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눈큰 Aug 02. 2024

개미 눈물만큼의 운동


‘중년의 건강 관리는 노년에 자신이 어떤 몸으로 살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일’이라는 말을 우연히 듣고서(정확하지는 않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자극을 받은 건 지난봄이었다. 서너 달 이어진 번역 일 때문에 봄이 왔는지 꽃이 폈는지도 모르고 집에 가만히 앉아 맥북만 두들겨대던 시기였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부실했던 내 몸뚱이! 지팡이 대신 노트북 가방을 들고 병원 대신 도서관을 걸어 다니면서 사는 노년을 꿈꾸는 내가 뭘 믿고 이토록 운동을 안 하는 건지 몹시 한심했다. 그래도 코로나 시국 이전에는 건성으로나마 매주 요가를 하러 다녔고, 그 후로 한동안은 무기력하고 우울한 마음 떨치려고 혼자 씩씩하게 등산도 다니고 산책도 나가고 수영도 했었는데, 반백이 된 후로는 마땅히 하는 게 없다니.


나는 당장 다음날부터 우리 아파트 뒤에 있는 한 대학교 운동장으로 출동했다. 그런데 근사하게 깔려있는 빨간 트랙 위에서 운동을 하다 보니 괜히 겉멋이 들었나 보다. 운동은커녕 외출도 잘 안 하는 아줌마가 조만간 달리기 시합에라도 나가는 선수처럼 각 잡고 며칠 걷고 뛰고 했더니 금방 탈이 났다. 무릎이 어찌나 아픈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지도 못할 정도의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다 하루는 소파에 앉아 아픈 무릎을 주물럭거리면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식후 10분 걷기’에 대해 알게 되었다. 식후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걷는 운동이 혈당 조절뿐만 아니라 체중 관리와 전반적인 건강 상태, 심지어 정신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나 뭐라나. 혈당 스파이크니 포도당 분해니 하는 구체적인 설명들보다 밥 먹고 달랑 10분만 빠르게 걷다 오면 된다는 말이 어쩜 귀에 쏙 들어오던지. 파워 내향형에 운동 기피형 인간인 나로서는 솔깃할 수밖에.

나는 무릎이 조금 나아지기를 기다렸다가 그 조언대로 식후 10분씩만 걸어보기로 했다. 그 와중에도 요령을 피워서, 바쁘고 귀찮은 아침은 빼고 점심과 저녁 식사 후에만 걷는 걸로. ;; 우리 집에서 지하철역이 있는 큰 도로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대략 6분. 그러니까 밥 먹은 뒤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역까지만 갔다 오면 운동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는 거였다.


흠… 날마다 그러길 벌써 석 달쯤 했니? 과연 효과가 있었냐고?

결과적으로 말하면 상당히 효과가 있었다. 일단, 무슨 운동을 해도 그대로였던 몸무게와 뱃살이 많이 빠졌다. 늘 3~4킬로그램만이라도 가벼워지면 좋겠다 싶었는데 그 소망을 이미 이룸. 아침마다 공복에 샤오미 체중계로 재는 바디 점수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항상 부족하다고 표시되던 근육량과 단백질이 표준 상태로 바뀌었고, 체지방도 상당히 낮아졌다. 물론 10분 걷기의 효과를 조금 더 높이기 위해서 추가로 틈틈이 집에서 스쾃이나 아줌마 체조도 했고 술과 야식을 줄이며 되도록 일찍 자려고 노력했던 것도 이 같은 결과에 도움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효과가 보이니까 신이 나서 이것저것 더 하게 되더라는.  


식후 10분 걷기는 건강뿐만 아니라 생활에도 도움이 되었다. 집순이인 나는 밖에서 해야 할 일들을 미루고 쌓아두었다가 한번 외출할 때 한꺼번에 해치우곤 했다. 하지만 10분 걷기를 한 뒤부터는 할 일을 그때그때 해치울 수 있어 편하고 홀가분했다. 걷는 길에 있는 약국, 마트, 편의점, 빵집, 세탁소, 은행 ATM기 등에서 간단한 볼일은 웬만큼 해결이 되니까. 어떤 날엔 10분을 더 걸어가서 시장에서 싱싱하고 저렴한 식재료들을 사 와 부식비도 아꼈다. 또 걸으러 나갈 때마다 음식물 쓰레기나 재활용품을 한 개라도 꼬박꼬박 들고나가 버렸더니(경비 아저씨는 저 아줌마가 뭘 저렇게 날마다 야금야금 내다 버리나 하셨을 듯) 집안도 한결 청결해진 기분이다. 게다가 머릿속에 잔뜩 엉켜있던 생각들이 그 짧은 시간 동안 정리되기도 하고 새로운 글감을 줍기도 한다.


아니, 적절한 타이밍에 10분씩, 하루 총 20분 투자하는 것으로 이 모든 게 가능하단 말인가? 운동 혹은 산책이라고 말하기에도 뭣한 최소한의 활동으로 내가 얻는 소소한 활력, 건강, 즐거움, 여유라니. 이렇게 자랑 아닌 자랑을 하고 있는 나의 운동 루틴이 하루 1~2시간씩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들에게는 개미 눈물만큼 하찮을 테지만, 세상만사 개인마다 다른 것이다…라고 소심하게 외쳐 본다. 그런데 사실 그 말부터 틀린 것 아닌가. 개미 눈물이 하찮다니! 어떠한 생명이든 그 눈물은 절대 하찮지 않으리. 개미 눈물만큼의 내 운동도 그러하다. n



매거진의 이전글 미용실? 아니, 도서관 갔다 왔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