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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Jul 09. 2024

과잉해석장애

기차를 탔을 때 옆자리 앉은 사람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엘리베이터에 같이 서 있는 사람이 성인인지 아이인지 나는 알 수가 없잖아.

짧은 순간이고, 굳이 알아도 몰라도 사는 데 전혀 지장 없지만 좀 답답할 때가 있어.

공동 공간에 누가 있고 없는지 일일이 전화로 확인하지 않으면 상황 파악이 힘들고, 전국 맹인교사가 다 모인 자리에 내가 아는 얼굴이 있었는지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도 많아.

“헉, 언니도 거기 있었어?”

누나 같이 근무하는 선생님 중에 나를 교무실 자리에 안내해 주면서 주변 상황을 설명해 준 이가 이제껏 딱 한 분 계셨다.

“지금 교무실에 ㅇㅇ샘, ㅇㅇ샘 앉아 계시고 다 비어 있어요.”

고맙더라고.

도장을 찍을 때도 마찬가지야.

일 하면서 누나 도장 찍을 일 엄청 많거든.

대부분 동료들이 대신 찍어 주는데, 내용을 상세히 설명해 주는 이가 있는가 하면 대충 건성으로 제목만 알려주거나 더러는 틀리게 말해주는 경우도 있어.

누군가의 눈을 한 번 거친다는 것.

의도가 있든 없든 한 단계가 걸러지는 거잖아.

그 사이에 실수가 스며들 틈이 생기는 거고.

이런 과정을 몇 번 지난다고 생각해 봐.

머리 좋은 맹인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 실수를 면할까 말까인데, 어리바리 누나 살아보겠다고 애쓴다 애써.

나름은 최선이건만….

누나에게 정보를 전달해 주는 이들도 성격 유형이 있는 것 같아.

강산이는 몸짓으로 장애물을 알려줬었잖아.

같은 언어라도 객관적 사실이나 수치를 근거로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도 모르게 편집하여 정보를 해석하는 경우도 있더라는 거지.

1번이 2번에게, 2번이 3번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다 보면 10번에 가서는….

그래서 기록이 필요한가 봐.

유주 어린이집에서 매일 하는 ‘언어전달’ 카드가 있었어.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나 단어 같은 것을 아이가 부모에게 전달하면 부모가 그것을 적어서 등원시키는 거야.

당시에는 이런 걸 왜 하나 싶었는데, 중요하더라고.

해석하지 않으며 관계를 지속하는 것.

누나 가끔 과잉행동 아닌 과잉해석장애를 실감하거든.

불필요한 감정 소모 각이지.

물 밑에서 만리장성을 쌓은들 무슨 소용이겠느뇨.

해석하지 말고 감각할지 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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