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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풀이 무슨 깔딱 고개냐고

by 밀도

메인 풀에 나가기 전, 나를 ‘엄마’라고 부르는 여자아이가 한바탕 짜증을 부렸어.

눈물까지 짜며 혼자 집에 있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거야.

화장실 문 쾅 닫고 들어 가시더니 족히 5분을 안 나오고 버티는데….

베트남까지 날아와서 혼자 방구석에 앉아 휴대폰에 코 박고 있을 것 같으면 뭐 하러 오냐고.

슬슬 혈압이 오르기 시작했어.

“어제 민찬이도 조식 먹으러 안 갔는데, 왜 나는 혼자 있으면 안 돼? 나 안 나갈 거야. 귀찮단 말이야. 그냥 우리 풀에서 놀면 되잖아.”

“여기보다 훨씬 풀이 넓대. 리조트 처음 왔으니까 한 번 둘러보고 오자. 옆에 바다도 있대. 가서 보고 유주 마음에 안 들면 집에 들어오자.”

“싫다니까.”

“그럼 엄마가 네 휴대폰 가지고 갈 거야. 여기 직원들 청소하러 올 거니까 알아서 해.”

기다리다 못한 민찬이가 들어왔어.

여섯 시간 오빠답게 한 마디 하시더라고.

“야, 우리 다 같이 가는 건데 너 혼자 그러면 어떡해. 빨리 나와. 다 기다리잖아.”

그제야 주섬주섬 움직이는 고집쟁이.

암튼 쓸데없이 진입 장벽이 높아요.

그렇게 이유 없는 진통 끝에 나간 메인 풀.

도착하자마자 물안경부터 찾으시더구먼.

우리 두목이 다 알아서 물안경이요, 튜브요, 해먹이요, 비치볼까지 완벽하게 준비해 나가셨더라고.

전쟁 끝에 빈손으로 나간 모녀였건만, 애미는 해먹에 누워 떠다니고, 딸은 언제 그랬냐는 듯 물장구치기 바빴어.

민찬이와 나, 우리 사이, 동무‘’로 통하거든.

수영 못해요, 앞도 못 보는 이모가 불안했는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 곁에 딱 붙어서 떠나지를 않는 거야.

파도 만들었다가 잠수하여 이모 발바닥 간지렸다가 해먹 방향 잡아 줬다가 돌고래 소리 냈다가 하시더니, 지쳤는지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남기고 홀연히 사라지셨다는….

“동무, 알아서 떠다니시오.”

민찬이 때문에 누나 배꼽 나트랑에 두고 올 뻔했잖아.

또 한 번은 이러는 거야.

케리어를 2층까지 끌고 올라갈 수가 없어서 짐은 1층에 두고 필요한 물건만 가져다 썼거든.

2층 방에서 옷을 정리하다가 내가 살짝 귀찮아서 옆에 있는 민찬이에게,

“동무, 이 옷 케리어에 가져다 놓고, 거기 있는 신발 좀 가져다주시오.”

“아, 그건 동무가 하시는 게 좋겠소.”

담백하시기도.

뭔가 그 단순함이 난 너무 좋은 거야.

이모가 안 보여서 꼭 도와줘야 한다던가, 하기 싫은 거 내색하지 않으면서 억지로 친절을 쥐어짠다던가 그런 스트레스가 1도 없는 사이.

이번 여행에서 민찬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엄마, 내가 이모랑 다닐래.”

조식 뷔페에서는 글쎄 혼자 식탁에 앉아 덩그러니 음식 접시 기다리는 나 뻘쭘하지 않도록 살그머니 내 손에 요플레를 쥐어주며,

“동무 이거 먼저 먹고 있으시오.”

오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사랑스러워.

지금 생각해도 신통한 기억 하나.

민찬이가 아장아장 걸어 다닐 때쯤이야.

작은누나 집에서 우리 식도락회 모임을 거하게 한 다음 각자 방으로 흩어지는 데, 글쎄 아가 민찬이가 내 손에 생수 한 병을 쥐어 주는 게 아니겠어?

레알 깜짝 놀랐다니까.

민찬 애미도 안 시켰다는데, 고 조그만 녀석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밤새 이모 마시라고 생수를 챙겨준 거야.

내가 안 이뻐할 제간이 있겠느냐고.

저녁을 먹고 저택 현관을 들어서며,

“동무 어디로 가실 거요?”

“난 배가 불러 옷부터 갈아입어야겠소. 2층으로 가리다.”

“여기 계단 앞이요. 헐렁한 옷으로 입으시오. 지금 매우 추하오.”

“팩폭이 너무 심한 거 아니요?”

“미안하지만 사실이요.”

로비에서 버기카를 기다릴 때는 자리가 없다며,

“동무 계단에라도 앉읍시다. 여기 한 번 앉아 보시오.”

“이러고 앉아 있으면 사람들이 우리를 거지로 아는 거 아니요?”

“꼴이 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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