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by 김로운

주변에서 죽음을 실감하는 일은 흔치 않다. 나의 친정아버지, 어머니는 비교적 오래전 돌아가시고 임종 전 오래 아프실 때 직접 모시지 않아서 죽음에 가까워질 때의 고통을 직접 느끼지는 못했다. 내가 죽음이 가까워지는 고통을 느낀 것은 시어머니가 2년 전 돌아가실 때였다.


시어머니는 20살이 되기도 전에 시골 마을 옆 동네에 사는 20살 시아버지에게 시집을 와서 78세가 될 때까지 50년 넘게 사셨다. 그동안 시어머니를 모시고 농사일을 했고 아들 4형제를 낳았다. 시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이기도 해서 출근하는 걸 봐 드리면서 농사일을 하셨다. 아들 둘을 기르면서 잠시 직장 다니는 것도 버거웠던 나는 그 모든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시아버지는 보통 분이 아니셨다. 가난한 소작농의 유일한 아들로 태어나 농사나 지으라는 아버지의 반대를 물리치고 가난한 집안에서 사범학교에 진학하고 교사 자격증을 따서 교직에 진출했다. 교사를 하며 조금씩 돈을 모아 땅을 샀다. 시아버지에게는 교사보다는 땅을 사 모으는 게 중요했다. 땅만이 재산이라고 생각했다.


거기에다가 전통적인 가부장적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집안에서 가부장이 하는 말은 무엇이든 이루어져야 했다. 밥 먹자고 외치면 5분 안에 밥상이 마련되어야 했다. 어머니는 5분 안에 밥상을 차리려고 안절부절못하셨다. 내가 시집을 가서 명절에 이걸 보고는 속으로 기겁을 했다. 어떻게든 어머니를 돕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세월이 흐르고 20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시아버지의 가부장적인 태도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나중에 나는 시어머니에게 어떻게 5분 안에 밥상을 차리느냐고 아버님께 말 좀 해보라고 부추겼다. 그러면 시어머니는 별말 없이 빙그레 웃기만 했다. 아버님에게 대드는 법이 없었다.


명절 차례를 지내기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전날, 도시에 사는 4명의 며느리들이 각자의 이유로 늦게 와도 혼자 먼저 준비하며 탓을 하지 않았다. 한마디 할 법도 한데 그저 ‘어서 와라’ 한마디였다. 시어머니는 너무 순둥이셨다.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살지 못했다.


그러나 재작년 9월 아버지의 경운기 뒤에 타고 가다 땅으로 떨어지셨다. 머리를 크게 다쳐 병원에 가셨다. 뇌출혈이었다. 시어머니는 의식을 잃으시고 치료를 받았다. 의식이 돌아오실 때도 있었는데 네 아들이 있는 앞에서 제대로 말을 못 하셨다. 너무나 아프고 죽음이 가까워지는 걸 알고 있는데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까?


레프 톨스토리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죽음이 다가가는 중에 인간이 겪는 아픈 고통과 심리 변화를 그린 소설이다. 매우 유명한 이 소설이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건 알았지만 병이 진행되는 과정의 고통을 이렇게 세세하게 그린 것인지는 몰랐다. 죽음에 대한 ‘부정 – 분노 – 협상 – 우울 – 수용’의 단계가 잘 그려져 있다.


제정 러시아 시대인 1886년 발표한 이 소설은 톨스토이가 50대인 중년기에 쓰였다. 따라서 주인공 이반도 비슷한 나이다. 판사로 비교적 상류 신분이었던 이반은 아프기 전 겉으로는 위엄 있는 척하면서도 돈만 밝히고 집안을 남들 보기 좋게 꾸미는 데 열심인 이기적인 사람이다. 이반이 죽고 난 후 장례식에 온 사람들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척하면서도 비게 된 그의 자리 이후 이동이 자신에게 어떻게 영향을 줄까에만 관심이 있다. 보통의 위선과 기만이다.


유럽 근대 문학의 영향도 받지 못한 톨스토이가 어떻게 이런 질병 서사 소설을 썼는지 놀랍기만 하다. 오직 삶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열망만이 이전에는 없던 내용과 형식의 소설을 이끌었을 것이다.


그래도 소설 속 이반은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 질렀고 얄미운 아내에게는 섭섭한 말을 쏘아붙이고 죽었다. 우리 시어머니는 산소 호흡기를 쓴 채 그런 한마디를 못하고 돌아가셨다. 비명도 지르기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서 더 내 마음에 사무치는 것 같다.


*새로운 연재북 '봄날 책읽기'를 시작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 좋은 설날 보내세요! 건강하시고 원하시는 일 다 이루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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