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이 되기 전, 반장 2는 점심 식사가 배달되어 올 거라고 알려 주었다. 나는 감격했다. 나같이 처음 온 사람에게도 점심시간을 알려주다니. 배달된 점심은 깔끔하고 맛있었다.
반장들도 너무 좋은 사람들이었다. 알바들보다 더 헌신적으로 일했다. 작업을 진행시키기 위해 남자들이 드는 무거운 물건들도 척척 들어 날랐고 묵직한 차키 (물건이 실린 팔레트를 이동하기 위해 손으로 운전하는 기계)도 날렵하게 운전했다. 심지어 쉬는 시간, 알바들이 편하게 의자에 앉아 쉬고 있을 때도 일했다.
60대 언니가 좀 쉬라고 하자,
‘이렇게 해서 빨리 퇴근하려고요! 신경 쓰지 말고 쉬세요!’
하고 웃었다. 나에겐 천사들로 보였다. (이하 천사 반장들)
사진 출처 : Pintorest
오후가 되자 양품 작업장 (양품장)을 떠나 택배 상자를 포장하는 출고 작업장 (출고장)으로 가게 되었다. 히터가 틀어져 따뜻한 양품장과는 달리 뻥 뚫린 출고장은 너무 추웠다.
출고 과정은 포장 박스를 만들어 포장된 옷을 택배 박스 안에 집어넣고 박스를 스티커 접착 기계 안으로 넣는 것이다. 박스가 밀봉되면 운송장을 붙이고 택배가 갈 수 있도록 팔레트 위에 쌓는다.
그런데 그날은 바깥 기온이 전날 밤부터 영하 10도 아래인 너무 추운 날이었다. 출고장에 나가 10분도 되지 않았는데 운동화 속 발가락이 얼었다. 그래서 기계가 굳어 돌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회사의 남자 정직원들 과장, 대리가 나와 있었다. 알바들 앞에서 기계가 얼었다고 짜증을 부렸다.
천사 반장들은 전기 온열기를 찾아 가져오는 등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기계를 돌리기 위해 애를 썼다. 20대로 보이는 대리는 그런 반장들에게 짜증을 부렸다.
어쨌든 천사 반장들이 찾아온 전기 온열기 덕분에 기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들 기계 앞에 서는 데 가장 중요한 자리 – 박스 만드는 자리, 기계에 박스를 집어넣는 자리, 그리고 운송장을 붙이는 자리 – 에 반장들과 60대 언니가 섰다. 나는 박스 만드는 천사 반장 1 옆에 서서 납작한 박스지를 밀어주는 일을 맡았다.
기계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나는 신세계를 보았다. 겨울이라 패딩류등 옷들이 무거웠다. 반장 1 언니는 손이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내가 밀어준 납작한 박스 지를 박스로 만들어 냈다.
무거운 옷들은 박스 안으로 던져 넣으면 60대 언니가 뚜껑을 닫아 끓이지 않고 박스를 기계 안에 밀어 넣었다. 그것은 또 다른 기술이었다.
내 옆에 선 반장 1 언니는 박스 지를 미는 내게 이런저런 지시를 빠르게 했다. 박스지 잡는 위치, 박스 지를 밀어주는 방향, 서 있어야 하는 미묘한 각도 등등. 말은 날카로웠다.
하지만 내일 택배가 나가기 위해 오늘 끝내야 하는 물량을 알기 때문에 나는 섭섭한 마음이 1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기술을 익혀야 하겠다는 마음이 커서 열심히 했다.
다시 기계가 돌아가자 전쟁 같은 작업이 진행되었다. 추운 것도 잊고 기계처럼 박스 지를 밀어 댔다. 결국 퇴근 시간이 되어 접착 기계를 멈췄다.
그러나 물량이 끝나지 않아 천사 반장 언니들은 더 일해야 했다. 마음이 짠했다. (이후 이 반장 언니들을 극적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
집에 돌아가자 왼쪽 팔이 뻐근했다. 왼쪽 윗 팔에 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멍 위에 파스를 붙이면서도 나는 따뜻한 첫날이었다는 생각에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