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존재다
저 세상에서 세종대왕을 만났다고 하자. ‘세종대왕님’ 하고 부르면 반가워하실까?
뭐지 이놈, 하실 게다.
세종대왕은 자신이 세종인지 모르니까.
죽은 후에 남은 자들이 붙인 이름이니까. 이런 걸 시호(諡號)라고 한다.
시호는 중국에서 시작했다. 왜 만들었을까?
옛날 사람들은 이름도 그 사람의 일부라 믿었다.
그래서 죽은 사람을 ‘원래 이름’으로 부르면, 죽은 사람(즉 귀신)이 듣고, 왜 불러, 하면서 나타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죽은 당사자는 알 수 없는 이름을 붙여, 죽은 사람을 지칭했다. 그게 시호다.
이름이 그 사람의 일부라는 생각은 우리나라로 와서 다양하게 변주된다.
성종 때 영의정을 지냈던 이극배는 두 손자 이름을 ‘수겸’과 ‘수공’으로 지었다. 겸손을 지키고, 공손을 지키라는, 강력한 메시지다.
아들 이름을 ‘삼백’이라 지은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는, 아들 커가는 ‘꼴’을 본 뒤 이런 시를 썼다.
‘평생 술을 마셔 몸이 이 모양인데, 너 역시 내 길을 따르는구나. 네 이름을 삼백이라 지은 걸 후회한다. 하루에도 삼백 잔씩 마실 것 같아서.’
서양 사람들도 이름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믿었다. 플라톤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걸 피하려고 동물이나 식물 따위에 맹세하기도 했단다.
개와 헤겔을 동시에 싫어했던 쇼펜하우어는, 집에 살던 개를 헤겔로 불렀다. 이후 개가 사람보다 낫다는 것을 깨닫고, 개 이름을 아트만으로 바꾼다. 참된 자아라는 뜻이다.
요즘이야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름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펄프 픽션’과 ‘킬 빌’에서 우마 서먼을 봤을 때 남달랐다.
우마는 중도(中道)를 가리키는 티벳 불교 용어다. 아버지 로버트 서먼이 컬럼비아대 종교학 교수로 티벳 불교 대가다.
기독교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의 부모는 그를 낳았을 때 천하를 얻은 듯 기뻤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가 평생 착하게 살기를 바라며 ‘예수님 찬양’ 앞 글자만 따서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아이는 자라서 역대급 막말러가 된다. 남성, 여성, 중년, 예비군, 대학생, 서울 사람, 부산 사람, 드라마, 동물 등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인기 비결이 되고 정치적 자산이 되었으니 멈출 이유가 없었겠지.
뒤늦게 후회하고 사과한다고 한다. 4번 정도 중복해서 모욕당한 나는 사과 받은 적이 없는데?
어쨌든, 본인 말대로 20대 치기 어린 행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새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 이름에 어울리는 건 용서와 관용과 희망과 환대라는 걸 잊지 않길 바란다.
[‘괴짜 경제학’과 ‘세상 물정의 물리학’은 책 자체가 훌륭하다. 이름에 관한 부분은 특히 재밌으니 읽어보시길. 조금 더 지식을 넗히려면 ‘족보, 왜 사대부에게 꼭 필요했는가’와 ‘왕의 이름, 묘호’도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