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시험이 묻지 못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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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진로를 고민하며 방황하던 때, 시간강사 근무를 했던(전편 참고) 학교의 J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1주일간 자리를 비우는데, 대신 수업을 맡아달라는 내용이었다. 다시 수업하고픈 마음은 없었으나, 자습만 시켜도 된다는 말에 나는 결국 제안을 수락했다.
1학년과 수업과 3학년 수업에 들어갔기에, 작년에 가르쳤던 1학년(당시 2학년)을 볼 일은 없었다. 그렇게 1주일이 다 지나던 4일째 목요일, 점심을 먹고 다시 돌아오는데 어디선가 '이메다쌤~'하는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여학생 둘이 급하게 뛰어오고 있었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도 하기 전에 아이들이 말을 쏟아냈다.
"쌤! 쌤 찾을라고 개학하고 교무실 전부 다 돌아다녔는데 안 보이던데, 쌤 어디 갔었어요?"
작년에 맡았던 1학년 학생들이었다. 아이들은 내 수업이 재미있었다며, 올해도 쌤이랑 같이 수업하고 싶었는데 같이 못 해서 서운하다며 장난스럽게 화를 냈다. 잔잔하지만 인상 깊은 기억이다.
내게 H고 시간강사 시절은 기억하기 싫은 기억이었다. 하지만, 그날 본 아이들 덕에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시간강사를 하며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아픈 날보다는 기쁜 날이 더 많았다. 아이들이 내 수업을 즐거워한 만큼, 나도 수업하며 즐거웠었다.
아이들의 말은 내게 큰 위로가 됐고, 나는 내 생각만큼이나 자격 미달인 교사는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기억에 남고 좋은 수업을 한 선생님이 됐으니 말이다. 여전히 나는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 완전한 부적격자까지는 아니리라 생각했다.
교사의 꿈을 접게 된 곳에서, 그렇게 다시, 교사가 될 용기를 얻었다.
역사 임용은 크게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 역사교육론의 4과목으로 나뉜다. 과목마다 필수라고 하는 책이 3-4권씩 있는데, 시간이 부족했던 나는 과목별로 1-2권의 책만 공부했다. 혼자서 진행하자니 영 속도가 붙지 않았다. 내 딴에는 열심히 했지만, 루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3과목의 개념 공부를 끝내고 나니 훈련소 입소 날이 찾아왔다.
7월 17일부터 8월 4일까지의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나는 학교 사회복무요원으로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시각장애인 학생 한 명을 전담 마크하며 돌보는 게 내 업무였다. 일과 중에는 틈틈이 정리한 자료를 보며 외웠고, 오후 2시 10분에 아이가 하교하면 4시 30분 퇴근까지 필기가 필요한 공부를 했다. 퇴근 후에는 컨디션에 따라 1~4시간씩 더 공부했다.
역사 임용은 참 단순한 시험이다. 문제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빈칸을 뚫어놓고 '빈칸에 들어갈 용어를 쓰시오' 하는 유형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내용에 밑줄을 그어놓고 '이걸 자세히 설명하라, 원인과 배경을 설명하라, 결과를 설명하라' 하는 식이다. 둘 다 답이 매우 명확하다.
이를 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역량이 필요하다. 첫 번째로 자료가 의미하는 바를 잘 이해해야 한다. 제시된 사료(역사 자료)를 보고 무슨 시대의 어떤 내용인지 파악해야 한다. 두 번째로는 암기를 잘해야 한다. 어떤 내용을 묻는지 파악하고 나면, 외운 내용을 그대로 쓰면 된다. 잘 외웠으면 맞추고 모르면 틀리는 정직한 시험이다. 공부 방법도 특별할 게 없다. 최대한 내용을 압축해 정리하고, 그걸 계속 보며 달달 외우면 된다. 학교 사회복무요원은 이런 식의 공부가 불가능한 환경은 아니었다.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고, 11월 26일 시험 날이 됐다. 전반적으로 어려운 난이도였고, 나는 탈락을 예감하고 2차 준비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까봤더니 합격이었다. 운 좋게도 내가 열심히 외운 내용이 킬러 문제로 나와서, 거기서 점수를 번 덕이었다. 나는 급하게 2차 시험 준비 스터디를 찾았다.
2차 시험은 수업 실연과 면접이다. 먼저 실연은 중고등학교 교육과정 전 범위에서 출제된다. 1시간짜리 수업의 대본과 개요를 작성하는 ‘지도안 작성’ 시간이 주어지고, 다시 그 개요에서 20분간 수업할 수 있는 분량이 실연에 출제된다. 실연 문제를 확인하면 다시 20분의 시간이 주어진다. 그 후 면접관 앞에서 20분간 수업을 진행하는 구조다.
면접은 일반 사기업 면접과 달리, 면접관이 수험생에게 질문하지 않는다. 문제가 이미 정해져 있다. 구상실에서 먼저 문제 3개를 확인하고 10분간 답을 고민한 채 면접실에 들어간다. 3문제를 다 답하고 나면 즉석에서 추가 문제를 확인하고 답하면 된다.
