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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운 Jul 07. 2024

불안한 스티븐 해링턴 그림 전시회 Stay Mello

 

피카소, 고갱, 고호, 르느와르, 모네와 같은 유럽 화가들의 전성시대는 이제 완전히 미국 작가의 시대로 넘어온 듯 보인다. 예술이 경제 발전과 밀접한 관련을 보이며 발달하는 걸 생각하면 당연하다.    

  

스티븐 해링턴은 1979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는 40대 화가이다. LA 출신이라는 데서도 알 수 있다시피 그림에서는 미국 애니메이션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난다. 이번 전시 제목인 ‘Stay Mello’의 멜로 (Mello)는 강아지 모습이 의인화된 캐릭터로 모든 작품에서 작가의 분신으로 등장한다.    


 

멜로는 온갖 모습으로 등장하여 자기주장을 하는데 이 그림에서는 불안에 휩싸여 있다. 유령 같은 나무에 몸이 감겨 있고 낙지에게 발목을 잡혀 있으며 사방 도처에서 불이 나기 시작하고 멜로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른다. 현재를 살아가며 각종 불안과 불확실성에 사로 잡혀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멜로는 온갖 불안 속에서도 그림 그리기를 강행하고 주변에서는 나무와, 호랑이와 얼룩말과 박쥐, 뱀이 그림 그리는 멜로를 바라보며 압박을 가하고 있다. 불안과 불확실성 속에서도 멜로는 자기 할 일을 한다.    


  

때로 멜로는 자신의 그림을 부정하기도 한다. 그림 위에 노란 막선을 그어 불만을 나타낸다. 


    

그러나 멜로는 사회 문제에도 굉장히 관심이 많아 지구 환경 보호에 대한 메시지를 많이 그렸다. 숲과 나비가 불타고 있고 멜로는 지구가 불타고 빙하가 녹는 그림을 그려 시위한다. 또 전 지구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지구를 등에 업고 있기도 하다.     


태극기 중심의 음과 양에도 관심이 많이 해링턴식으로 음과 양 그림을 그렸다. 음과 양을 기본적으로는 조화라고 생각한단다.     


그러나 스티븐 해링턴은 기본적으로 대단히 상업적인 작가이다. 그는 아모레 퍼시픽(AP)의 화장품 제품을 위해 멜로를 주인공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었고 AP 아트 뮤지엄을 위해 대형 조각도 만들었다. 나이키, 크록스와 협업하여 나무가 들어간 특이한 나이키 운동화, 멜로와 나무가 서 있는 재미있는 크록스 신발을 만들었다.      


상업 작품의 독점 저작권을 비웃으며 디즈니를 조롱하고 일부러 저작권 위반 광고를 시작해 서브웨이, 디즈니, 코카콜라, 마이크로 소프트로부터 고소를 당한 미국의 작가 미스치프 (MSCF) 그룹과 비교한다면 대단히 다른 점이다. 기업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정도로 ‘기후 변화’ 문제를 다루었다고나 할까?     


예술가라기보다는 상업적인 작가에 가깝다. 이 지점이 스티븐 해링턴이 다양하고 많은 작품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이유가 될 것 같다.      


원래 예술이란 시대와 거리를 두고 들여다보며 문제를 지적하는 작업이다. 피카소는 산업 혁명이 만들어낸 정형성에 반발하는 비정형적 입체 그림을 그렸다. 고호는 산업화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프랑스의 시골 마을에 은둔해 살며 산업화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는 영혼을 시골 풍경을 강렬하게 그림으로써 표출했다. 모네나 르느와르와 같은 인상파 화가들은 산업화가 만들어 내는 모든 명확함에 대비하여 인간의 주관적인 눈으로 보는 경계가 흐릿한 풍경을 그려냄으로써 산업화의 흐름에 반항했다.      


시대의 구조와 떨어져서 바라볼 수 없다면 창의성과 새로움은 나올 수 없다. 그런 면에서 해링턴은 앞으로도 더욱 상업적 요구에 부합하는 그림을 그릴 것 같다. 나는 ‘멜로’라는 캐릭터를 사실 디즈니의 미키 마우스와 크게 구별하지 못하겠다.      


마지막 전시장을 나오며 본 벽면 그림의 멜로는 해링턴의 그림 여기저기에서 (좋은 의미로도 나오고 나쁜 의미로도 나오는) 초록 나무 룰루에 안절부절못하며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구부러진 지구 위로 불안한 구름들이 떠다닌다. 마치 해링턴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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