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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림 Jun 29. 2021

여름

셋, 책일기

친구들~ 미안해요오... 소식이 너무 늦었죠? 회사 일이 바쁘고, 와중에 식중독까지 걸려서 퇴근하고 집에 오면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어요. 단 한 문장 쓸 힘도 없었지 뭐예요. 글을 쓰는 게 가만히 앉아 키보드만 두드리는 정적인 활동 같지만 사실은 가만히 앉은 몸 안의 내적 활동이 활발해 굉장한 에너지가 필요해요. 이제 한번 아프면 1주일은 거뜬히 앓아눕는 나이가 되었다는 게 슬퍼요.   

 

여름이에요! 아침에도 창문을 열면 훅한 기운이 밀려 들어와요. 어젯밤에는 엎드려 자다가 침대에 맞닿은 얼굴이 뜨거워서 깼어요. 아니죠. 사실 지금은 이글이글한 한여름의 서막에 불과하죠. 이제 곧 매미 떼가 본격적으로 맴맴 댈 거고, 지나가는 차들의 열기가 뜨겁다고 구시렁댈 거예요.


이정명 작가님의 <부서진 여름>을 읽었어요. 하늘색 표지가 시원함을 풍긴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되려 서늘하게 보여요. <부서진 여름> 겉표지 속 여자가 왜 그런 각도로, 그런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거든요. 이런 때가 종종 있어요. 어느 책이든 겉표지는 있으니까, 그래서 그저 책의 한 부분이겠거니 하고 무심코 넘겼는데 완독 후에 만나는 겉표지는 전혀 새로운 감탄을 줘요.



















친구들은 여름을 좋아하세요? 저는 여름을 좋아하진 않지만 굳이 비하면 겨울보단 여름이 나은 것 같아요! 땀은 흐르지만 피부가 갈라질 듯 건조한 온풍기보다 나은 것 같고, 열기에 훅훅 숨은 좀 막히지만 두툼한 패딩에 온몸이 둔해지는 것보단 나은 것 같고요. 여름엔 여름휴가의 추억도 있고, 달콤한 빙수를 맛보는 재미도 있어요. 어떤 음악을 들으면 섬광처럼 번뜩이는 순간이 있듯, 계절을 생각하면 일련의 추억이 꺼내어지는 것 같아요.

  

<부서진 여름> 속 그들의 여름이 그랬어요. 주인공 ‘한조’는 고풍스러운 하워드 주택을 계절로 기억하고 기록했어요. 하워드 주택의 사계를 그렸고, 창가의 아름다운 ‘지수’도 한조가 그린 그림 속에 함께해요. 한조네 형제와 지수네 자매가 살랑바람을 맞으며 자전거 소풍을 가던 순간, 다정하고 기품 있는 지수의 어머니가 내어주는 쿠키를 맛보는 순간, 한조에게 태어나 가장 행복한 그 여름, 그 안락한 한때는 어느 날 갑자기, 순식간에 부서져요. 소설은 꼭 그래요. 그대로 행복해도 좋으련만 꼭 부서져서 행복한 순간의 그림자마저 잃게 만들어요.  

  

그 여름, 누군가는 빨간 피를 흘리고, 누군가는 빨간 장미를 다듬어요.

   

다음날 남보라가 하워드 주택을 찾았을 때 이진만은 장미 정원을 돌보고 있었다. 반들거리는 넝쿨과 강하고 날카로운 가시들, 가지가 휠 만큼 무거운 꽃송이들, 벨벳처럼 부드러운 꽃잎들. (...) 중대한 시기에 정원 일에 매달린 자신의 한가함에 대한 그녀의 의구심을 누그러뜨리려는 듯 그는 잠시라도 때를 놓치면 정원이 엉망이 된다고 말했다. -p83    


한조의 아버지 이진만은 소위 말하는 ‘가진 자’인 지수네 집, 하워드 주택의 관리인으로 일해요. 이진만은 일련의 소동에도 흔들리지 않고 정원을 가꿔요. 평소처럼. 그 빨간 피는 나와는 상관없다는 듯, 혼란한 와중에도 나는 일을 놓을 수 없는 처지라는 듯. 가장 화사하고 가장 강렬한 계절인 여름에, 가장 화려하고 가장 강렬한 꽃인 장미가 피어나면서 생명을 잃어버린 죽은 자의 안타까움과 삶을 잃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산 자의 모습이 극대화되는 표현에 참 아릿했어요.


왜 하필 여름일까? 생각했어요. ‘부서진 우리’ 일 수도 있고, ‘부서진 시간’ 일 수도 있는데, 왜 하필 <부서진 여름>일까? 여름을 앞두고 출간한 책이라 그런 건 아닐 거 아니에요?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책의 맨 앞, 겉표지와 눈싸움을 했어요. ‘왜 하필 여름일까?’


“지금, 이곳이 완벽한 순간과 장소라는 생각. 이 순간이 우리에게 속해 있고 우리가 이 공간에 속해 있어. 완벽한 하루야.”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는 자신의 말 속에 숨은 오류를 깨달았다. 완벽한 순간은 결코 알아챌 수 없고 알아차리는 순간 사라진다는 것을. -p11, 12


왜 하필 여름일까...? 그해 여름은, 그러니까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들에게 그해 여름은 최고의 순간이었을 거예요. 서로가 서로를 알았고, 서로가 서로를 사랑한 순간이니까요. 최고로 행복한 순간, 최고로 눈부시던 계절에, 최고로 고통스러운 사건이 벌어진다면... 비극이 닿을 거라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비극이 들이닥친다면... 친구들 생각은 어때요? 밝다 못해 눈이 시릴 정도로 햇빛이 내리쬐는 여름에 일어나는 이런 비극? 그래서 하필 여름이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소설 <부서진 여름>에는 작가의 말이 없어요. 그래서 사실 왜 하필 여름에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얕은 독자인 저는 여전히 궁금해요. 


점점 더워지고 있어요. 이제 덥다는 말보다 쪄 죽겠다는 말이 절로 나오겠죠. 지독한 여름을 헤쳐나갈 힘을 비축할 때가 됐어요. 다음에 만나면 삼계탕 한 뚝배기 하실래예? :)


긴 시간 기다려준 친구들에게 감사 또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리밍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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