수업과 면접 모두 1차 시험과는 상당히 결이 다르다. 정해진 답이 없어서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다. 또, 단순히 내용을 암기만 해서는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든 시험이다. (그렇다고 암기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각각 쉬는 시간에 자료를 볼 수 있기에, 예상 주제와 답변을 암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미리 알 수 있는 실연은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직접 자기 생각과 방식을 만들고 이를 평가받는 것이 매우 중요한 시험이다. 이 때문에 스터디 없이 준비하기는 상당히 어려웠다.
나도 스터디를 구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사회복무요원이라는 신분이 발목을 잡았다. 8시 30분부터 16시 30분까지는 스터디를 할 수 없다는 제약은 치명적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혼자서 2차 시험을 준비했다.
궁여지책으로 나는 주변인들에게 수업과 면접을 봐달라고 부탁했다. 연락이 끊어진 지 2~3년이 넘은 사람도 몇 있었는데, 당장 합격이 급해 염치 불고하고 연락했다. 연락 대상도 다양했다. 심지어는 1년 전에 한 달 본 게 전부인 교생 때 지도교사 선생님께까지 연락했을 정도다. 수업 경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리지 않고 부탁했다. 단 한 명도 거절하는 사람이 없었다. 너무도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었다. 그들 덕분에 나는 혼자서도 2차 준비를 잘할 수 있었다.
앞서 말했듯 실연은 지도안 작성과 실연으로 나뉜다. 지도안은 다 같이 작성하고, 실연은 순서대로 치기 때문에 실연 뒷번호를 뽑을수록 유리하다. 대기시간 동안 머릿속으로 전개 방식이나 판서 방법, 수업 중 넣을 장치 등을 구상할 수 있고, 가져온 자료를 보면서 미리 준비해 온 수업 자체를 새롭게 암기할 수도 있다.
나는 정말 운이 좋게도 마지막 번호를 뽑았다. 대기시간이 6시간이나 됐다. 많은 시뮬레이션을 거쳤고, 판서는 미리 준비해 온 판서 자료를 암기해서 작성했다. 후련한 마음으로 시험장을 나오는데, 나가는 길을 안내해 주는 선생님의 얼굴이 뭔가 낯익었다. 자세히 보니 내게 시간강사를 제의했던 J 선생님이었다. 우리는 반갑지만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좋은 신호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면접도 운이 좋았다. 면접은 실연과 달리 주제를 미리 알 수 없기에 번호에 따른 유불리가 없다. 면접은 앞 번호를 뽑아 빠르게 시험을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2차 시험이 끝났고, 결과는 합격이었다. 나는 내가 2차에 뛰어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실연 뒷번호를 뽑았다는 운과 많은 현직 선생님의 도움 덕에 합격할 수 있었다.
내가 임용시험을 치면서 느끼기에, 역사 임용시험은 교사를 뽑기에는 부적합한 시험이다. 사고력을 요구하지 않는 암기식 시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차는 사고력과 창의성을 요구하지만, 나는 이 또한 운과 암기로서 통과해 냈다.
나는 시험을 크게 세 종류로 구분한다.
첫째는 연역적 사고가 필요한 시험이다. 수학이나 경제학 같은 과목이다. 정해진 공식과 논리에 따라서 정해진 답을 도출하기 위해 연역적으로 쭉쭉 나아가는 과목이다. 이런 시험은 정해진 답을 도출하기 위해서 주어진 자료나 식을 내가 스스로 조작하고 방향을 정확하게 설정하는 역량이 중요하다.
두 번째는 응용과 직관이 필요한 시험이다. 행정고시 행정학이나 정치학, 사회과학의 논술형 시험들이다. 개념과 배경지식이 필요하고, 이를 그대로 인출하는 문제도 있다. 하지만 결국 개념과 이론을 바탕으로 현상을 설명하거나 해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문제가 핵심이다. 이런 시험은 일반론을 외운 대로 뱉어내기만 해서는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없다. 개별 사례를 분석하고 이론을 그 사례에 접목해서 '나만의' 답안을 뽑아내야 한다.
마지막은 이해와 암기가 필요한 시험이다. 이해와 암기 없는 시험이 어디 있겠냐마는, 이 시험은 오로지 이해와 암기만을 요구하는 게 특징이다. 역사나 법학 같은 과목이다. 주어진 자료를 분석해서 그 자료가 뭘 의미하는지만 알면 된다. 답으로는 새로운 무언가나 내 시선과 생각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외운 일반론을 그대로 읊기만 하면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다.
세 시험 모두 서로 다른 사고력을 요구하지만, 나는 세 번째 시험은 첫 번째, 두 번째와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인풋과 아웃풋이 다르지만, 세 번째 시험은 인풋과 아웃풋이 같다.
무언가가 체계에 투입되면 이는 전환과정을 거쳐서 결과물인 산출이 된다. 공부란 수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며 인풋을 넣고, 이를 정제된 글이나 답안, 문제 해결이라는 아웃풋으로 전환하는 행위다. 시험공부의 아웃풋은 문제를 풀고 답을 내는 행위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투입이 아닌 전환 과정이다.
