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왜 공부를 못하고 이리저리 나를 고통에 밀어 넣다가 병원에 갔을까. 겨우 어제 일인데 벌써 기억나지 않는다. 일기를 쓰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겠고 너무 일상적인 일이라 그럴 수도 있다. 늘 그랬듯이 내가 정해놓은 시간에 공부를 시작하지 못했고, 아침 10시도 되지 않은 시간에 이미 하루가 망했다고 생각해서 공부를 시작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고 나면 시간이 아무리 많이 남았더라도 도저히 공부가 시작이 안 된다. 이제라도 시작하면 안 하는 것보단 나음을 알면서도 행동으로 안 옮겨진다. 누군가는 게으르다 하겠지만 나는 하고 싶어도 못하는 거라고 말하고 싶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서 '공부를 해야지!'하고 나를 괴롭히는 일은 매우 괴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9시쯤에 일어났지만 오후 3시가 돼서야 정신을 차렸다. 잃어버린 6시간을 뒤로하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렸다. 보통 이런 문제가 일어나면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 책을 읽으며 지식을 채우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답임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불안한 감정을 달래기 위해서 더더욱 정신과나 심리학 서적을 찾는 것 같다. 선생님이 마음의 문제를 '지식'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더욱 힘들다고 했는데 나는 여전히 지식을 놓기 힘들다. 내 문제가 이어지는 이유는 내가 내 행동의 심리적 이유를 찾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웬디 우드의 <해빗>이라는 책과 아들러 심리학을 다룬 <미움받을 용기>를 빌렸다. 프로이트와 빅터 프랭클, 라캉과 에리히 프롬에 이어 이제는 아들러까지 손을 뻗게 됐다.
선생님에게는 저번 상담과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거나, 정해놓은 규칙이나 계획이 하나라도 깨지면 이미 모든 게 다 망쳐진 것 같아서 더 이상 진행을 하지 못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특히 세세한 생활계획표를 짜고 하나라도 엉키면 그날을 버리며, 다음날을 위해서 더 세세하게 짠 다음 그게 다시 되지 않으면 계획을 다시 짜는 것을 반복하는데, 계획이 잘 안 지켜진다고 하소연을 했다. 내가 정말 공부에 적성이 있는 건 맞는지 하는 생각도 했다.
"세세한 디테일에 과하게 집착한다고 이해해도 될까요?"
"네. 그렇게 따로 의식하지는 않았는데, 들으니 확실히 그런 것 같아요."
선생님은 내 말을 받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즘에 이메다님 같은 사람이 많아요. 과도하게 세세한 디테일에 집착해 그것을 지키려고 하며, 지키지 못했을 때 자책하죠. 그러면 저는 이렇게 여쭤봐요. '왜 그렇게 행동하세요?' 대개는 이렇게 대답하죠.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러자마자 바로 다른 디테일에 집착하는 이야기를 시작해요. 처음에는 A에 집착하는 이야기, 나중에는 B에 집착하는 이야기를 하고 왜 그러냐 물어보면 C에 집착한다고 동문서답을 하죠."
선생님은 잠시 숨을 골랐다.
"디테일이든 뭐든, 그 행동이나 규칙에 집착하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거예요. 집착하는 것은 현상이지 문제의 원인이 아니죠. 어디에 집착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왜 집착하는지가 중요해요. 내가 이상하게 행동하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힘이 부족한 거죠. 집착은 현상에 불과한데 말이에요."
곧 침묵이 찾아왔다. 선생님은 입을 열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았다. 전에 상담센터에서 함께 논의해본 바가 있어 그것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나는 단계를 작게 작게 나눠서, 작은 것을 차근차근 다 맞춰가야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결과가 좋더라도 중간에 단계가 하나라도 틀어졌다면 그것은 실패라고 생각한다. 주변의 평가가 아무리 좋든, 내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안 된다. 그건 완벽하지 못한 것이고, 완벽하지 못한 건 실패이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왜 성공해야 하고 완벽해야 할까? 실패하면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고, 내 가치를 평가절하할 것 같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그래서 나는 남들에게 버림받고 내가 가치 없어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 상황을 모두 통제하고 완벽하려고 노력한다. 타인에게 거절당하고 내 가치가 부정당하는 기분은 정말 견디기 힘들다.
선생님은 예상과는 다른 말을 했다. 내 말을 긍정하면서도 부정하는 것 같았다.
"이메다님이 디테일에 집착하시는 이유는 논리적인 체계가 있는 것 같지만 중간중간에 비는 부분이 너무 크죠. 그렇지 않나요?"
