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비행기 작은 창 너머 아래 휘황 찬란한 불빛이 화려하게 반짝거렸다. 같이 온 동료 사이에서 작은 환호가 터져 나왔다.
“โซลนี่เอง! (서울이다!)”
"ในที่สุดก็มาแล้ว! (드디어 왔어!)"
나는 마음이 부풀어 터질 듯했다. 지난 3년간 한국에 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과 도전, 실망과 긴 기다림에 시달렸는지. 긴 장발에 덥수룩한 수염이 난 한국 남자에게 세게 당한 후 한국으로 오기 위해 많은 난관을 넘어왔다.
3년 전 만난 한국 남자는 미친놈이었다. 그를 처음 만난 날도 나는 평소처럼 시장 뒷골목에 있는 식탁이 세 개밖에 없는 허름한 식당을 지키고 있었다. 카우팟 (태국식 볶음밥), 쏨땀 (파파야 샐러드), 팟타이 (태국식 볶음면), 똠얌꿍 (태국식 국) 같은 걸 싸게 파는 그런 가게이다. 손님은 하나도 없고 중학교에서 돌아온 막내 남동생은 구석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숙제를 하고 있었다. 발에 겨우 매달린 낡은 운동화 바닥난 구멍이 눈에 크게 들어왔다.
뒷골목 구석에 있는 내 식당을 그가 어떻게 찾아왔는지는 모르겠다. 먼지를 뒤집어쓴 남자가 커다란 배낭을 메고 손에 든 핸드폰을 들여다보더니 힐끗 우리 식당을 보고는 들어왔다. 턱에 수염이 더부룩한 채 피곤한 얼굴로 나를 보더니 대뜸 핸드폰을 들이댔다.
핸드폰에서 ‘มีต้มยำกุ้งมั้ยครับ? (똠양꿍 있습니까?)’가 기계 음성으로 흘러나왔다. 외국 사람인 줄은 짐작했다. 그런데 핸드폰에게 태국어를 시키다니. 처음에는 못 알아듣고 ‘อีกครั้งนึง! (한번 더!)’를 외쳤다. 그가 대강 알아들었나 보다. 그가 다시 핸드폰을 터치했고 그때 나는 그게 똠양꿍 달라는 얘기라는 걸 알아 들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문 쪽 의자에 배낭을 올려놓고는 식탁 앞에 앉았다. 주문을 받으려고 다가가니 그 남자에게서는 생선 썩는 냄새 같은 땀냄새가 지독하게 났다. 정말이지 그렇게 냄새나고 추레한 남자에게는 음식을 팔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침부터 지금까지 겨우 100 밧 (한국돈 4천 원 정도) 팔았다. 재료비도 안 되는 돈이다. 어쩔 수 없다. 똠양꿍을 만들어 줬다. 구석 식탁에서 숙제하던 남동생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자꾸 한국 남자를 쳐다봤다.
근데 이 남자가 한 숟가락을 떠먹자마자 얼굴을 찌푸리는 게 아닌가! 그리곤 아마 이렇게 외친 것 같다. ‘어휴! 매워! 먹을 수가 없네.’ 순간 나는 그게 한국말인 걸 알아챘다. 나도 핸드폰으로 한국 드라마를 가끔 보니까.
얼굴이 빨개진 그는 핸드폰을 다시 치켜들더니 내 쪽으로 돌렸다. 핸드폰에서는 이런 소리가 났다.
“ต้มยำกุ้งไม่อร่อย. ทำอาหารถูกต้องไหม? (똠양꿍이 맛이 없다. 제대로 요리한 거 맞냐?)”
잠깐 ‘내가 고춧가루를 너무 많이 넣었나?’ 생각했다. 그러나 평소대로 고춧가루를 넣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내가 만든 똠양꿍을 맛있게 먹는다. 맵다고 하는 건 저 남자의 입맛일 뿐이다. 나는 얼른 옆에 가서 대꾸해 주었다.
“เผ็ดมั้ย? คนแถวบ้านของเรากินอย่างเอร็ดอร่อย (맵니? 우리 동네 사람들은 맛있게 먹는데).”
듣자마자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다시 핸드폰을 들고는 여기에 대고 말하라는 시늉을 했다. 다시 한번 말해 주었다. 그러자 남자가 기가 막히다는 얼굴을 하더니 다시 핸드폰을 터치했다. 그러자 냉정한 기계어가 또 이렇게 흘러나왔다.
“จะบอกว่ารสนิยมของฉันแปลกๆหรอคะ? ไม่รู้จักความพึงพอใจของลูกค้าหรอครับ? (내 입맛이 이상하다는 겁니까? 고객 만족 모릅니까?)”
무슨 길 가다가 망고 썩어가는 이야기인가? 그리고 왜 이렇게 인상을 쓰는가 말이다. 식당 주인의 자존심은 생각 안 해주는가? 무례한 남자라 당당하게 맞서 주었다.
“คนแถวบ้านของเรากินเก่ง. ฉันไม่ขายให้กับลูกค้าที่เจ้าระเบียบอย่างคุณ. (우리 동네 사람들은 잘 먹는다. 너 같은 까탈스러운 손님한테는 안 판다).”
그의 핸드폰이 내 말을 찰떡처럼 알아들은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처음 들어올 때부터 지저분하고 냄새가 나서 음식을 팔고 싶지 않았다. 당당히 외쳤다.
“ออกไป (나가라!)”
그가 당황했다. 내가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키자 그가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일어서더니 나가려다 무언가 잊은 듯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놓은 채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손을 빼자 나온 건 지폐였다. 한국말로 중얼거리며 나에게 지폐를 건넸다.
“그래도 먹었으니 돈은 내야지!”
100 밧!! 큰돈이었다. 똠양꿍이 50 밧인데 2 배다. 그러나 그는 똠양꿍을 먹지 않았다. 돈을 받을 수 없다.
“นายไม่กิน ไม่ต้องการเงิน. (너가 안 먹었으니 돈은 필요 없다).”
내가 정색을 하며 손을 흔들자 그가 잠시 난감하게 보다가 지폐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기분이 나빠졌다. 밥을 안 먹었는데 돈을 내겠다니 지금 나를 거지로 보는 건가? 우리 식당이 그렇게 거지같이 보였나? 한국 사람들은 태국 사람들을 가난하다고 무시한다는데 나를 무시하는 건가? 화가 났다.
“บอกว่าไม่จำเป็นไงครับ! ออกไปเลยครับ! (필요 없다니까요! 나가세요!)”
그에게 외쳤다. 그런데 못 알아들은 것 같다. 그가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대로 서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의자에 있는 그의 배낭을 들어 올렸다. 끙! 뭐가 들었는지 무거웠다.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배낭을 들어 올려 문 앞에 내다 놓았다.
“ออกไปเลยครับ! (나가세요!)”
그제야 그가 사태를 이해한 것 같다.
“아 뭡니까?”
그가 이렇게 외친 것 같다. 그리곤 배낭을 찾아 문 앞으로 달려 나왔다. 그때 남동생이 큰 소리를 질렀다.
“พี่ครับ! ลิง! (누나! 원숭이!)”
순간 뭔가 검은 물체가 옆으로 휙 튀어 나갔다. 순식간이어서 금방 알아채지 못했다. 놀란 건 그가 미친 것처럼 한국말로 외쳤기 때문이다.
“내 핸드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