 한다. 벌떡 일어서 허리를 굽히고 인사를 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갑자기 이사가 무슨 일이야 눈이 커졌고 직원은 돌아서 큭큭거리며 웃었다. 이사는 ‘당연히 열심히 하셔야죠!’ 말하고는 자신을 따라오라고 나에게 일렀다. 끌고 온 트렁크를 직원에게 맡기고 ID 카드를 받은 후 이사를 따라갔다.
엘리베이터는 다시 타고 1 개층을 내려가 2 층에 도착한 거 같다. 이사를 따라 보안 요원이 지키는 보안대에 ID 카드를 친 후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신세계이다.
층고가 높은 거대한 공간에 천장까지 물건들이 빼곡하게 차 있었다. 지게차가 돌아다니며 칸막이에 물건들을 올리거나 내렸다. 나는 처음 보는 상상도 못 해 본 풍경이 신기해 이리저리 둘러보며 이사 뒤를 쫓아갔다. 그래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눈에 힘을 주고 정신줄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 주먹을 꼭 쥐어 보았다.
거대한 칸막이가 있는 통로를 한참을 지나 물건들이 비교적 낮게 쌓인 곳으로 들어섰다. 칸막이로 나누어져 섹션 별로 질서 정연하게 놓인 물건들 사이로 남녀노소 사람들이 카트를 끌고 다니고 있있었다. 그들은 핸드폰처럼 생긴 기계를 손에 들고 다니며 물건을 집어 카트 위에 있는 네모난 박스에 넣었다. 주로 한국인이고 간간이 보이는 구릿빛 피부의 동남아인, 하얀 피부의 동유럽인, 까만 피부의 아프리카인들.
한국인 이사는 곧장 컴퓨터와 대형 TV 그리고 비닐 휴게실이 있는 자리로 나를 데리고 갔다. 컴퓨터 앞에 파란 조끼를 입은 한 남자가 컴퓨터 화면을 보며 서 있었다. 이사가 그에게 말했다.
“석훈님! 오늘 공단에서 오신 분입니다.”
컴퓨터에서 고개를 드는 파란 조끼의 남자, 얼굴이 준수하고 하얀 전형적인 한국 남자 얼굴이다. 한국 드라마에서 많이 본 남자 주인공 같은 아우라 빛난다. 나는 눈이 부셔서 ‘‘한국 남자다!!!’ 생각이 들어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어쩐지 낯이 익은 얼굴 같다. 특히 반듯한 이마와 선명한 눈매가 익숙하게 느껴진다. 내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람야이님이에요.”
이사가 나를 그에게 소개했다. 그러자 석훈이 이사에게 고개를 돌리며 퉁명스럽게 말한다.
“지혜 이사님! 왜 저한테만 외국인 자꾸 맡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