"네, 그렇죠?"
"물론 실제로 그렇게 믿고 그렇게 행동할 수도 있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는 아닌 것 같아요. 그동안의 이메다님을 생각해보면, 진짜로 이메다님이 행동하는 이유가 아니라 나름의 지식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자기 행동을 추론해본 내용이 아닐까요? 아예 비논리적인 것도 아니고, 철저하게 논리적인 것도 아니라 애매하잖아요. 논리적인 구성을 띄지만 중간중간에 비약이 너무 많아요. 차라리 비논리적인 구성이면 또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정말 이메다님의 이유가 그거라면, 문제는 사실 다 해결한 거거든요. 마음의 문제는 마음으로 해결해야지, 지식으로는 마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말씀하신 내용이 정말 이메다님 마음인지 들여다보세요."
선생님 말이 어느 정도 이해되었지만 동시에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물론 지식으로써 논리를 엮어간 부분도 있을 테지만 2년 동안 전문 상담사와 상담해본 결과 내린 결론이 이것이었다. 내 상담내용과 시간, 상담사님을 모두 부정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이런 느낌은 병원에 오고 처음에도 느꼈었다. 그때도 이야기하고 사과를 받았지만, 오늘 다시 그런 기억이 떠올랐다.
선생님은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침묵을 깨고 말을 이어갔다.
"이메다님은 불가능에 도전하려는 성향이 있어요. 요즘 그런 사람들이 특히 많죠. 성향은 문제가 아니에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세부적인 내용에 과하게 신경 쓰다가 큰 그림을 망쳐서 실패하고 말죠. 그런 다음에 다시 똑같은 일을 하면서 계속 실패해요.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 실패하는 게 아니라, 비효율적으로 도전해서 실패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사람이 왜 실수를 수정을 안 할까요?"
"그러게요. 듣고 보니 그렇기는 한데, 저는 아무래도 계획이나 자세가 제대로 안돼서 실패한 것 같은데. 잘만 하면 될 것 같아요. 하하"
"그럼 계속해보시는 것도 좋죠. 하하하. 계속 실패하는 게 삶의 원동력인 사람들이 있어요. 보통 사람들은 보면 이해가 안 되겠지만 그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고, 거기서 얻는 이득이 있거든요. 성공이 목적이 아니라 실패가 목적인데, 그걸 본인이 모르니까 실패하는 자신에게 화가 나는 거죠. 사실 불가능은 불가능이잖아요.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그리고 나는 천재가 아니라고 인정해야 마음이 편해요. 그래야 마음이 편하고 성과가 나와요. 그리고 설사 이메다님이 성공했다고 쳐봐요. 본인이 그걸 성공이라고 인정하겠어요? 어떻게든 스스로가 결점을 찾아내서 이건 실패라면서 완벽하지 않다고 할 거잖아요. 세상에 완벽은 없는 거예요."
"완벽"이라는 단어의 기원이 된 고사, "화씨지벽"
상담 중에도 계속 이야기했지만, 물론 완벽하다는 것은 이룰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완벽하려고 힘쓰면 더 나은 결과가 나온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이성적으로 보면 세세한 디테일에 집착하다가 완성도가 오히려 떨어지는 상황이지만 나는 그럴수록 더욱 사소한 일에 집착하게 된다. 병원을 나서면서도 그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선생님의 조언이 그리 와닿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공격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설명이 어느 정도 납득은 가지만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도저히. 내가 추구하는 목표가 불가능이라는 것은, 목표가 너무 높다는 뜻이 아니라 내 능력의 한계치가 너무나 낮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 일은" 안되니까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너한테는" 안되니까 포기하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나를 비난하고 무시하고 깎아내리는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보인다. 나를 떠나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래서는 안된다. 절대. 난 늘 잘 해내야 하고, 겸손해야 하고, 성공에도 거들먹거리지 않으며 대수롭지 않은 일을 한 척 해아하며, 힘 들이지 않고 해낸 척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무능한 존재가 되지 않는다. 그래야 내가 오만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 그래야 내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 있다. 그래야만.
게다가 내가 실패하기 위해서 불가능에 도전하는 거고, 실패하기 위해서 일부러 세세한 디테일에 집착해서 내 도전을 망치는 거라고? 물론 교육심리학과 상담심리학을 배우며 '자기장애전략'같은 개념을 배우기는 했지만,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 나는 순수하게 더 나은 결과를 위해서 계획을 짜고 세부내용을 치밀하게 설계하는 거다. 절대 실패하기 위해서 그렇게 행동하는 게 아니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