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ใช่ครับ. กระเป๋าสะพายหลังของเธอ. (맞아요. 니 배낭 이라고요.)”
남자가 기가 막혀 ‘헉’ 하며 한국말로 외쳤다.
“그걸 메고 여기까지 와요? 미쳤어요?”
내가 맞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한국 남자는 픽하고 웃었다. 하지만 얼른 내 뒤로 돌아와 배낭을 잡아 내렸다.
“여기 빨래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ไม่มีอะไรหายไป. (아무것도 없어지지 않았다.)”
배낭을 내리는 남자는 뭐가 우스운지 또 큭큭거리며 웃었다.
“ฉันไม่ได้แตะอะไรเลยจริงๆ. (나는 진짜 아무것도 손 안 댔다니까.)”
내가 발끈하자 남자는 손을 저으며 됐다는 얼굴이었다.
“어쨌든 너무 더우니까 어디 시원한 데 갑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남자는 핸드폰을 꺼내더니 내 앞에 들이댔다.
“มันร้อนมาก ไปที่เย็นๆกันเถอะค่ะ! (너무 더우니까 어디 시원한 데 가자!)”
카페에서 망고 주스 한잔을 시원하니 마시니 무거운 배낭을 메고 뛰었던 더위가 한숨에 내려갔다. 수염이 더부룩한 남자가 너그러워 보였다. 그가 또 핸드폰을 터치했다.
“มาถึงที่นี่แล้ว กินข้าวเย็นแล้วค่อยไปค่ะ! (여기까지 왔으니 저녁 먹고 가요!)”
저녁을 먹자고! 여동생이 식당을 제대로 지키고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 또 어디 놀러 가고 아픈 엄마만 혼자 있을 가능성이 크다.
“ไม่ได้ครับ. วันนี้ต้องกลับไปให้ได้ค่ะ. ฉันคืนเป้ให้แล้วก็ไม่เป็นไรค่ะ. (안 돼요. 오늘 꼭 돌아가야 해요. 배낭 돌려줬으니까 됐어요.)”
비싼 주스 한잔을 다 들이켰으니 이제 일어나야 한다. 막차 시간도 가까워 온다.
“이 미친 여자가! 맛있는 거 사준다니까!”
그가 한국말로 중얼거리며 다시 핸드폰을 때렸다.
“รู้สึกขอบคุณมากก็เลยตั้งใจจะให้เป็นตัวอย่าง. กินข้าวเย็นแล้วค่อยไป. (너무 고마워서 사례를 하려고 한다. 저녁 먹고 가라.)”
“ไม่ได้นะคะ! ถึงเวลารถรอบสุดท้ายแล้วค่ะ! (안 돼요! 막차 시간 다 됐어요!)”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카페를 나왔다. 길을 몰라 이리저리 두 러번 거리는 사이 그가 배낭을 메고 따라 나왔다. 버스 정류장이 보이고 사람들이 몇 명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저걸 놓치면 안 된다!’ 급하게 뛰어가려는데 그가 외치며 내 티셔츠 끝을 잡았다.
“บอกแล้วไงว่าให้กินข้าวเย็นก่อนไป! (저녁 먹고 가라니까!)”
내가 무시하고 뛰어 나가는데 ‘부우우욱~~’ 소리가 났다. 미친!!! 티셔츠가 찢어지고 있었다. 하긴 엄마가 입던 걸 물려 입어 10년이 된 티셔츠라 여기저기 너덜너덜해진 옷이다. 왜 하필이면 제일 헤어진 데를 잡아서 티셔츠가 반으로 찢어졌다.
“แม่จ๋า! (엄마야!)”
급히 두 팔로 윗 몸을 가렸다. 다 헤어진 브래지어만 입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과 카페 창으로 내다보던 사람들,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경악하며 쳐다봤다.
“บ้าไปแล้วหรอ?! ขี้หนวด เป็นผู้ชายเกาหลี!! (미쳤니?! 수염쟁이 한국 남자야!!)”
내가 그에게 소리치자 그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내 앞에 서더니 두 팔로 사람들의 시선을 가렸다. 그러나 시선은 도로를 지나가던 버스 창으로 내다보는 사람들에게서 오고 360도로 오고 있는데 어떻게 막을 것인가? 내가 배낭을 가리켰다.
“เสื้อผ้า! ขอเสื้อเร็วๆค่ะ! (옷! 빨리 옷 주세요!)”
그가 금방 알아듣고 어깨에 멘 배낭을 내리더니 전속력으로 배낭을 열고 옷을 꺼내 들었다. 잔뜩 꾸깃꾸깃한 커다란 티셔츠였다. 하지만 나는 얼른 옷을 받아 구멍에 얼굴을 집어넣었다. 생선 썩은 냄새에 얼굴이 찌푸려졌지만 할 수 없었다. 그가 내가 옷 입는 걸 도와줬다.
티셔츠를 다 입자 그제가 조금 마음이 진정되었다. 사방을 돌아보자 사람들이 그냥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그냥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를 노려 보았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ซักเสื้อผ้าแล้วเดี๋ยวจะคืนให้. เธอจงออกมาหา! (옷은 빨아서 나중에 돌려주겠다. 네가 찾으러 와라!)”
그가 핸드폰을 때렸다.
“ฉันจะซื้อเสื้อผ้าให้. ใส่เสื้อใหม่ไปสิ! ไป! (내가 옷 사주겠다. 새 옷 입고 가라! 가자!)”
“ไม่ชอบ! จะไปแล้ว! (됐다. 그냥 가겠다!)”
내가 돌아서려는데 핸드폰에서 또 냉정한 기계어가 흘러나왔다.
