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밥만 먹고 공장 앞마당 빈 팔렛 위에 앉아 쉬는데 저쪽에 몇몇 무게감 있어 보이는 언니들이 모여 수다를 떨었다. 시녀 언니가 종이컵 커피를 타와 왕언니에게 내밀고 다른 언니들도 왕언니에게 가져온 떡등을 권하며.
떡을 가져온 언니가 왕언니에게 권했다.
‘이거 좀 먹어봐! 좋은 찹쌀로 해서 맛있어!’
왕언니가 떡을 집자 떡을 권한 언니는 망설이는 얼굴로 말을 더했다.
‘저기! 언니! 나도 컨베이어 벨트 자리에 앉고 싶은데...’
떡언니는 민망한 얼굴이었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왕언니는 대답했다.
‘생각해 볼게!’
왕언니는 권력자였다. 알바들 공정 프로세스를 조직하는 거였다.
오후에 왕언니가 컨베이어 벨트 앞자리에 앉아 벨트를 돌리기 시작했다. 왕언니의 지시로 나는 팔레트에 쌓인 시디나 화보집을 컨베이어 자리에 나르는 일을 시작했다.
화보집은 하얀색 커버였고 왕언니는 조금이라도 떨어뜨리면 안 된다고 주의시켰다. 바닥에 떨어져 뭐라도 묻으면 큰일 난다고. 아이돌 회사에서 꼼꼼하게 체크한다고 내가 변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어깨가 긴장되었다.
계속 나르다 보니 보였다. 컨베이어 벨트 옆 자리에도 등급이 있었다. 25 명쯤 앉아 있는 자리에도 무거운 화보집을 계속 박스 안에 넣어야 하는 자리가 있고 가벼운 사진만 넣어도 되는 자리가 있었다. 무거운 화보집을 계속 넣는 자리에 있는 언니는 힘든지 인상을 썼다.
알바들이 일찍 출근하는 것도 쉬운 컨베이어 자리를 선점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심지어 1시간 일찍 오는 알바들도 있다고 했다.
오후 늦게 왕언니는 컨베이어 벨트를 멈췄다. 그리곤 오늘 물량이 끝났다고 아이돌 사진을 비닐봉지에 집어넣는 작업을 하자고. 알바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작업대 2개를 나눠 다시 배치했다.
이번엔 나도 재빠르게 의자를 선점했다. 다행히 작업하기 편한 의자를 잡았다. 하하하. 얇은 비닐봉지 안에 아이돌 사진을 넣으면서 왕언니와 시녀 언니들은 수다를 떨었다.
‘주차하다가 하다가 사이드 미러 깨졌는데 고친 거 어제 찾았거든. 한 100만 원 나왔어’
‘벤츠라 그러지.’
‘남편이 하루 일해서 10만 원도 못 받는데 수리비가 100만 원 나왔다고 알바 그만두란다’
‘꼭 돈 벌러 나오나? 여기 재미있는데. 어휴 그 인간들은 몰라. 맨날 집에만 있으면 뭐 하니. 우울하기만 하지.’
‘남편한테 뭘 기대하냐!! 그냥 없는 게 편하다!’
나는 열심히 봉투 안에 아이돌 사진을 집어넣으며 구겨질까 봐 흠이 갈까 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손가락에 자꾸 정전기가 일어 잘할 수가 없었다. 그걸 보더니 왕언니가 또 야단을 쳤다.
‘새로 온 언니! 그래 가지고 어느 세월에 오늘 분량 맞출래!’
주눅이 또 들었다. 어느새 출입문 밖이 어둑어둑해져 퇴근할 시간이 됐는데 회사 사장이 갑자기 들렀다. 알바들이 수군거렸다. 웬일이냐고. 사장은 작업장에 잘 오지 않는다고 했다.
사장은 팔레트 위에 남은 시디, 화보집, 아이돌 사진들을 보면서 왕언니에게 재고가 얼마나 남았냐고 물었다. 왕언니는 당황하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나는 기억이 났다. 아까 시디와 화보집을 나르면서 우연히 세고 있었다.
‘팔레트 위에 시디 2천 개 쌓여 있었고 지금 10개짜리 20줄 남아 있으니까 200개 남았어요. 그리고 화보집은 천 개 쌓여 있었고 지금 5개짜리 20줄 남아 있으니까 100개 남았습니다. 사진은 300세트 남았어요.’
알바들이 놀라서 나를 쳐다보았다. 왕언니는 아무래도 노려본 것 같다. (그렇게 느꼈다)
며칠 후 김상무에게 알바 신청을 하니 왕언니 회사를 권하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가라고 일러 주었다. 의류 포장 회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