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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운 Mar 24. 2024

20화. 잘 되는 회사, 안 되는 회사

김 상무 회사의 동료 소개로 간 곳 중에는 대형 창고가 있고 보관된 상품들을 피킹(picking, 주문장에 나오는 대로 상품을 모으는 일)해 포장, 발송하는 일을 하는 공장들이 몇 있었다. 첫 번째로 간 회사는 커다란 창고가 여러 개 있는 규모가 큰 곳이었다.  

    

그중 창고 하나로 갔는데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싸늘한 공기가 엄습하는 듯했다. 40대로 보이는 여자 반장은 냉랭했고 20명쯤 되는 알바들은 쥐 죽은 듯 말도 안 하고 있었다.


나만 처음 출근해 두리번거리고 있었지 다른 알바 언니들은 반장 앞에서 말 한마디도 안 하고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의류 포장 공장에 아침에 출근해서는 아는 얼굴들을 만나 웃으며 인사하고 커피 한잔을 마시며 날씨 얘기, 출근길 얘기하는 분위기와는 너무 달랐다. 냉랭한 분위기에 몸이 움츠러 들었다.     

 

반장은 자신 앞에 선 20명 정도의 알바들에게 포장 박스 만드는 일부터 시켰다. 박스를 만들고 있는데 ‘왜 이렇게 느려요!’하는 20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20대 남자 직원이 40대 반장 언니에게 소리 지르고 반장 언니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내가 힐끗 쳐다보자 옆에서 일하던 다른 알바 언니가 신경 쓰지 말라는 눈치를 보이며 눈을 꿈쩍거렸다.    

 

곧이어 반장은 창고 선반에 정리된 상품들을 주문된 목록대로 피킹 하는 일을 내게 가르쳤다. 역시 처음이라 첫 번째 상품을 잘 못 집자 반장이 야단을 쳤다. 나는 기분이 조금 나빠졌다.      


그러나 나를 야단친 반장이 돌아서자마자 20대 남자 직원이 뒤에 서 있는 걸 발견했다. 남자 직원은 상품 위치를 바꿔 놨다고 반장에게 소리 질렀다. 내가 서 있는 바로 앞에서 말이다. 여자 반장이 고개를 숙이고 작게 말했다.


“아까 실장님이 위치 바꾸라서 해서요. 다시 돌려놓을게요. 죄송합니다 실장님!”     


순간 나는 내 기분 나빠진 건 다 날아가 버렸다. 반장이 불쌍해졌다.     


비슷한 일은 계속 이어졌다. 변경된 작업 지시를 듣느라 20명 알바들이 나란히 서서 보고 있는데도 20대 남자 실장은 40대 여자 반장에게 소리 질렀다.


박스 접는 방법이 틀렸다느니, 팔렛에 놓인 박스들이 가지런하지 않다느니 하는 사소한 것들이었다. 여자 반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오늘 하루만이 아니라 매일매일 그런 일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남자 실장이 지적한 사소한 것들을 고치느라 작업이 지연되었다. 점심을 먹는 공간도 따로 없었다. 근처에 식당이 없어 도시락을 싸 가지고 갔는데 알바들을 위해서는 작은 휴게실이 하나만 있었다.   

   

휴게실 안에는 작은 테이블과 의자 5개만 있었다. 알바들만 30명이 넘었는데 밥 먹을 곳이 없었다. 결국 오전 내내 서서 일한 우리는 서서 찬 도시락을 먹어야 했다.      


퇴근 무렵에 그날 작업량이 다 끝나지 않아 알바들만 먼저 퇴근하고 반장과 실장이 남아 마무리를 짓고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알바 언니들 사이에 악명이 자자한 회사였다. 나는 다시는 그 공장에 가지 않았다.   

   

비슷한 일을 하는 다른 회사에도 갔다. 그곳도 나는 처음 간 곳이었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30대로 보이는 여자 직원이 처음 본 얼굴이라며 커피 있는 곳과 따뜻한 물이 있는 위치를 알려 주었다.     


“아직 시작하려면 시간 있으니까 커피 한잔 드시고 하세요!”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자 내 마음에는 열심히 일하고 싶은 의욕이 불끈 솟았다. 5명쯤의 다른 알바 언니들과 포장 기계에 붙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포장해야 할 상품 종류가 바뀌어서 작업 방법을 자주 바꾸어야 했다. 그러나 30대 여직원은 능숙하게 바뀌는 방법들을 알려주며 조금 지연되더라도 그 시간을 기술로 메꿔나갔다. 유연하게 머리를 쓸 줄 알았다.  

   

바뀌는 방법이 작동하지 않으면 다른 라인에 있는 직원에게 물어봤고 그 직원들도 가능한 한 우리가 작업하는 기계로 와 살펴주었다. 부드럽고 친절하게 서로 배려하는 말투였다. 협력해 일하면서 바뀌는 방법을 유연하게 적용해 나갔다.     


그날 우리는 작업 목표를 달성한 것은 물론 다음날 작업까지 당겨서 했다. 퇴근 무렵 30대 여직원은 기계를 떠나는 우리에게 밝은 얼굴로 깍듯하게 인사했다.     


“언니들!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다른 알바 언니들과도 얘기해 보니 그 공장은 분위기가 좋은 회사였다. 다들 또 가고 싶어 하는 공장이었다. 공장 앞에는 커다란 택배 트럭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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