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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운 Sep 29. 2024

8화. 외국인 사원?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하였는데 어찌 홍시라 생각하느냐 하옵시면...’     


“옹쉬 마시 났어 옹쉬라 하... 오째 옹쉬 생각하느 냐하오면...”     


한국어 공부하는 데는 역시 한국 드라마가 최고다. 무료로 받을 수 있는 드라마는 오직 오래된 드라마뿐인데 역시 ‘대장금’은 봐도 봐도 재밌어서 한국어 공부하기에 딱이었다.      


한국어 능력 시험장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 기다리면서 핸드폰으로 시험 체크 겸 한국 드라마를 보는데 뒤에서 자꾸 사람들이 민다. 2시간 전부터 와 기다려서 앞 줄에 서긴 했는데 사람들이 인산인해였다.    

  

시험 후기에서 100대 1이니, 80대 1이니 하는 경쟁률은 보았는데 직접 이렇게 시험장 앞에서 보니 실감이 났다. 1년을 공부했지만 남들처럼 한국어 학원도 다니지 못해 자신이 없었다.      


파타야 식당을 두고 돈 들여 방콕에만 있는 한국어 학원을 다닐 수는 없었다. 시험장에 들어가 떨면서 한국어 시험 음성을 쳤다. 나오는데 다른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들렸다.     


“การไปฟาร์มในชนบทมีสัญญาจ้างแรงงานมาอย่างรวดเร็ว แต่การไปโรงงานในเมืองโดยพื้นฐานแล้วต้องรอ 2 ปี (시골 농장으로 가는 건 금방 근로 계약서가 오는데 도시 공장으로 가는 건 최소 2년은 기다려야 한다.)” 

    

인터넷에서 보긴 했지만 시험을 보고 나오며 심각하게 얘기하는 얼굴들을 들으니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한국어 시험에서 좋은 등급을 받았다. 도시 공장으로 갈 수 있는 7급이다. 다 한국 드라마 덕분이다.      


체력 단련도 했다. 식당 부엌에서 매일 10 키로 쌀포대를 이고 한 바퀴씩 돌았다. 그러니 체력 시험에서 10 키로 모래 포대를 이고 100 미터를 남자들을 물리치고 1등으로 들어왔다. 남자들 입이 벌어졌다.     


그러나 기쁘지 않았다. 예상한 대로 한국에서 근로 계약서는 금방 오지 않았다. 한국 인력 송출 업체에 서울 공장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한국에 간 동네 언니는 기다리더라도 서울 공장으로 가라고 권유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좋다고. 아픈 엄마를 두고 금방 떠나기도 싫어 기다리기로 결심했다.    

 

그 사이 엄마의 당뇨병은 점점 깊어졌고 결국 눈이 보이지 않게 되는 지경까지 가 수술을 했다. 그것 때문에 결국 사채를 썼다. 급전을 쓰기 위해 신체 포기 각서까지 쓰면서...     


식당을 하며 애를 썼지만 결국 사채 기한에 맞춰 빚을 갚지 못했다. 그날, 상체 근육이 울끈불끈 하고 목과 팔다리에 용 문신이 꿈틀거리는 동네 깡패들이 식당에 들이닥쳤다.     


“เอาเงินมา! วันนี้เป็นวันจ่ายหนี้ (돈 내놔! 오늘 빚 갚는 날이야.)”     


함께 있던 여동생과 학교에서 돌아온 남동생들이 겁에 질려 뒤로 물러 났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어떻게든 해야 한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ช่วยเลื่อนออกไปหนึ่งสัปดาห์ค่ะ. จะจ่ายคืนเป็นสองเท่าแน่นอนค่ะ (일주일만 연기해 주세요. 꼭 이자 두배로 쳐서 갚을게요.)”     


하지만 깡패들은 가차 없었다. 내게 다가와 양쪽에서 거칠게 내 팔을 잡았다. 너무 무서웠다.      


“กี่ครั้งแล้วเนี่ย? ต้องทำสัญญายอมแพ้เรื่องร่างกายซะแล้ว หน้าก็สวย เหมาะแก่การเอาไปขายเลย!! (벌써 몇 번째야? 얼굴도 반반해서 어디 팔아먹기 딱 좋다!!)”     


깡패 둘이서 내 팔을 잡아당겨 나가려는데 마침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이 울렸다. 그래! 이때다 하고 소리 질렀다.      


“เดี๋ยวก่อนครับ! (잠시만요!)”      


팔에 힘을 주어 양 옆의 깡패들을 밀어내자 훌쩍 밀려나더니 바닥에 펄썩 엉덩방아를 찧었다. 나는 얼른 전화를 받았다. 한국 인력 송출 회사였다.  

   

“มิสรามใหญ่! สัญญาแรงงานจากโรงงานเกาหลีมาถึงแล้วค่ะ. กรุณามาที่บริษัทและรับขั้นตอนหลังจากนั้นค่ะ. 축하드립니다! (미스 람야이! 한국 공장에서 근로 계약서가 도착했습니다. 회사로 와서 이후 절차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저절로 ‘แม่จ๋า! (엄마야!)’ 소리가 절로 터져 나왔다. 놀라서 보는 동생들에게 소리쳤다.     


“ฉันจะกลับเกาหลีแล้ว! พวกเราจะเป็นคนรวยแล้ว! เชื่อพี่นะ! ฉันจะซื้อรองเท้าจากโซลส่งไปให้นะ (나 한국 간다! 이제 우리 부자 될 거야! 누나만 믿어! 서울에서 신발 사서 보낼게.)”      


