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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ney kim Apr 15. 2020

스물세 번째 산맥

24. 시드니에서의 나날들

첫째 날


가족들과 친척들이 날 보러 호주에 왔다! 짧은 일정이니만큼 효율적으로 움직여야했시에 첫 날부터 일정이 빡빡했다. 계획충이 계획한 일정을 살펴보자면, 첫날 시티 투어, 둘째 날 헌터밸리, 셋째 날 블루마운틴, 넷째 날 포츠스티븐, 다섯째 날 시티를 다시 돌며 기념품을 구입한 후 멜버른으로 떠나기. 이 중 블루마운틴과 포츠스티븐, 헌터밸리는 일일관광으로 예약했다.


그리고 시티 관광은, 시내라면 빠삭한 내가 직접 가이딩을 할 예정이었다. 블루마운틴과 포트스테판은 가족들만 따로 보냈고 헌터밸리만 내가 함께 방문하기로 했다. (일 때문에...흡)


가족들의 숙소를 호텔이 아닌 에어비앤비로 예약 한 이유는 비용도 비용이었지만 식사 문제가 가장 컸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다면 10일 내내 아침 점심 저녁을 사 먹어도 큰 무리는 없겠으나 그렇게 하면 식비만 하루에 두 당 100불(10만 원가량) 은 깨질 터. 가족들은 손사래를 쳤고 대신 에어비앤비에서 함께 둘러앉아 소주 한잔을 하며 (한국에서 가지고 온 술) 삼겹살 파티를 하고 아침 식사로는 마트에서 구입한 빵을 구워 하나씩 물고 나갔다.





차이나타운



다행인 것은 기차역이 숙소에서 멀지 않다는 점이다. 시내로 바로 빠지는 기차를 타고 시드니의 초 중심가로 올라갔다. 첫날의 첫 번째 일정은 차이나타운 구경하기. 시내의 아래쪽엔 차이나 타운이 있다. 사람들도 분위기도 딱 중국 같은 곳이며, 이 곳 지하에는 아주 방대한 시장이 있다. 시장은 말마따나 없는 게 없는, 있을 거 다 있는 그런 곳이라 말할 수 있겠다. 조악한 모양의 짝퉁 가방부터 시작해 야채 과일 생선까지. 정말이지 마음만 먹고 뒤져보면 다 나오는 곳. 우리는 이 곳에서 들러 잠시 구경해보기로 했다.


예상 밖의 변수가 생겼다. 부모님과 친척들은 이 미로 같은 곳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눈이 팽팽 돌아가 홀려버려서는 결국 할머니는 겨울용 재킷까지 사시고 말았다. 고작 10불밖에 안 하는데 이렇게 따뜻한 재질일 수 있냐고 연신 감탄을 거듭하셨다. 계획표에 짜인 시간대로 일정이 있는 나는 옆에서 초조하게 발을 굴렀고, 한 시간 동안 구경을 계획했으나, 거진 2시간 가까이를 지체하고 말았다. 하지만 다들 100프로 만족했으니, 나 또한 200프로 만족이다.


그리하여 원래대로라면 '시드니 타워로 올라가 맥주 한잔 마시며 한 바퀴 구경하기'의 일정은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냥 대충 지나가며 이 곳이 시드니 타워이고요- 로 끝나버린 것이다. 그래도 꽤나 괜찮은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인데 다들 우방타워 (대구에 있는 타워)가 코앞인데 뭣하러 돈 내고 올라가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미국에서 온 크리스 이모부만 조금, 아니 꽤나 많이 아쉬워했지 싶다.




성 마리아 대성당



우리는 시청이 자리한 초중심가의 화려한 퀸 빅토리아 빌딩의 내부를 구경했고, 높디높은 고층 건물이 빽빽한 도심 숲을 가로질러 세인트 메리 대성당으로 향했다. 우리 가족과 친척들은 전부 천주교 신자이기 때문에 성당 방문은 내가 계획한 짧은 이벤트라고 할 수 있겠다. 안에서 미사를 드린다면 입장이 어려웠겠지만 다행히 시간대를 잘 맞춰간 관계로 문이 열려있었다. 성당의 안쪽에는 조그마한 초를 사서 기도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기에 할머니와 이모들, 엄마, 아빠는 차례로 촛불에 불을 켜서 짧은 기도를 올렸다. 성당 외벽을 구경하다 말고 문득 고개를 들어 그들을 바라보았다. 머리 위로 내리쬐는 햇볕은 뜨거웠고 그들은 노랗게 빛이 나고 있었다. 괜스레 마음이 묵직했다.





비비드 시드니



그 후로도 우리는 주립 미술관, 보타닉 가든을 짧게 거쳐,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릿지를 함께 볼 수 있는 곳으로 걸어내려 갔다. 하버브리지 횡단까지 함께하고 싶었지만 40분간 동안 쉬지 않고 걷는 것은 할머니에게 꽤나 무리일 터, 아쉽게도 내가 좋아하는 장소로 감동을 대체해보기로 했다. 천문대로 올라가서 전경을 바라보며 풀 밭에 앉았다. 꿀 같은 휴식 시간이 그 어느 날의 그 어떤 시간보다 소중하다 느껴졌다. 이 모든 일정들은 날씨가 짱짱하게 받쳐줘서 가능했던 것이다. 마치 우리의 여정에 힘을 북돋아주기라도 하는 듯 하늘은 청아했으며, 초겨울임에도 불구하고 포근한 날씨가 내내 이어졌다.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릿지까지 거쳐 달링하버로 올라가니 4시 반쯤 됐지 싶다. 꽤나 간당간당하게 배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오늘 일정의 하이라이트, 배를 타고 일몰을 보며 시드니를 감상하기! 감사하게도 가족들이 온 날짜에 딱 맞춰 vivid sydney가 시작되었다. 비비드 시드니란 도심에 있는 랜드마크에 색색깔의 빔을 쏴서 반짝이는 시드니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겨울 이벤트이다. 오직 1년 중 딱 2주가량만 하기 때문에 사실 시기를 맞춘다는 게 쉽지 않았는데, 어떻게 날짜가 잘 맞아서 예쁜 이벤트까지 보고 갈 수 있게 되었다. 선상에서 저녁식사까지 하는 것이 분위기는 훨씬 좋겠다만, 분명히 맛이 없을 터라 우리는 하선 후 달링하버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다들 너무 좋아했기에 나까지 뿌듯했다. 사진을 찍느라 난리 법석이었다. 우리 모두가 언제 다시 또 시드니에서 함께 날이 또 올까. 그들에게 있어서 이 짧은 여행이 아주 소중한 순간이 되었으면 싶었다. 꼭 그랬으면 한다. 그날 밤을 추억하며 '그때 참 즐거웠지', '참 좋았었는데 거기.' 하고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에너지를 얻었으면 좋겠다. 글을 쓰는 내내 참 그립고 보고 싶은 사람들. 괜스레 사진첩을 뒤적이며 추억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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