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구역에 일이 없을 때 김상무는 가끔 나를 동료 구역으로 원정 보내기도 한다. 그 중 하나가 장마 기간 중 간 돼지고기 포장 공장이었다.
식품 소분 포장 공장답게 작은 규모였고 공장 안은 냉장고처럼 추웠다. 일하는 사람들은 하얀 위생복을 입고 머리에는 위생 모자를, 신발에는 위생 커버를 쓰고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 가자마자 돼지고기 비릿한 냄새가 진동했다. 사방 벽은 산업용 냉장고로 둘러 싸여 있고 중앙에는 커다란 도마들이 놓인 넓은 철제 작업대가 있었다. 도마 옆으로는 크고 날카로운 고기 절제용 칼들이 종류별로 나란히 줄지어 있었다.
알바 언니 10명 쯤이 작업대 하나를 둘러 싸고 다른 테이블에는 동남아 노동자들이 10명쯤 있었다. 한국말을 하나도 못하고 알아 들을 수 없는 말로 얘기하고 있었다. 방글라데시 출신이었다.
그런데 업무 지시를 하는 반장이 방글라데시 남자였다. 한국말을 곧잘 했다. 벌써 여러 번 이곳에 온 알바 언니는 익숙하게 반장과 얘기하며 지시를 받았다. 반장은 냉장고에서 고기 덩어리를 꺼내와 칼로 쓸어 소분해 포장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다들 귀기울여 들었다.
반장은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있는 다른 작업대로 가 방글라데시 말로도 작업 지시를 했다. 그들도 지시를 잘 들으며 작업을 익숙하게 했다.
한 눈에도 방글라데시 반장이 자기 고향 사람들을 데려온 게 보였다. 점심 시간, 수더분해 보이는 방글라데시 언니에게 말을 건넸는데 한국말을 거의 못했다. 전에 음반 포장 공장에서 만난 필리핀인 걸그룹 옷차림 언니와는 딴판이었다.
손발 짓을 써서 겨우 알아 들은 얘기는 근처 빌라 하나를 빌려 남자, 여자가 따로 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방글라데시 시골에서 왔다는 것 정도 알아 들었다.
예전에 우연한 기회로 세탁공장 알바를 간 적이 있었다. 근처 찜찔방, 모텔에서 침구류와 찜질방 옷들을 모아와 세탁해주는 일이었다. 세탁 공장은 후미진 구석에 있었고 옆에는 재활용품 수거 업체가 있어 주변 환경이 지저분했다.
공장 안으로 들어가니 대형 세탁기와 건조기가 돌아가며 시끄러운 소리와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나는 숨이 턱 막힐 것 같았다. 그 곳에도 동남아에서 온 20대 남녀가 일하고 있었다. 사장 부부에게 살짝 물으니 결혼한 사이라고 했다.
사장 부부는 내가 그들과 얘기를 못하도록 철저히 차단하며 감시의 눈을 떼지 않았다. 왠만하면 공장 문도 열지 않고 일하는 듯 했다. 불법이 아니었을까? 나중에 돌려 들으니 사장 부부는 이들 둘을 공장에 묶어 놓기 위해 결혼시켰다고 한다.
돼지고기 공장에서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들은 합법적인 직원들이었다. 이들은 중고 자동차를 사 타고 다녔다.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게 불편하기도 할 것이다.
퇴근할 때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단체로 자동차를 타는 것을 보며 공장 직원이 스치듯 말했다. ‘자신들의 나라에서는 부자만 자가용을 살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누구나 할부로 싸게 살 수 있어 눈이 돌아간다’ 라고.
이슬람 남자들은 대중교통에서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를 못 보게 하기 위해 자동차를 무리해서 마련한다고 한다.
1~2년 한국에서 지나고 나면 조금 활달한 남성들은 공장이나 농장을 그만두고 본국과의 중고 자동차 중개업을 한다. 그걸로 돈 많이 버는 이들도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항상 비자 문제 때문에 불안해하며 살고 있다. 어느날 자주 보던 외국인 노동자에게 갑자기 연락이 안 된다면 거의 90% 이상 추방된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김상무 구역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본 적이 거의 없다. 왜냐하면 비교적 근무 환경이 좋고 일당이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김상무 소개 없이 간 곳들은 환경이 나빴다. 그런 곳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