‘พี่คะ! จริงหรอ? (언니! 진짜야?)’ ‘พี่ครับ! พวกเราจะจ่ายค่าเทอมดีๆใช่มั้ย? (누나! 우리 학비 이제 제대로 내는 거야?)’ 물으며 동생들이 난리가 났다. 깡패들이 바닥에서 엉거주춤 일어나자 그들에게 소리쳤다.  

    

“ให้ยืมเงินเพื่อซื้อตั๋วเครื่องบินค่ะ. กลับโซลแล้วจะส่งไปให้เลย. (비행기 표 사게 돈 꿔 줘요. 서울 가서 바로 보낼게.)”      


돌아보자 문 앞에 어머니가 나와 있다. 얼른 달려가 손을 잡고 호소했다.  

    

“แม่คะ! กลับเกาหลีไปหนูก็อยากลองสัมผัสโลกใบใหม่ด้วย! (엄마! 나 한국 가서 새로운 세상도 경험하고 싶어!)”     


엄마가 울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석훈     


너무 오랫동안 컴퓨터 화면만 들여다봤더니 눈이 피로하다. 최소한 30분에 한 번은 화면에서 눈을 떼고 먼 데를 바라봐야 하는데... 모니터 너머 창 밖을 내다보니 쨍한 햇빛이 반대편 빌딩 창문에 부딪혀 눈이 부셨다. 얼른 고개를 돌려 아래를 보자 강남 대로엔 평소처럼 차들로 가득하다.     


네 대의 최신 모니터 화면에서는 밤 새 작업한 알고리즘 코드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병현이 형은 화면을 보며 맨날 내가 이런 것만 들여다본다고 지겹지도 않냐고 묻는다. 글쎄 가끔 지겨운 때도 있지만 대부분 재밌다. 그렇게 대답하면 병현이 형은 내가 타고난 공돌이라고 웃지만 말이다.      


핸드폰이 울렸다. 병현이 형이다.      


“빨리 오라고! 회의 늦는다.”     


아 참! 회의 시간이다. 핸드폰 알림 떠 있었다. 작업하다 보면 맨날 놓치지만 말이다. 오늘은 중요한 회사 경영 회의이긴 하다. 신경을 건드리는 놈 하나가 오늘 나타날 거다. 대응을 해줘야 한다.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얼굴 점검은 하고 가야겠다. 임원 여럿이 참석하는 회의이니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겠다. 사무실에 딸린 개인 화장실로 가 세면대에서 세수를 했다. 거울을 들여다보니 말끔해졌다. 

    

3년 전 태국에서 병현이 형의 전화를 받고 한국 대사관에서 비자 변경을 한 후 바로 한국에 들어왔다. 병현이 형은 온라인 쇼핑 플랫폼 회사를 시작해 이미 2년이 넘어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성장세에 부응하는 신기술이 절실하게 필요하던 시기였다.     


형은 내게 최고 기술 책임자 자리와 함께 엄청난 연봉을 제시했다. 그게 아니더라고 나는 형과의 인연을 생각해 금방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미 실리콘 밸리에서 관련 기술을 가지고 있던 내게는 밥 먹듯 쉬운 일이었다.


또한 내가 스스로 고안한 알고리즘을 마음대로 실현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한국에 들어왔을 때 인천 공항에 마중 나온 형이 먼지를 뒤집어쓴 거리의 노숙자 원숭이 왔냐고 놀려서 수염도 말끔히 깎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은 인간답다고 하니까. 가끔 BTS의 석진 같다나 뭐라나. 인정한다.  

    

회사 경영 회의실에 들어서니 내가 제일 늦었다. 병현이 형이 테이블 중앙 자리에 CEO 답게 앉아 있고 여러 임원들이 그 옆을 차례대로 앉아 있었다. 인사부 이사인 지혜가 광택이 나는 얼굴로 칙칙한 회의실 분위기를 밝히고 있다.      


그런데 한쪽에 앉아 있는 스티브. 약간 삐뚤어진 입매와 연신 킁킁거리는 콧소리가 재수가 없다. 경험이 많은 비즈니스맨 티가 철철 넘치는 병헌이 형이 눈짓으로 빨리 ‘기술 상무’라고 쓰인 자리에 앉으라고 한다. 자리로 가 앉는데 스티브가 눈살을 찌푸린다.      


“아! CFO (최고 기술 책임자)는 이런 중요 회의에 막 늦고 그래도 됩니까?”     


스티브가 벌써 공격에 들어온다. 나도 한 대 쳐 줘야 한다.      


“언제부터 외부 감사가 서원 마켓 최고 임원 회의에 참석했습니까?”     


“하하. 우리 아버지가 여기 최대 외부 투자자라고요. 저 감사로 참여한 거라고요. CEO가 지정한. 이 정도는 당연한 건 아닌가?”     


병현이 형이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들어서 알고 있기는 했다.    

  

“그럼 인사부 안건 넘어가시죠.”     


지혜가 일어섰다.      


“주문이 급속히 많아지면서 물류 처리해야 할 직원도 많이 필요합니다. 지금도 공격적으로 직원 모집을 하고 있지만 채용이 쉽지 않습니다. 일용직 사원들은 들쭉날쭉하고 고정적으로 물류를 처리할 사원들이 필수적인데 모집이 잘 되지 않고 있어요. 아무래도 외국인 사원들을 늘려야겠습니다.”    

 

외국인 사원? 난 미덥지 않다. 미국에서 코카시언 (유럽계 백인) 서클 아래 일할 때 당했던 은근한 차별과 분했던 마음이 생각났다.    


*람야이 소설 연재를 현재 수, 일요일 2회에서 수, 금, 일요일 3회로 늘립니다. 재밌게 읽어 주시는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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