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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Jul 11. 2024

언니들을 괴롭혀서라도

1교시에 들어가도 5교시에 들어가도 언니들이 책상에 엎드려 병든 닭 같은 목소리 

내는 것이 영 마음에 안 들었어.

누나 다른 건 몰라도 책상에 엎드린 학생, 식탁에 맛있는 반찬은 귀신같이 찾아내잖아.

며칠 전에 유주랑 둘이서 초밥 데이트를 했거든.

쟁반 위에 소바 면을 젓가락으로 푹 집어 작은 그릇에 말아 훌훌 먹는 나를 보고 유주가 말하기를,

“엄마 보여?”

“응, 나 먹는 것만 잘 보이잖아.”

 수업 시간 조는 학생 잡아내는 거 보고 깜짝 놀라며,

“선생님 보이세요? 고개 숙이고 있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솔직히 슬그머니 화가 나기도 했어.

과자를 먹여봐도 노래를 시켜봐도 잘난 언니들 꿈쩍도 않는 거야.

반짝  텐션 올랐다가 교과서만 피면 숨이 죽어요.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

누나 아침마다 유주 깨우는 모닝 마사지 하잖아.

거기서 착안, 언니들 어깨를 공략하기로 한 거야.

“언니들 이런 식이면 곤란해. 선생님 집에도 비슷한 여자애 하나 있어서 나 괴롭히는 거 무지 익숙한 사람이거든. 앞으로 선생님보다 목소리 작은 사람은 어깨 마사지 들어간다. 싸게 해 줄게.”

“끼약! 아파요. 아아아아!”

“어, 생각보다 시원하네!”

절대 졸 수가 없지.

언니들 목소리에 영혼이 깃들기 시작했어.

‘Yes!’

근데, 강산아, 확실히 학생들 어깨 근육이 많이 긴장돼 있더라.

뒷목도 그렇고.

저시력은 저시력대로 뭘 볼 때마다 고개를 숙여서 들여다봐야 하니 목근육이 경직되고, 전맹은 전맹대로 어깨가 엄청 굳어 있더라고.

아무래도 전맹들은 몸을 움직이는 순간순간 무의식적으로 온몸에 긴장을 하게 되다 보니 저시력 언니 어깨보다 전맹 언니 어깨가 더 딱딱할 수밖에.

꺅꺅거리는 학생들이 귀엽기도 하고….

비로소 같이 읽고 쓰고 말하는 시공간이 완성된 거야.

누나는 왜 이렇게 책 이야기 하는 것이 좋은 거니.

책은 무조건 의미가 있다는 믿음 때문일까?

누나가 담당하지 않는 학급에 보강을 들어가게 될 때도 나는 학생들이 그냥 시간을 허비해 버릴까 봐 두려워.

심리 테스트를 하든 신문 기사를 읽든 뭐라도 해야 속이 편하더라고.

이거 강박인가?

내가 만든 신조어는 ‘의미중독자’란다.

그냥 먼지만큼이라도 성장하는 오늘이었으면 해서….

어제는 의정부에서 15년째 안마원을 운영 중인 원장님을 강사로 모시고 ‘이료특강’을 했어.

‘동방활법’이라고 안마의 응용 수기인데, 온종일 강사님 이론이며 실기며 에너지가 대단하시더라.

중장비 운전하다가 사고로 실명하셨다는데 열정이 열정이….

소심한 이 맹인 부끄럽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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