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그라피를 오랜 기간 동안 하다 보니 사람들은 그림 그리기도 어색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캘리그라피를 하기 위해서는 10분도 걸리지 않는 시간에 간단한 그림을 그리는데 30분이나 걸린 게 기억에 남습니다. 그때 더 나은 캘리그라피를 위해서 그림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이 글을 쓰는 가운데도 그림을 '잘' 그리지는 못합니다.
미대를 간 친구에게 스케치를 배우기도 했고, 아이패드를 구입해서 여러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몇 시간이나 그림을 그리다가도 글을 읽고 쓰는 시간을 줄이는 게 아까워 매번 포기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참 변덕 많은 사람이죠.
처음에는 이런 제가 싫었습니다. 하나를 하면 꾸준히 하는 편인데 유독 그림, 영어, 운동 세 가지만 잘 안 되었으니 말이죠. 그렇지만 이젠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편안하게 생각하고 언제든 잠시 멈추고 다시 펜을 듭니다. 다시 시작하는 그림이지만 부담감은 사라진 채 재미만 있습니다.
진심으로 잘 그리는 사람은 아닙니다. 위에 있는 그림이 제가 그린 아이패드 드로잉입니다. 주관적으로 보았을 때 잘 그리는 편이 아니지만, 못 그리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습니다. 사람 욕심일까요.
예전에 저의 캘리그라피 옆에 있는 그림을 보고 친구가 무심 코했던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긍정적인 말보다 부정적인 말이 기억에 각인되는 건 뇌과학 차원에서도 맞는 말입니다.
"캘리그라피는 예쁜데, 옆에 있는 그림 때문에 캘리그라피가 죽네."
그 말이 저에게 무례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실제로 캘리그라피를 더 좋게 보이는 그림이 있으니 말이죠. 그렇지만 그 이후로는 스스로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습니다. 남들의 말에 휩쓸리지 말라고 하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죠. 그래서 전 못 그리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래, 나 못 그리지는 않아'
이 말을 하다 보면 근거는 없지만 자신감이 생깁니다. 잘 그리지는 못하지만, 또 못 그리지도 않는 사람. 제가 그림을 통해 얻고 싶은 이겁니다. 딱 그 정도면 충분할 듯합니다.
실제로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방법론은 다양하지만 실제로 꾸준히 그림을 그리는 일은 너무 어렵습니다. 열심히 몇 시간을 그리다가도 또 뚝하고 멈춥니다. 사람이 참 게으른 존재라는 걸 그림을 그릴 때면 깨닫게 됩니다.
큰 그림이 아니더라도 그저 작은 연필 하나, 카페의 컵 하나를 그리는 연습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캘리그라피와는 다르게 그림을 너무 높은 목표를 잡곤 합니다. 사람 한 명 그리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까먹게 되곤 합니다.
실제로 캘리그라피를 시작할 땐 단어부터 시작하지 못합니다. 다양한 펜을 익혀야 하고, 또 그 펜에 적합한 선 하나를 찾기 위해 애써야 하죠. 겨우 가, 나, 다, 라와 같이 한글을 뗴고 나서 단어에서 짧은 문장, 끝에는 긴 문장으로 넘어갑니다. 눈을 감고 딱 떴을 때 긴 문장이 써지는 일이란 없죠. 저 또한 가장 작은 노력으로 큰 성과를 바라는 심보가 그림에 있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잘하지도 않는 그림인데 왜 이리 애정을 가지냐고 묻는다면, 한 줄의 다정함이 좋아서입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수많은 선들이 모여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의 그림이 완성이 되는 거죠. 여전히 꾸준히는 힘들지만 그럼에도 펜을 듭니다. 혹시 모르잖아요? 나중에 '잘 그린다!'는 말을 듣게 될지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