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나는 천사 반장들의 공장에서 몇 번 더 일했다. 양품, 출고 작업을 했지만 가장 힘든 건 반품된 물건들을 정리하는 박스 까기 일명 ‘까대기’였다.
의류 홈쇼핑은 일단 반품률이 높다. 이후 이 공장 말고도 여러 의류 공장들을 돌았는데 의류들에 따라 달랐지만 평균 40%가 반품되어 들어왔다. 그래도 겨울 의류가 반품 비율이 작은 편이다. 여름옷들은 70%에 달한 적도 있었다.
여담을 하자면 여름에 다른 공장으로 갔을 때 홈쇼핑으로 나간 옷 80%가 돌아왔다. 그 공장 앞마당에는 옷들이 찐으로 태백산맥 더미를 이루었다. 야외라 여름 햇살로 지글지글 타고 있었는데 보기만 해도 숨이 막혔다.
그날도 하루 종일 까대기를 했지만 결국 끝내지 못했다. 공장 사장님이 알바들의 건강을 걱정해서 쉬엄쉬엄 하라고 했다. 옆에서 일하던 사장님은 더 이상 이 짓을 못하겠다고 하소연했다. 결국 그 사장님은 여름이 지나고 사업을 접었다.
천사 반장들의 공장에도 반품이 들어오면 팔레트 10여 개에 박스들이 말 그대로 사람 키를 훌쩍 넘어 산처럼 쌓였다. 창고 앞 넓은 공터는 박스 산을 이루게 된다. (옷을 샀으면 책임을 질 것이지 왜 이토록 무책임한가!! 휴!)
사람 키보다 높은 박스 더미를 얇은 비닐로 둘러쳐 놨는데 이 비닐을 잘 못 까내리면 박스들이 쏟아져 더미에 묻히게 된다. 따뜻한 60대 언니는 비닐을 까 내리는 법, 박스를 밀봉한 스티커를 떼는 법, 그런 걸 하기 위해 칼을 휘두르는 법, 그리고 박스 속 옷들 라벨을 쉽게 확인하는 법 등을 찬찬히 가르쳐 주었다.
반장 언니들은 부지런히 옷들을 정리할 분류 박스를 만들고 라벨을 붙였다. 까대기는 분량이 많이 때문에 보통 창고 앞 야외 공터에서 한다. 그때도 겨울이어서 추웠지만 야외에서 했다. 먼지도 많이 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까야하는 박스가 100개면 가벼운 운동이다. 그러나 1천 개가 되면 숨이 막힌다. 박스를 내려서 칼을 휘둘러 박스를 뜯고 박스 속 옷을 꺼내 걸어가 분류 박스에 넣고 빈 박스를 던져 버리는 일은 체력을 많이 요구한다. 반품이 1천 개가 되면 야외에서 하루 종일 한다.
물류 업계에서는 거대한 운반 트럭에 싣고 온 택배 상자들을 내려 분류하는 막노동을 까대기라 부른다. 의류 업체 반품 처리도 여성들의 막노동이라고 할 수 있다. 야외에서 하루 종일 하고 나면 영혼이 털리고 온몸에 힘이 빠져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든 상태가 된다.
반품 대부분은 포장도 뜯지 않은 상태로 나오지만 약 10% 포장이 뜯어진 옷들에서는 별별 게 다 있다.
반품하는 이유를 구구 절절이 쓴 편지, 한번 빨아 세재 냄새가 나는 옷들, 화장 자국이 남아 있는 옷들, 강아지나 고양이 털들이 잔뜩 묻은 옷들, 그리고 주머니에 뭔가가 들어 있는 옷들. 주머니에서 칼이 나온 경우도 있었지만 대박은 현금 5만 원짜리가 나온 경우였다. (박스를 뜯어 주소가 없어져 버려 돈을 돌려주지 못했다)
그중에는 진상 고객도 있다. 하나의 주소에서 반품 박스가 9개가 온 경우가 있었다. 소비자가 하나의 니트 스웨터를 색깔 별로, 사이즈 별로 주문해 놓고 하나만 남기고 다 반품했다. 그런데 반장 언니들은 그 주소를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이 옷만이 아니라 다른 옷들도 똑같은 행태를 보여 이름과 주소를 기억하고 있었다. 60대 언니는 그 고객 잡으러 가자고 농담했다.
겨울 동안 천사 반장들의 공장을 몇 번 나가니 김상무는 봄이 되자 다른 의류 공장으로 배정했다. 의류 포장 공장들이 모여 있는 공장 단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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