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책일기
내 이름은 나인이야
아홉 번째 새싹
천선란 작가의 <나인>. 제목을 보고 내가 아는 숫자 9를 영어로 한 그 ‘나인’일까 생각했어요. 왜 9일까. 목차의 제목들도 호기심을 자극했어요. 속삭이는 잎, 심장을 삼킨 나무, 파도가 치는 숲. 잎과 나무와 숲이라.... 잎이 모여서 나무를 이루고 나무가 모여서 숲을 이루는 걸까.
천선란 작가의 다른 책은 읽어보지 못해서 <나인>만 그런 건지, 작가 스타일이 그런 건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나인>은 어느 한 장면도 지루하지 않았어요! 400쪽에 달하는 두께에 호흡이 긴 장편 소설을 읽을 때면 저는 부분적으로 작가의 의도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가끔 있어요. “그래서, 이 구절에서 작가가 하려는 말이 뭐지? 이 상황은 왜 필요한 거지?” 하는.... 그런데 <나인>은 사건과 인물의 감정선이 함께 흘러서 막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밑줄을 쭉쭉 그으며 읽었어요. 저는 시간 여유가 있을 때만 읽느라 몇 번에 나눠 완독 했지만, 쪼개진 시간 사이로도 흐름을 잡기 수월하고 언제 집어 들어도 한 번에 몰입되는 작품이에요.
<나인>을 읽으며 두 가지에 감동했어요. 하나는 고이지 않고 술술 흐르는 전개, 또 하나는 작가의 문장력.
(감동 하나. 고이지 않고 술술 흐르는 전개.)
한 아이가 태어났어요. 이름은 유나인. 식물들의 목소리가 들려요.
한 학생이 실종됐어요. 실종된 학생을 찾는 사람과 잊으려는 사람이 있어요.
대체로 실종 사건을 다루는 소설은 ‘왜’와 ‘어떻게’에 집중해요. ‘왜?’ 실종됐는가. ‘어떻게?’ 처신하는가. 하지만 <나인>은 신선하게도 왜 그 사건이 일어났는가는 충분히 상상 가능하고, 중반부에선 아예 드러내 줘요. 더불어서 사건에 연루된 그들이 어떻게 처신했는지도 등장인물들이 드러내 줘요. <나인>에서 중요한 건 ‘왜’가 아니에요.
비밀을 밝히지 않는다는 건 멀어진다는 걸까. 말하지 못하는 게 생길 때 관계에도 거리가 생기는 걸까. 그럼 끝끝내 말하지 못한다는 건, 그렇게 멀어지다가 결국 남이 된다는 걸까. -p153
말할 수 없어 머뭇거린 순간부터 결국 친구들의 마음을 와해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믿지 않을 거라는, 이상하게 생각할 거라는, 더는 예전처럼 지낼 수 없을 거라는. -p305
친구들은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나요? 말하고 싶지 않아서, 혹은 감추려고 한 게 아니어도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말하지 못하고 넘어간 순간은요? 또는 상대가 나에게 무언가 감추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던 때가 있었나요? 어땠어요? 또한 친구들의 비밀 무조건 믿어줄 사람이 있나요? 친구들은 상대의 비밀을 무조건 믿어줄 준비가 되어 있나요? 작가는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중요한 건 이미 일어난 ‘그 사건’이 아니라고. 그 사건에 임하는 ‘우리’라고. 너와 나의 ‘관계’라고. 그런데도 끝까지 ‘우리’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감동 둘. 작가의 문장력.)
-떼어 놓으려는 거다. 과거로부터 현재를, 두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오래 지나지 않아 모두 원상태로 돌아오리라 믿지만 나인은 조금 두려웠다. 현재가 틀렸고, 셋 다 타이밍을 놓치는 중일까 봐.
저는 작가마다 특유의 문장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비슷한 듯하면서도 누구도 똑같이 흉내 내지 못하는 향기 같은 거라고 할까요. 작가와 제목을 가려두고 문장만 툭 던져줘도 아! 이건 그 작가다! 하는 느낌이 오는.... 작가마다 짙든 옅든 특유의 향기가 있어요.
<나인>에서 자꾸 반복되는 이런 문장 구조가 저는 참 좋아요. 저는 대체로 마음에 드는 문장만 밑줄을 긋는 편인데 <나인>은 문장력이 마음에 들어서 한 줄 두 줄 긋다 보니 이러다 죄다 밑줄을 긋고 말겠다 싶었어요. 천선란 작가님이 <나인>에서 한 시도일까요, 원래 작가님의 문장력일까요. 어서 작가님의 다른 책을 읽어봐야겠어요!
책을 덮으면서 다시 목차의 제목들을 읽어봤어요. 작은 잎들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우리라는 나무 한그루를 이루고,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모여서, 지구라는 숲을 이루는 게 아닐까요.
-유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