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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맘 손과장 Nov 19. 2020

출근하고 싶은 날

퇴근하고 싶은데 출근을 못해 슬픈 휴직 생활

나는 대기업 인재개발원에 근무하는 교육담당자다. 많은 연수 시설들이 그렇듯 내가 근무하는 인재개발원도 공기 좋은 산 속에 위치하고 있다. 취업준비생일 때는 ‘저길 붙어도 어떻게 저기서 일하나’ 하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그 회사에 다닌지가 10년이 다 되어 간다. 1년에 한 두번, 혹은 몇 년에 한 번 연수원을 찾는 직원들은 “이런 데서 일하시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하고 부러워하기도 하는데, 나는 웃으면서 마음 속으로는 ‘여기로 출퇴근 해보면 그런 말이 안 나올텐데’하고 생각한다. 창밖을 둘러보면 사방이 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곳 말고, 진짜 빌딩숲에서 멋진 커리어 우먼처럼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요즘도 한다.


운전을 못할 때도, 운전에 익숙해지고 나서도 나에게 출퇴근은 가장 힘든 일이었다. 결혼을 하고 신혼집을 정하고, 그 이후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면서 지금은 회사와 가장 먼 거리에 살고 있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편도로 50km, 거리도 거리지만 나의 출퇴근 구간에는 악명 높은 경부고속도로 양재, 반포 구간이 포함되어 있다. 아침 일찍 출근하면 그나마 가는 길에는 막히지 않지만 퇴근 길에는 일찍 나서도 기본이 1시간 30분, 길게는 2시간 30분까지 걸린 적도 있었다. 어쩌다 한 번 경험해도 치가 떨리는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의 정체를 매일 저녁 반복하다 보니 남은 건 무릎에 생긴 연골연화증과 체력 저하. 게다가 몇 번의 접촉사고까지 당하고 나니 온 몸에 성한 곳이 없었다.


그래도 장거리 출퇴근에 힘든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아침에 1시간, 저녁에 1시간 30분~2시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하던 참에 출퇴근길에 오며 가며 영어 라디오도 듣고, 이런 저런 팟캐스트도 찾아 들으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도 했다. 손과 발, 그리고 시선의 자유가 없는 대신 귀로 듣는 자유와 자가용이라는 나만의 공간은 힘든 출퇴근 거리에 오히려 활력이 되었다. 1시간이 넘어가는 팟캐스트 방송을 보면 예전에는 이걸 누가 듣나 했는데, 운전을 하다 보면 팟캐스트 하나를 다 들어도 아직 집에 도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라디오 진행자, 내가 좋아하는 팟캐스트 진행자들과 친구가 된 마음으로 차 안에서 혼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출퇴근을 했다.


회사를 다닐 때 나는 회사나 일을 싫어하는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누구보다도 회사에 대한 애정이 컸고, 내가 하는 교육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내 일을 사랑했다. 물론 나 역시 여느 회사원들처럼 월요일에 출근할 생각에 일요일 새벽까지 밤잠을 못 이룰 때도 있었고, 상사나 팀원들과 갈등이 있기도 하고,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없지 않았다. 그래도 회사를 좋아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고,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히 크다. 다만 운전을 하다 보면 장거리 출퇴근만 어떻게 좀 피할 수 없을까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 내가 강제 휴직 8개월에 접어 들면서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려 출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가만히 놀고 있지 못하는 성격 탓에 이것 저것 공부 모임에 프로젝트에 일은 잔뜩 벌려 놨는데, 집에서 일을 처리하려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을 때는 아이가 깨어 있는 시간 동안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아이가 잠들고 나면 그제서야 밀린 일들을 할 수 있었다. 휴직 중인데도 왜 이렇게 할 일은 많은지, 회사를 다닐 때보다도 더 수면 부족에 시달리면서 내 나름대로의 생활을 이어 나갔다. 아이가 일어나기 전, 새벽 일찍 일어나서 내 시간을 가져 볼까도 했지만, 막상 휴직을 하고 나니 미라클 모닝은 커녕 아침형 인간으로 살 만큼 내가 부지런하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갈 곳이 있다는 것, 그리고 출퇴근 시간에 나만의 시공간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상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누군가의 통제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시기였지만 그 규율 속에서 내가 누렸던 자유가 그리워진다. 여건만 허락된다면 공유오피스라도 빌려보고 싶은데 휴직으로 월급도 반 이상 줄어든 마당에 휴직자가 웬 사무실 임대인가, 내가 생각해도 우습다. 요즘은 괜히 일도 없이 카페에 가서 노트북을 켜고 있기 민망할 때도 있다. 하지만 오늘은 나를 위해 집도 회사도 아닌 제 3의 공간에 가서 글도 쓰고 책도 읽으면서 나만의 시공간을 즐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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