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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미치 Jul 14. 2024

서울로 7017, 초록이 주는 힘

기차 시간을 놓칠까 바 허겁지겁 지방으로 가는 동생을 마중하고 나오는 길. 아슬아슬한 기차 시간에 마음을 졸이다 역사를 나오니 여기저기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과 외국인들, 다들 무슨 일 때문인지 분주하고 곁을 두지 않는다. 지하철로 들어가지 않고 계단을 따라 밖으로 나오니 서울역 앞은 10차선이 넘는 도로 위로 자동차들이 우레처럼 몰아쳐 다닌다. 자동차 매연가스 냄새, 오염된 공기가 폐로 들어와 기분이 나빠진다.    

 

남대문 쪽을 돌아보니 서울역 위로 고가 도로가 떠 있다. 가림막 사이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초록빛. 나무 하나 제대로 서 있지 않는 삭막한 서울역 앞 풍경 속에서 한 점의 힐링 같아 끌리듯 고가 도로로 올라갔다. 마치 비 올 것처럼 하늘은 흐리지만 햇빛이 나지 않아 오히려 걸을 만하다.     

고가 도로 위에 들어서자 한눈에 들어오는 푸른빛 풍경, 마음이 편안해진다. 잘 가꾸어진 소나무 여러 그루가 서울역 오래된 역사 건물과 어우러져 한 장의 조선화 같다. 곧게 선 나무들이 나름대로 울창한 사이로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푸른 갈대 같은 수크령 뒤, 분홍 트렁크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 긴 머리 젊은 여자, 슬픈 얼굴로 하염없이 서울역을 내려다본다.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왜 트렁크를 끌고 와 이곳에 서 있을까? 남자 친구와 헤어졌을까? 부모와 싸우고 집을 나왔을까? 바람이 불 때마다 긴 머리카락이 수크령 가는 줄기와 함께 흔들린다.   


  


그 옆에 아직도 생생한 붉은 수국. 지나가는 연인이 예쁘다고 탄성을 지른다. 이 길을 따라 늘어선 많은 나무 가운데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 피어있는 꽃. 주변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붉은색, 분홍색, 노란색 소담한 수국꽃. 남자 친구의 팔짱을 끼고 한껏 웃는 여자 친구는 나중에 다시 오자고 남자 친구의 귀에 속닥거린다. 한참 좋을 때다!     



모감주나무 뒤 의자에 숨어 있듯 앉아 있던 하얀 머리 할머니, 옆에는 누추한 짐이 올려진 허름한 유모차가 서 있다. 피곤한 얼굴로 나무 화분에 기대어 있다. 짐을 들어줄 자식은 없을까? 마중 나온 형제자매가 없을까? 돌아갈 집이 없는 것일까? 나무 그늘이 할머니를 위로하는 것 같다.     


넥타이에 흰 와이셔츠, 손에 스타벅스 커피를 든 30대 남자. 물끄러미 연잎이 떠 있는 작은 연못을 들여다본다. 생각이 복잡한 얼굴. 근처 회사원 같다. 옆 빌딩 안 회사에서 나온 것일까? 아직은 퇴근 시간이 아닌데 왜 긴 길을 걸어 여기까지 올라왔을까? 상사에게 야단을 듣고 마음이 무거워진 걸까? 자신의 한 실수를 자책하는 걸까? 연잎 사이 투명한 물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 본다.   


  

키 큰 고광나무 뒤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중년 남자, 뒷모습이 외롭고 막막하다. 주변 회사들은 아직 한창 일할 시간. 무슨 일로 이 긴 길 위에 멈춰 서서 막막한 뒷모습으로 담배를 태우고 있는가? 회사를 그만뒀을까? 사업을 하다 어려운 경우에 처했는가? 커다란 나뭇잎이 지나가는 사람들로부터 남자의 얼굴을 가려준다.   


천천히 길을 걷다 돌아오는 길. 갑자기 도로 위에 사람들이 많아졌다. 6시 퇴근 시간이 막 지났군. 지나가는 이들은 지친 얼굴들이다. 고가 옆으로는 회사들이 빼곡히 들어찬 거대한 빌딩이 연이어 서 있고 그 빌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다. 물푸레나무, 보리수나무, 대나무, 빨간 수국, 소나무, 자작나무를 지나가며 하룻 동안의 피곤과 스트레스를 풀기를 바란다. 내가 편안해졌듯이 바쁘고 힘든 하루를 보낸 그들에게 초록이 치유의 힘을 줄 것이다.                     


* 서울역 옆 고가 보도인 서울 7017은 1970년에 준공이 되어 2017년에 지어진 곳이라는 뜻에서 나온 이름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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