“เสื้อตัวนั้นเป็นเสื้อของผู้ชาย. แม่ไม่สงสัยเหรอเวลาใส่เสื้อผ้าผู้ชายมา? (그 옷 남자 옷이다. 어머니가 남자 옷 입고 오면 의심 안 하시니?)”
이런 구식 멘트가 먹히다니... 태국은 아직 불교의 윤리가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나라임에 틀림없다. 워낙 옷을 사 본 적이 없어서 어느 옷 가게로 가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는데 샹그릴라 호텔 지하에 지나가면서 본 게 생각났다. 방콕까지 배낭을 메고 찾아와 준 미친 짓이 너무 고마워서 꼭 저녁을 먹이고 택시 태워서 보내야겠다고 결심했다.
지나가는 택시를 바로 잡았다. 택시 기사가 냄새나는 옷에 코를 벌름거렸지만 태국 여자와 함께 동행해 샹그릴라 호텔로 가자고 해서인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짐작이 갔지만 상관할 바 아니다.
택시가 호텔 앞에 멈춰 서고 내가 먼저 배낭을 메고 내리자 태국 여자가 따라 내려 호텔을 보더니 눈이 커졌다.
“ที่นี่ไม่ใช่โรงแรมแชงกรีล่าหรอครับ? (여기 샹그릴라 호텔 아니에요?)”
나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ข้างในนี้มีร้านขายเสื้อผ้า. (여기 안에 옷 가게 있어요.)”
“จริงหรอครับ? (진짜예요?)”
내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자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러나 호텔에서 나오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우리의 곁을 지나가며 코를 막았다. 내가 맡아도 땀범벅으로 일주일간 배낭 안에서 썩은 옷에서는 생선 썩는 냄새가 났다. 여자가 어쩔 수 없는지 나를 따라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로 내려가 옷 가게 앞에 섰다. 특급 호텔 옷 가게답게 남자용 턱시도와 여성용 화려한 이브닝용 드레스가 가득했다. 그걸 본 여자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했다.
“จะซื้ออันนี้หรอครับ? (이거 사려고요?)”
쇼핑을 잘 안 다녀서 이런 가게에는 티셔츠를 팔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อาจจะมีเสื้อยืดด้วยก็ได้ค่ะ. (아마 티셔츠도 있을 거예요.)”
여자가 굳은 표정으로 노려 봤지만 어쩔 것인가? 티셔츠에서는 지독한 냄새가 계속 났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코를 틀어막고 힐끗힐끗 쳐다봤다. 다른 데 가는 건 귀찮다. 나는 가게 안으로 발을 옮겼고 여자는 난감한 얼굴로 나를 따라왔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유니폼을 입은 태국 직원 둘이 영어로 “웰컴!” 하고 허리 굽혀 인사했다. 영어는 이런 예의하고는 어울리지 않지만 뭐 태국식 방식이니까. 그런데 직원들의 얼굴이 금방 험상궂어졌다. 내 뒤에 따라오는 여자를 본 거다. 직원 한 명이 소리쳤다.
“Not anyone come in this store! (여기 아무나 막 들어오는 데 아닙니다!)”
이럴 줄 알았다. 나는 바로 주머니에 들어 있던 황금 카드를 꺼내 보여줬다. 스위트룸용 전용 카드다. 직원들은 바로 알아보고 허리를 굽히며 미소를 지었다.
“What are you looking for, Sir (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직원들은 우리가 티셔츠를 찾는다고 하자 기가 막히다는 얼굴을 했다. 나는 남자 정장용 와이셔츠를 달라고 했는데 직원이 건네자 파타야 여자가 질겁을 했다. 그때 나는 좋은 생각이 났다. 왜 그때까지 그 생각을 못 했는지 모르겠다. 방에 깨끗한 티셔츠가 하나 있다. 미키 마우스가 그려진 남녀 공용이다.
“มีเสื้อยืดสะอาด ๆ อยู่ในห้อง. ใส่อันนั้นไปสิ! (방에 깨끗한 티셔츠가 하나 있다. 그거 입고 가라!)”
“เข้าใจแล้ว. ไปเอามาสิ. จะเปลี่ยนชุดในห้องน้ำนะ. (음... 알았다. 밑으로 가져와라. 화장실에서 갈아입을게.)”
옷을 가지고 호텔 로비로 내려오자 여자가 안절부절못하며 서 있었다. 나를 보더니 대번 소리쳤다.
“ทำไมมาสายขนาดนี้? ถึงเวลารถรอบสุดท้ายแล้ว. (왜 이렇게 늦었니? 막차 시간 다 됐다.)”
말을 마치자마자 여자가 내 손에 든 티셔츠를 낫아 채더니 여자 화장실로 달려 들어갔다. 여자가 나왔을 때는 미키 마우스가 커다랗게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역시 고급 소재라 핏이 살아 여자가 상큼하게 변해 있었다. 그때 나는 여자가 제법 예쁜 얼굴이라는 걸 깨달았다.
“รู้สึกขอบคุณ! วันหลังค่อยมาเอาเสื้อผ้านะ (고맙다! 나중에 옷 찾으러 와라.)”
여자가 소리치고는 호텔을 달려 나갔다. 내가 문으로 달려가는 여자를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여자가 멈추더니 돌아서 나에게 돌아왔다.
“รถคันสุดท้ายออกไปแล้ว. ขอยืมค่าแท็กซี่หน่อย! (막차 떠났다. 택시비 빌려 줘라!)”
“ให้ยืมค่าแท็กซี่แต่ไม่ต้องจ่ายดอกเบี้ยก็ได้. แต่มีเงื่อนไขแทน. กินข้าวเย็นแล้วค่อยไป! (택시비는 빌려 주는데 이자는 안 내도 된다. 대신 조건이 있다. 저녁 먹고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