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이 끝나고 더운 8월이 시작하자 김상무는 다시 일하자고 문자를 보내왔고 나는 최애 공장인 여성 속옷 창고에 주로 갔다. 그러나 9월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김상무에게 배신을 때렸다.
장마 기간 중 몇 번 간 대형 물류 센터에서 유혹하는 문자가 매일 들어왔다. 일당에 수당이 붙어 있었다. 그곳은 에어컨이 없는 곳이라 나는 가지 않았다. 물론 김상무에 대한 의리도 있었다.
그런데 9월에 들어 그곳 수당이 거의 일당의 80%가 붙어서 들어왔다. ‘내가 그렇게 일을 잘했나!!’ 하고 자존감을 충족시키는 일이었다. 거기다가 9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그래서 김상무에게 배신을 때리고 물류 센터에 가 일을 했다.
그러나 추석 연휴가 끝나자 승인이 떨어지지 않았다. 실컷 써먹고는 추풍낙엽처럼 버린 것이다. 나는 배신감을 느꼈지만 상대는 너무 거대한 기업이었다.
며칠 망설인 후 어렵게 김상무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는데 김상무가 반갑게 받아 주었다. 그동안 어디 갔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바로 다음날 일터를 알려 주었다. 의류 포장 단지에 새 회사가 생겼다고 그곳으로 출근하라고 알려 주었다.
다음날 아침, 사무실 입구로 들어가는데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지난겨울에 일했던 회사의 천사 반장 2였다.
‘어머! 어떻게 여기 오셨어요?’
내가 묻자 천사 반장 2는 회사를 옮겼다고 대답했다. 나는 손이라고 잡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천사 반장2는 웃는 얼굴로 간단하게 대답만 하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천사 반장1도 있었다. 반가워서 내가 인사하자 그냥 힐끗 보더니 ‘안녕하세요!’ 하고 차갑게 말하고 말았다. 물론 사무실 안에는 8월까지 함께 일했던 알바 언니 5명이 서 있었다. 어디 갔다 왔냐고 묻는 언니들에게 그냥 어디 좀 갔다 왔다고 대답하고 돌아서는데 못 보던 얼굴 5명이 맞은편에 서 있었다.
‘누구예요?’
하고 내가 묻자 다른 인력 알선 업체 알바들이란다. 우리는 반장 언니들을 가운데 두고 라인 대 라인으로 대치해 섰다. 서로 노려보면서.
상대편을 쭉 훑어보는데 그중 아는 얼굴이 있었다. 인쇄 공장에서 만났던 못된 언니였다.
못된 언니도 나를 알아봤다. 우린 서로 마주 보고 눈이 커졌다. 건물주 언니에게 살짝 묻자 천사 반장들이 옮긴 이 회사에서 인력 알선 업체 경합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고 속삭였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법이다.
여기 의류 포장 단지는 김상무의 지배 구역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균열이 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천사 반장 언니들은 김상무와 오래 같이 일한 사이기도 하다.
천사 반장이 옮긴 이 회사는 새로 생긴 의류 포장 회사로 막 시작하는 중이었다. 나는 김상무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천사 반장1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김상무님은 왜 또 이런데요? 1명 더 왔잖아’
그렇다. 상대 쪽은 5명인데 우리 편은 나까지 포함해 6명이다. 김상무가 5명을 불렀는데 나까지 여분으로 부른 것이다. 나는 바로 김상무의 술수가 읽혔다.
경쟁사와의 경합에서 이미 천사 반장들이랑 인연이 있는 나를 더 붙여 가산점을 얻으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전에 몇 번이나 더 있었나 보다.
‘일단 모두 작업장으로 가세요’
천사 반장1이 화난 얼굴로 지시를 했다. 알바들이 사무실을 나와 작업장으로 가는데 내 핸드폰이 울렸다. 김상무였다.
‘여사님! 오늘 거기 말고 그 위 창고에 1명 더 필요하거든요. 거기 가 주세요.’
이 회사에서 걸어서 5분 거리 창고였다. 김상무는 다시 한번 술수를 쓰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예!’하고 대답을 한 후 발길을 돌렸다. 모든 알바들이 불쌍하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고 특히 못된 언니는 고소하다는 눈빛이었다. 능력이 없어서 쫓겨났다는 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