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쁜 날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메다 Dec 22. 2021

나는 공부를 못하는 아이일지 모른다.

12월 3일 + 2월 15일, 정신과 상담

요즘 좀 무기력해서 상담 기록을 바로 쓰지 못했다. 웬일인지 일기도 써놓지 않았다. 상담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별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만 카카오톡 나에게 보내기에 이런 말이 있을 뿐이다.



요즘 공부가 참 안 된다. 정확하게는 도저히 시작을 할 수가 없다. 전에도 한번 했던 이야기 같지만 갖가지 이유 때문에 공부 시작이 너무 어렵다. 오늘 쓸 형광펜 색깔을 못 골라서 머리가 너무 터질 것 같아서 하지 않는 날도 있다. 잠을 깰 용도로 일어나자마자 웹툰을 봤는데, 너무 만화에 심취하느라 정해놓은 공부 시간보다 10분 늦어졌다고 그날 공부를 다 포기한 일도 있었다. 철저한 계획을 세워놓고 그 계획에서 하나라도 틀어지는 사건이 발생하면 계획을 지키기 위해서 하루를 통으로 포기하는 날이 많았다. 내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하고.


하지만 감정 기복은 그리 심하지 않았고 우울함이 너무 깊어서 허우적대지도 않았다. 우울하지 않다고는 못하겠지만, 우울은 내 발목 높이에서 잔잔하게 찰랑대고 있다. 이 정도는 이제 우울한 것 같지도 않다.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기억할만한 사건도 없었고 감정적으로 자극이 된 경험도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에게 요즘은 괜찮다고 말했다. 잔잔하고, 기복 없고, 별 일도 없고, 공부가 잘 되면 기분이 좋고 안 되면 기분이 나쁘다. 평소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약간 처량한 느낌이 가끔 들기는 하는데 괜찮다고 덧붙였다.


선생님은 처량하다는 단어에 꽂혔다.

"처량하다고요? 그게 무슨 말일까요."

"음... 점점 뒤처지고 저 혼자만 있는 느낌이 들어요."

선생님은 다시 내 느낌을 구체적으로 물었다. 이런 질문은 상담할 때나 자주 들었지 의사 선생님에게는 별로 들은 적이 없었다.

"뭐가 뒤쳐지고 혼자 있는 느낌이 들어요?"

"제가 처음에 고시 공부를 시작했을 때는 나이가 어렸거든요. 그런데 벌써 3년이나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 게 참 처량하네요. 합격자 통계나 수기를 보면 보통 제 나이 때에 합격을 하거든요. 평균 수험기간도 3년 6개월 정도예요. 그런데 저는 남들보다 훨씬 일찍 시험 준비를 시작해서 2년이나 시간을 날렸어요. 남들은 다 지금쯤이면 합격할 정도의 공부 수준이 갖춰져 있고 또 합격을 하고 있는데, 저는 아직 강의나 지식수준도 기본강의 수준이고요. 시간을 버린 것 같아서 허망하네요."

선생님은 내게 공부를 꽤 많이 했다며 왜 그럼 지금 수준이 기본강의에 머물러 있는지 물었다.

"처음 준비했을 때는, 1차 시험을 치고 난 후에 우울증이 와서 공부를 할 정도의 에너지나 정신이 안 됐어요. 그러다가 8월에 병원에 왔었고요. 두 번째 해는 계속 선생님이랑 같이 있었는데,, 선생님이 봐도 공부할 정도의 수준은 됐죠? 그런데 그냥 지금 돌아보니 공부를 해놓은 게 없네요. 이렇게 해서 과연 될까요. 제가 헛된 일에 시간을 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요. 벌써 3년째인데... 제 2년은 어디로 간 걸까요."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듣더니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이메다 님은요, 보면 늘 공부가 안 되세요. 그리고 어떻게 해야 내가 공부를 할까 보다는 내가 왜 지금 공부를 못 하고 있고, 안 하고 있고, 왜 결과가 안 좋게 나왔는지 이유를 찾으려고 해요. 마치 내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부정적인 면에 포커스를 맞추는 이유는 내가 잘할 거라는 자신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라며 질문을 던졌다. 내 안에 있는, 또는 내가 경험해왔고 남들이 생각하는 나는 너무나 거대한데 실제의 내가 그 기대를 충족시킬 자신이 없을 때 우리는 기대를 축소하는 게 아니라 내 안의 나를 검증할 기회를 회피한다고 했다. 나도 교육심리학에서 배운 소위 '자기 장애 전략'이다. 내가 내 기대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너무나 스스로에게 괴롭고 힘든 일이므로, 내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고 합리화하는 것이 내 안의 자아가 살아남는 전략이 된 것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남들은 이제 붙을 시기인데 나는 아무것도 안 했어'라는 고민은, 사실 이런 고민을 함으로써 주의가 분산되는 효과 자체를 노리는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즉 부정적인 고민과 걱정으로 뇌의 에너지를 쓰면 그만큼 공부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적어지게 되고 그러면 내가 실제 시험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고 난 다음 나는 스스로에게 '올해는 너무 걱정이 많고 스트레스가 많아서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어. 다음에 제대로 하면 진짜로 몰라!'라는 위로를 건넬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나는 공부를 못하는 아이일 수도 있어'라는 거죠."

