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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Jul 03. 2024

오늘도 수채화

‘참외를 먹지 않고 실제로 따뜻하게 품었더니 참외가 부화한다면? 그렇게 태어난 참외 인간은 유일하게 한 가지 단어밖에 말을 못 하는 거다. 

“참 외롭다”. 

그 참외 인간 아기가 성장하면서 주변에서 어떤 애정과 관심을 퍼부어도, 유일하게 할 줄 아는 말은

“참 외롭다” 뿐. 

주변은 점점 지친다. 참외 인간의 외로움이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다가, 어느 날, 수박을 품어서 태어난 수박 인간이 참외 인간 앞에 등장하는 거다. 

항상 외롭던 참외 인간 앞에 나타난 수박 인간은 “외로울 수밖에”라며 원초적으로 참외 인간이 외로운 이유를 알려준다. 

사실 참외 인간의 정체는 성주 참외가 아니라, 원산지를 속인 중국산 수입 참외였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외로울 수밖에 없었던 참외 인간은 중국으로 향하는 배에 올라타게 되는데….’     

웃겨 웃겨!

김동식 소설가의 에세이 『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중 한 대목이야.

‘성주’ 하면 ‘참외’, ‘초단편’ 하면 ‘김동식’이었으면 좋겠다고.

중학교를 중퇴하고 주물공장에서 10년 넘게 일했던 청년.

PC방에서는 글쎄 시급 1,900원을 받았었대.

책 제목처럼 무채색 삶인 줄 알았다가 완전 수채화 인생이 된 거야.

무려 1000편이 넘는 초단편 소설을 써낸 대작가로 학교 강연만도 1년에 300회가 넘는대.

얼굴 밝아졌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별 망설임 없이 우산을 살 수 있으며, 만원이 넘는 메뉴도 선뜻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꾸준히’, ‘많이’ 쓰면 된다고 했어.

누나, 질보다 양인 사람이잖아.

그건 할 수 있겠구나 싶더라.

이렇게 강산이가 누나 얘기 다 들어주니까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난 좋은데, 넌 귀 아픈 거 아니지?

사실 누군가의 얘기를 경청한다는 것, 에너지가 퍽이나 필요하잖니.

누나 몸에서 가장 쓸만한 기관인 ‘귀’로 하는 일이라서….

그럼에도 몇 날며칠 타인의 얘기를 들어줄라니까 귀에 피가 날 것 같은 피로감이….

지독하더라.

그래서 누나가 ‘말’ 보다는 ‘글’을 사랑하게 되었을지도.

‘글’은 고요한 스피커니까.

남의 시간을 함부로 빼앗지 않고, 실시간으로 실수할 일 적고, 공간을 무차별 장악하지도 않고….

무엇보다 예의가 발라.

혹여라도 강산이 피곤할 때는 누나 편지 바로 읽지 말고 그냥 밀어둬도 된다는 얘기 하는 거야.

놀 거 다 놀고, 할 거 다 하고, 그다음에 읽어도 서운해하지는 않을게.

그렇다고 아예 안 읽는 건 좀….

알(알아서) 잘 딱 깔(깔끔하고) 센(센스 있게) 알지? 

 수필 수업 종강하는 오늘인데, 비가 많이 온다고 해서 걱정을 잔뜩 했어.

누나도 김동식 작가 못지않게 인복이 있어서 적재적소 선인들의 도움을 받게 되는구나.

누나 수필 수업 다녀오는 동안 세 분의 차를 얻어 탔고, 갈비탕과 플레인 요거트까지 맛있게 먹었잖아.

귀가를 하니, 사이좋은 부녀, 거리 곱하기 속도가 어쩌고 한 바퀴를 따라잡아서 호수 둘레가 어쩌고….

열공 중이시더라고.

딸이 무섭긴 한가 봐.

부친께서 완전히 노선을 바꾸어 친절 모드로 전향하신 덕에 우리 집 공기가 쾌적해졌어라.

엄마 같은 아빠, 아빠 같은 아빠, 선생님 같은 아빠 노릇을 다 하는 남 자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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