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뮤지컬의 9가지 비밀’을 읽고
하늘하늘 너플너플 떨어지는 실크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배우가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하늘 끝까지 노래하며 클라이맥스로 향한다. 허벅지에 딱 붙은 바지를 입어 몸매가 섹시하게 드러나고 반쪽짜리 가면을 써서 미스터리 한 남자 배우는 굵은 목소리로 객석을 압도한다. 무대 위에는 신비한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검은 곤돌라는 물 위를 스윽스윽 떠간다.
한 구석 객석에 앉은 나는 현실을 잊고 유령의 검은 동굴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오페라의 유령’이 가져다주는 세상이다. 영화도 나를 다른 세상으로 데려다주지만 뮤지컬은 물리적인 음파를 직접 전달하기에 강도가 훨씬 세다. 그리고 한 번뿐인 경험이라 나는 특별하다는 자만심을 만들어준다.
또 뮤지컬을 보러 오는 건 어떤가? 대리석으로 바닥이 빛나고 천장에서는 샹들리에가 떨어지는 극장 홀은 유럽 중세의 성과 같다. 극장 입구에는 유니폼을 입은 안내원이 웃으며 친절하게 자리도 안내해 준다. 귀족 부인인 것처럼 걸어도 된다. 이런 걸 ‘뮤지컬의 9가지 비밀’의 SBS 피디 출신 임찬묵 작가는 고급문화 체험이라고 한다. 특히 한국에서 발전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뮤지컬이 미국에서 들여온 고급문화이다. 주 관객층도 2030 여성층이다.
그러나 정작 미국 본토 브로드웨이에서는 고급문화가 아니다. 아무렇게나 들어가 재밌게 보는 대중 공연이다. 또 주 관객층은 중년 남성들이다. 나도 뉴욕에 사는 동생에게 그 얘기를 들었다. 심지어 ‘오페라의 유령’은 미국 브로드웨이 뮤지컬도 아니다. 실은 후에 발달한 영국 웨스트엔드 작품이다. 미국의 정통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생각보다 낯설고 지루하고 올드하단다.
한국 뮤지컬은 심각한 고질병이 있다고 임찬묵 작가는 지적한다. 배우 마케팅에 의존하기에 제작비가 한없이 올라가고 있다. 한국 뮤지컬에서 조승우나 옥주현과 같은 배우 생각을 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관객들은 배우들을 보려고 뮤지컬을 보러 온다. 덕분에 같은 뮤지컬을 여러 번 보는 회전문 관객들이 생겼다. 심지어 이들이 다수다. 배우들에게 엄청난 출연료를 챙겨 줘야 한다. 때문에 제작비가 치솟고 있다. 몇몇 제작사들은 이 때문에 망했다.
그러나 한국 뮤지컬은 현재 전체 공연 시장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 엄청난 인기 중이다. 다만 성장세를 잃어버렸다. 희망은 있다. 한국의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2024년 미국 브로드웨이 선보인 이후 '제78회 토니어워즈'에서 작품상, 연출상, 극본상, 음악상 등 6개 부문을 수상했다. 2014년 우란문화재단의 기획으로 개발되어 2016년에 대학로에서 초연된 소극장 창작 뮤지컬이었다. 한국적 정서로 인간의 보편적 감수성을 짙게 울리는 작품이라고 한다. 미국 관객들에게는 한국의 정서가 낯섦이 아니라 새로움으로 받아들여졌다고 볼 수 있다.
또 한국 제작자가 만든 ‘위대한 개츠비’는 2024년 4월에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하여 동시에 매출액 100만 달러를 넘어 ‘원 밀리언 클럽’에 진입했다. 그리고 20주간 그 클럽을 유지하는 저력을 보여준다. 신춘수 프로듀서가 한국에서 뮤지컬을 제작한 노하우로 브로드웨이에서 제작하여 성공시킨 경우이다. 강한 감정의 휘몰아침과 화려한 무대가 주 강점이었다고 한다. 미국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미국 개척기 시대 정서로 주로 중년들이 본다는 현상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임찬묵 작가가 쓴 ‘뮤지컬의 9가지 비밀’에서는 한국 뮤지컬이 정체를 딛고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 해법을 제시한다. SBS 제작 본부의 선임 피디로 10여 년간 ‘맨 오브 라만차’ ‘레베카’ ‘엘리자벳’ 등의 제작에 관여했다. 작가 자신의 제작 역사와 애정으로 한국 뮤지컬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짚고 있다. 한국 뮤지컬이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해야 하는 이때 적절한 책이다.
배우 마케팅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한국의 축척된 노하우로 뮤지컬을 제작해야 한다고 임작가는 말한다. K 문화가 낯섦이 아니라 힙함으로 세계 젊은이들에게 인식되는 이때 한국적인 감수성으로 K 뮤지컬이 기세를 몰아가야 한다. 물론 회전문을 도는 뮤지컬 팬들에게도 뮤지컬 세계의 이면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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