의사는 선문답을 하듯이 말을 이어갔다.

"특히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들 중에 이런 친구들이 있어요. 어릴 때는 공부를 엄청 잘했고 지금도 공부를 열심히 해요. 그런데 성적이 안 나오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내가 왜 점수가 안 나오지?' 고민하고, 스트레스받고 그러다 보니 성적이 더 안 나오고 그러는 거죠. 물론 원래 머리가 좋고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새 학교에서 적응을 못했다거나, 해당 과목이 적성에 안 맞는다거나 해서 점수가 안 나오는 경우도 있어요. 다른 요인이 있을 때도 있고요. 그런데 가끔은 그냥 '너는 공부를 못하는 아이야' 하고 이야기하고 싶은 애들이 있어요. 그냥 어렸을 때는 수준이 너무 낮고, 주변 친구들 수준도 낮아서 점수가 잘 나왔다가 중고등학교 올라가면서 자기 수준 찾아서 내려가는 애들이 있거든요. 그러면 그 애들은 '아, 나는 초등학생 때 중학생 때 잘했는데, 나는 공부를 잘하는데 다른 이유가 있어서 이러는 걸 거야!' 하면서 머리를 싸매고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그런데 사실 그냥 공부가 적성에 안 맞는 아이들인 경우가 있어요. 그런 친구들은 공부는 일단 포기해야 본인이 더 행복해지거든요."

"안 되는 걸 잡고 있으면 절대 성공하지 못할 테니까?"

"그렇죠. 사실 예쁘게 포장한 말로 '네 적성은 다른 곳에 있어!'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일단 공부는 네 길이 아니야.'라고 할 필요가 있죠. 적성이 다른 곳에 있는지는 어떻게 알아요. 잘하는 게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거지. 그런데 다른 걸 잘 하든 못하든 간에 일단 공부는 네가 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거예요. 물론 이메다 님에게 완전히 적용되는 말은 아닐 거예요. 행정고시 1차 시험을 붙었으면 머리는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이메다 님이 공부를 못하는 아이라고 단정 짓는 건 아니지만 '공부를 못하는 아이일 수 있다'는 거예요. 일단 그걸 인정해야 마음이 편해지죠."


꼬아서 듣는다면 어차피 나는 그 시험에 못 붙으니까 포기하라고 들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들리지는 않은 걸 보니 다행이다. 그래도 상태가 괜찮나 보다. 나는 저 말을 이렇게 받아들였다. '나는 항상 성공할 수 없고, 최선을 다하더라도 시험에 떨어질 수 있다.' 


공무원 채용 시험은 상대평가이고 5급 공채는 어쨌거나 한국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이다. 뛰어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탁월한 사람만이 붙는 시험이며, 합격 가능성보다는 탈락 가능성이 훨씬 높은 시험이다. 그런데 나는 머릿속에 '나는 무조건 이 시험에 합격해야 해. 안 그러면 나는 쓰레기야.'라는 생각이 내재돼 있다. 그렇다 보니 내가 혹여나 최선을 다했는데도 탈락할 수 있다는 경우가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는 내 생각보다 못난 사람임을 인정해야 하고, 그건 나의 자존감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 능력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보다는 변명거리를 만들어가며 계속 실패하는 것이 오히려 내 자존감 유지에는 더 효과적이기 때문에 나는 계속해서 과한 불안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당장의 알량한 자존감을 유지하는 데에 유리할지는 모르나, 건강한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식으로 도망만 쳐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고 사회적으로나 물질적으로도 성공하기 힘들다. 적당한 긴장이야 필요하겠지만, 과한 불안과 긴장을 안고 하는 일과 적당한 긴장이나 느긋한 마음으로 하는 일의 완성도 중에 뭐가 더 높을지는 불 보듯 뻔하다. 내가 실패할 수 있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인정한 뒤에야 비정상적인 과도한 불안이 낮아질 테고, 그러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다.


물론 머리로는 이렇게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였지만, 내가 내 생각보다 작은 존재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참 어렵다고 느낀다. 마음이 어지러워서 그런가 오늘 쓴 글도 두서없고 중구난방같이 읽힌다. 하지만 다시 읽고 퇴고할 마음의 힘이 남아 있지는 않다. 다음에는 더 정돈된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실패하는 것이 삶의 이유인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