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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요우 Oct 08. 2021

미용실 유랑민

덜어내기

  미용실 유랑민으로써 느끼는 여러 미용실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실력, 액대, 분위기, 대법, 태도들은 제각기 다르지만 늘 머리가 마무리될 무렵 똑같은 말을 건넨다는 것다. 마치 범인을 검거하고 수갑채우며 미란다법을 고지하는 형사처럼.

" 일 하루는 샴푸하지 마세요."

그 말을 끝으로 기대의 시간이었던 변신의 순간은 끝이 난다. 중간 중간 거울을 바라며 확인 거듭했지만 큰 기대는 역시 안하길 잘했다. 펌 한 후 마주하는 낯선 모습은 리 썩 달가운 외양은 아니기에.

  사실 미용 몇 달에 한 번씩 방문해야하는 건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라마틱한 외모 변화 얻고 돌아가능성은 희박할뿐더러 오히려 그동안 얼마나 홀대했는지 관리 소홀에 대한 지적과 선천적으로 열악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마이너의 애환을 인지하게 되므로. 

내 게으름과 무지에서 비롯되었다고 변명해 보지만 돈과 시간을 나는 기분은 그다지 좋을 순 없다.

마치 잘못해서 교실에 불려가 꾸중듣는 느낌과 유사달까.


  긴긴 상담이라 부르고 실상은 헤어디자이너와 나의 눈치 임이 시작되는 스타일 상의와 금액 협상 순간이 되면 시술의 종류를 놓고 헤어 완성도를 미리 상상해보며 바삐 머리를 굴린다. 시간당 지불할 금액 앞에 과연 합당한 산정법일지? 값지불을 할만큼 가치가 있는 실력자일지? 리뷰가 좋다한들 나의 의도를 잘 파악할만큼 합이 맞을지? 난이도가 최상급인 저주받은 머리결을 과연 소생시킬 수 있을지? 면접보듯 짧은 시간에 캐치해본다. 하지만 기술은 언변보다는 실력이 말해주는터. 몇마디의 대화만으로는 가늠하기 어렵다.

  사실 국수 기계처럼 돈을 들이는만큼 순순히 머리가 잘 뽑아져 나온다면야 뭐가 그 큰 고민일까? 결제할때 살짝 움찔하며 약간의 미동이야 있겠지만 그보다 몇 달간 지속될 정서적 만족감에 아깝지 않을텐데. 사뿐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미용실을 나와 바깥 거리의 유리창이나 차창에 계속 비춰보며 전보다 나아졌다는 충만한 기쁨에 빠질텐데.

  막상 큰 돈을 들여 바꿔보려 마음먹어도 이에 부합하는 마땅할 곳을 아직도 찾지 못했다. 머릿속을 채우고 지혜를 심어줄 자기 계발서나 교양서적을 찾는것이 아니고, 지난 삶을 반추하고 재정비하기 위한 에세이를 찾는게 아니라 그저 큐티클의 안녕을 위해 고가의 비용을 지불하려는 것인데.

헤어 디자이너의 상업적 수완과 연륜에서 나온 자신감, 고난도의 대화 스킬에 혹해서 권유하는 제품을 사보고 비교적 고가의 시술을 감행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결국 나아질 것 없는 스타일의 한계를 절감하고 말았다.

이쯤되면 그들의 실력 문제라기보다는 내 모질의 문제일 것이다.


  자기계발비가 나오는 복지가 탄탄한 기업에 근무하던 때였다. 항공사 스튜어디스에게 지급되는 품위 유지비처럼 나를 위한 쓰임이란 바운더리안에서라면 요가나 필라테스던, 도서를 구매하던, 옷을 사고 맛있는 식사를 하던 허용되었다. 그 전 직장은 돈을 쓸 시간이 없이 일을 하는 절약과 검소의 사내 문화였는데 이곳은 달랐다. 패션업계에서는 드물게 야근 수당과 자기계발비가 지급되었다.

  나는 야근으로 지친 심신을 풀어줄 안마 의자와 열심히 일한 뒤 떠날 휴가에 쓸 용도로 32인치 큰 캐리어를 구매했다. 강철 체력을 키우기 위한 자전거와 상쾌한 하루를 열어줄 믹서기도 차례로 들였다. 그리고, 기분 전환 겸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고가의 샵으로 향했다. 결과는 예상했던대로였다. 몸이 부서져라 야근으로 벌어들인 급여는너무 허무하게 소진되어 버렸다.

  그 이후로는 "김장하셨어요?"같은 부담없는 말투로 반갑게 맞이하는 동네 미용실로 전환해보기도 하고, 놀라지 않을 금액의 체인점들을 순회하기도 했다. 부담스러운 권유나 제안보다 내 의도를 긴 설득없이 이해하고 재현해주는 곳을 찾아 헤매이기 시작했다.


  내가 추구하는 미용실의 조건이란 그다지 까다로울게 없다.

머리를 완성해내는 과정의 흉물스럽고 우스꽝스런 모습이 드러나지 않을 2층 외진곳이면 좋겠다. 바깥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곳은 아무래도 기피하게 된다.

과감하고 민망한 질문을 던지는 곳보다는 부드럽고 살갑게 고객을 응대해주는 곳이면 좋겠다. 취조에 가까운 날카로운 지적과 불편한 시선, 상업적으로 무장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상술은 사양한다.

예약제로 운영되거나 손드문 시간에 방문하고 싶다. 시선의 간섭을 받지 않고 조용히 외모의 변화를 기다리고 싶기에.

철이 많이 지나지 않은 잡지들이 구비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요즘엔 탭이 그 자리를 대신하며 잡지란 구시대적 유물처럼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자고로 은행이나 미용실에선 빳빳한 유광 코팅된 잡지를 펴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사진 사진과 활자가 주는  즐거움이 사라져가니 아쉬운 부분이다.


  일련의 과정들이 끝나면 중화의 시간이 어김없이 다가온다. 그 무렵쯤이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케 세라세라! 주사위는 던져졌다. 될대로 되라. 회유와 제안의 줄다리기는 지났고 롤을 말고 푸는 긴장의 시간은 끝났다.

뻣뻣하게 굳은 몸을 쭈욱 펴본다. 발끝을 앞뒤로 꺽어보며 몇십분 뒤면 완성될 결과를 기다린다.

  중화는 마음이 물렁해지고 느슨해지며 몸이 자유로워지는 시간이다. 어차피 별다른 변화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이라는 일말의 희망을 기다리는 마음에 가깝기도 하다.

언젠가는 새로 머리 1초내로 너무 괜찮다는 말을 들을 순간이 오겠지? 그렇다면 바로 정착이다. 런 곳을 서 찾게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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