교과서에 적힌 개념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는 그대로 뽑아내는 행위는 올바른 배움이 아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전환이 없기 때문이다. 전환 과정 없이 인풋이 그대로 아웃풋으로 나오게 되면, 아는 건 많지만 정작 할 수 있는 건 없는 상황에 봉착한다. 박학다식하지만 현명하지는 못한 사람이 된다.
세 번째 시험은 인풋이 그대로 아웃풋으로 나오는 시험이다. 이런 공부를 주로 한 사람은 전환 과정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느끼더라도 제대로 할 수 없다. 대학에서 4년간 배워온 사고방식과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 이미 인풋=아웃으로 굳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문제가 안 풀리면 아웃풋을 전환하기보다는 인풋을 더 늘려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안타깝게도 역사 임용은 세 번째 종류의 시험이다.
나를 포함해서, 많은 역사 수험생은 더 많은 강의를 듣고,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내용을 외움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리고 그러면 충분히 합격할 수 있다. 역사 임용은 원래 그런 시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2차 시험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2차 시험은 정답이 정해져 있는 시험이 아니라 2번째 시험에 가깝고, 모두 같은 내용의 인풋을 넣고 어떻게 다른 아웃풋이 나오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이기 때문이다.
1차 시험을 준비하며 사고방식이 굳어져 버린 일부는 2차 시험을 잘 준비하지 못한다. 그래서 높은 1차 점수만이 유일한 시험의 합격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수업과 면접마저 인강으로 지식을 외워서 대비한다. 수업 방식이 아니라 많은 내용지식이 합격의 키라고 생각한다. ‘만능 틀’을 만들어서 모든 상황을 ‘외운 대로’만 대답한다. 소위 말해 묻는 말에 대답하는 대신, ‘나 이렇게 많이 아니까 뽑아주세요’ 하는 식이다. 그렇게 합격한 사람은 지식이 많은 선생이겠지만, 요즘 교육에 적합한 선생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문제는 나 또한 그런 사람이다. 교사로서는 부적합하다. 이 사실을 행정고시를 준비하며 절실히 깨달았다. 나는 그간 내가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암기를 잘하는 사람이지 똑똑한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행정법은 곧잘 했지만, 경제학과 행정학은 도저히 감을 잡지를 못했다. 경제학의 연역적 사고나 식 조작을 많이 어려워했다. 행정학에서는 ‘아는 내용을 마음대로 이야기하지 말고, 묻는 말에 대답하라’는 피드백을 정말 많이 받았다. 내 사고방식은 인풋이 바로 아웃풋으로 직결되는 폐쇄적 사이클로 고정돼 있었다. 논리적 사고와 응용력,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관점이 부족함을 여실히 느꼈다. 이건 내가 행정고시를 반쯤 포기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나는 내용을 있는 그대로 뱉어내는 건 잘하지만, 특정한 목적을 위해 일련의 내용을 잘 조합하는 역량은 많이 떨어졌다. 이론 지식을 바탕으로 현상을 해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재능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이 역량들은 수업을 잘 진행하기 위해 꼭 필요한 역량들이다. 수업은 성취기준 달성을 위해 달려 나가는 일련의 과정이고, 학생들에게 제시하는 교육적 처방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임용시험을 준비하면서 ‘이 시험이 내게 매우 잘 맞다’는 생각을 하며 동시에 ‘나는 교사로서는 부적합한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교사는 창의적이고 응용을 잘하는, 열려 있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가져야 할 직업이다. 1번째와 2번째 시험에서 요구하는 역량이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시험을 포기하고 세 번째 시험을 공부하고 있었으니 공부하면 할수록 의문이 커졌다.
운 좋게도 2차 시험까지 잘 보면서 합격할 수 있었으나, 이는 말 그대로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실연에서 뒷번호를 뽑은 덕분에 수업할 대본을 미리 ‘암기’했고, 판서는 가져온 자료를 참고했다. 나는 이론 지식을 잘 응용해서 합격한 게 아니라, 운이 좋아서 암기할 시간을 더 받은 덕분에 합격했다. 교사로서 필요한 역량을 제대로 평가받았는지 의문스러웠다. 합격은 정말 기뻤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가 교사로서 적합한 인간인지 고민이 더욱 커졌다.
내가 이 시험에 붙는 게 맞는 건가?
나는 교사 임용시험에 통과했지만, 마음 속 교사 임용시험에서 합격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일단 밥벌이는 해야 하므로, 나는 교사로서의 삶을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 내가 교사로서 부적절한 인간이라면, 빠르게 면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한데, 부적격인 인간이 자리를 차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직 공익 생활이 남아있어 1년 2개월이라는 여유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며 내가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할 수 있었다. 무엇이 교사에게 필요한 자질인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건 뭔지 따위를 말이다.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던 시간은 내게 벗어날 수 없는 족쇄였지만, 인간 이메다를 성찰하고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다음 글에서는 이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던 시간의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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