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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미치 Jun 30. 2024

창경궁의 나무들

남편! 자기는 바쁘니까 나 혼자 창경궁 다녀왔어. 자기는 내가 혼자 하는 여행, 혼자 가는 공연, 혼자 전시회 가는 거 다 괜찮다고 생각하잖아. 나이도 늙었는데 서로 붙어 있지 좀 말자!     


창경국 통명전 뒷길 언덕으로 가니까 생강나무가 있더라.


잎을 떼서 찢으면 생강 냄새가 나서 생강 나무라고 하지. 김유정의 단편 소설 ‘동백꽃’에서는 주인공이 예쁜 동네 처녀 점순이를 자빠 뜨린 풀숲에 있던 노랑 동백꽃이 생강나무야. ‘그리고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 온 정신이 고만 아찔했다.’ 우리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지금은 생강나무에 유채꽃 같이 생긴 노란 생강꽃이 지고 푸른 열매가 달려 있어. 여름을 지나면서 노란색, 붉은색으로 변한다고 해. 가을에 검은색이 되면 옛날 이곳에 살던 궁녀들이 열매를 짜서 기름을 내어 머리에 바른대. 동백기름이라고 하지. 반짝반짝 기름을 바르고 단장을 하고 임금님이 찾아와 주길 기다렸겠지. 그래서 아마 통명전 뒤에 나무가 많은 가봐.     


생강나무 옆에는 국수나무가 많았어.


가느다란 줄기가 면발을 닮았고 색깔도 하얀색이라 국수로 착각하기 쉬웠다고 하지. 우리 결혼식에도 손님들에게 국수 대접을 했어. 그런데 국수나무는 공해가 심한 지역에서는 잘 자라지 못한다고 해. 그래서 지표 식물이라고 한대. 창경궁에는 국수나무가 많은 걸 보면 공해가 심하지 않고 맑은 공기를 유지하나 봐. 도시 한 복판에 있는 곳인데 말이야. 산책하기 좋은 곳이지.   

  

결혼하기 전 자기나 나나 독야 청청 살고 싶었지. 경춘지에서 대온실 가는 길에 있는 흰 줄기가 멋들어지게 뻗어 나간 백송처럼 말이야.


진짜 희귀한 나무라 나는 창경궁에 가면 꼭 백송 앞에서 사진을 찍어. 원래는 중국에서 들여온 나무라고 해. 그런데 백송은 고고하게 홀로 자라나는 것만 좋아해서 자꾸 경쟁에 밀려 희귀한 나무가 됐다는 거야. 우리는 결혼하면서 이제 백송이 되기는 포기한 거지.     

 

나는 꽃이 되고 자기는 나비가 되어 20여 년을 함께 살고 있지. 대온실 들어가는 길 옆에 있는 ‘자생식물 학습장’에 냉초 보라색 꽃들이 활짝 피었더라.

수수한 보라색 꽃에 나비들이 어찌나 폴짝대고 날아다니던지 나비가 자기 같다고 생각이 들었어. 아무래도 나는 풀이름답게 ‘냉초’이지.      


결국 냉초가 고개를 숙이고 약속을 했지 말이야. 우리 한평생 머루, 다래 따 먹고살자고. 그런데 말이야 냉초 옆에 바로 다래나무가 있었어. ‘자생 식물 학습장’ 들어가는 입구 울타리 위로 무성하게 잎을 내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가장 굵다는 명성이 있는 유명한 다래나무로 천연기념물 제251호라는 거야. 창덕궁 창건 당시부터 있어서 600살이래. 늦여름에 다래 열매가 열린다고 하는데 그때 함께 보러 올까? 창경궁은 야간 개장을 해서 선선한 밤에 가도 좋아.   

   

대온실 앞에는 잘 다듬어진 회양목 정원이 있어.


나는 회양목은 당연히 다 이런 모양인 줄 알았어. 아니래. 원래는 춘당지 옆에 있는 회양목처럼 자유 분방한 모양이래. 너무 다듬어서 저런 모양이 나오는 거야. 좀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바람에 흔들리는 춘당지 옆 회양목의 깨발랄함이 좋거든.     



회양목은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목재이기도 하대. ‘조선 왕조 실록’에 여러 차례 나오는 나무로 목활자나, 호패, 표찰로도 쓰이고 도장, 머릿빗, 장기알로도 귀하게 쓰였다는 거야. 나무속 물관 세포와 섬유 세포의 크기가 거의 비슷해 목질이 균일해서 작은 글자를 새기기 좋고 치밀하고 단단해서라고 해. 여러모로 쓰임새가 많은 나무야.     


대온실 옆 화장실 가는 길에서 반갑게도 조릿대를 만났어.



신혼 초 시골 시댁에서 돌아가신 어머님이 쌀에서 돌 걷어내라고 나한테 건네준 그 조릿대야. 그때는 뭐냐고 묻지도 못했는데. 그 조릿대 나무를 여기서 봤어. 대나무과야. 길쭉하고 뾰족한 잎 때문에 서로 엮어 내기 좋아서 주방 기구로 만들었겠지. 아주 어릴 때는 시장에서 복조리를 팔았던 게 생각이 나.     


그래도 왕궁의 위엄은 뭐니 뭐니 해도 소나무에 있겠지. 창덕궁 전각 여기저기 앞에 멋지게 서서 위엄을 드높이고 있어.



다가가기만 해도 향기가 나는 향나무도 경춘전, 환경전 옆에 멋들어지게 서 있더라.


왕의 침실이었던 환경전, 왕비의 침실이었던 경춘전이 따로 그리고 나란히 서 있었어. 그럼 부부는 따로 자는 게 원칙이야. 그러다 가끔 합궁이 이루어지지.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내가 창경궁에서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홍화문에서 춘당지 가는 담벼락길에 있는 ‘연리목’이야.

두 개의 나무가 뒤 엉겨서 어마어마하게 큰 자태를 자랑하지. 회화나무와 느티나무가 엉겨 붙어 하늘로 뻗어 나갔어. 회화나무가 18 세기초, 느티나무가 20 세기 초 심어진 걸로 추정이 되니까 벌써 100년이 넘은 거야. 감동적인 나무지.     


뭐 우리도 이 나무처럼 엉겨 붙어서 사는 셈이지. 반찬 투정이나 운전하는 법 같은 사소한 일로 서로 이혼하자고 싸우지만 인생의 큰 문제에는 찰떡궁합인 우리. 그래서 20년 넘게 같이 사는 것 같아. 한 100년 같이 살아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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