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암인 것 같네요
다음 날 아침 정말 나는 첫 타자가 되었다. 침대에 누운 채로 밀려가고 있노라니 무슨 중환자라도 된 것 같아서 괜히 눈물이 났다. 내 침대를 밀던 이송 담당자는 내가 안되어 보였는지 취미는 뭐냐 최근에 재미있게 본 영화는 뭐냐 끊임없이 스몰톡을 걸어왔지만 나는 도대체가 아무것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생전 처음 들어와보는 CT 기계 안은 낯설고 차가웠다. 자궁을 떼면 어떻게 될까. 괜찮다는 사람도 있고 몸에 안 좋다는 사람도 있던데, 나는 분명 괜찮은 쪽일 것 같아, 라는 생각을 반복했다.
복부 CT를 다 찍고 다시 병실로 올라와 보니 휴가를 낸 남편이 와 있었다. 우리는 최악의 상황을 이야기하다가, 그 최악이 정말 최악은 아니기를 바라며, 혹시 모를 오진 가능성으로 경로를 재설정해 부지런히 행복 회로를 돌리고 있었다. 설마 암 같은 건 아니겠지 불안해하는 나에게, 암은 커녕 근종도 아니면 얼마나 민망할려고 그러냐고 남편이 농담을 건네고 있을 때, 젊은 여의사가 다가왔다. CT 결과가 나왔고, 이런 말을 전해 미안하지만 Lymphoma 같단다.
림포마? 그게 뭔데?
아마 한국말로 림프종 이라고 했어도 똑같이 되물었을 것이다.
림프종? 그게 뭔데?
그리고, ‘림프종 같다’ 니.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지 그런 것 같다니. 저게 바로 불안의 또 다른 큰 축임을 안다. 아닐 수도 있다는 일말의 희망. 그게 있어서 더 받아들일 수 없으니, 불안할 수 밖에.
의사는 림프종이 혈액 암의 일종이라며, 정확한 건 조직검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CT 상으로는 거의 맞는 것 같다고 했다. 다만 세부 유형이 많아 그 중 어떤 유형인지를 알아보는 게 중요하다면서, 림프종에 관한 기본 지식이 담긴 종이를 두어 장 건넸다. 이거 외에는 아직은 절대 이리저리 검색해보지 말라고 신신 당부를 하면서. 그리고 곧 가슴 CT도 추가로 찍을 거라는 말과 함께.
아무래도 당신은 암에 걸린 것 같습니다, 라는 말을 듣는 순간의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는 말은 그냥 식상해빠진 표현이 아니었다. 마른 하늘은 어디서든 정말 무너질 수 있는 거였다. 그 동안은 있는 줄도 몰랐던 내 머리 위의 결계가 갑자기 와르르 무너지며 눈물이 되어 내려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림프종에 대한 지식이 좀 있었다면 그렇게 속절없이 겁내고 울고만 있을 일은 아니었는데, 너무 몰라서 더 무서웠던 게지.
나도 나지만 남편이 많이 울었다. 너무 충격을 받았나 보다. 평소에 건강하고 몸에 좋은 음식 가려먹고 그랬던 난데. 어렵게 대학원 공부 마치고 이제 겨우 입사해서 일 좀 해보나 했더니 암이라고? 현대 의학으로도 아직 원인 불명인 이 암에 걸린 게 내 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남편한테 너무 미안했다. 내가 잘 할게, 내가 치료도 씩씩하게 잘 받을게, 하고 오히려 내가 우는 남편을 달래주고 있으려니 정말 그런 마음이 들면서 현실감각이 조금 생기는 듯도 했다.
그런데 이 남자,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한 시간 정도 실컷 울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난다. 이제 다 울었단다. 둘 중 하나는 정신 차려야 하지 않겠냐며.
곧 찍을 거라는 가슴 CT는 또 내일 아침으로 밀렸다. 아이들을 챙겨야 할 시간이 되어 남편을 등 떠밀어 보내고, CT 때문에 또 금식 중이던 위장에 늦게나마 맛 없는 거라도 좀 넣어주고, 병원 3층에 있는 있는 채플로 갔다.
뉴질랜드 중에서도 내가 사는 오클랜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다민족 도시라 종교도 기독교, 천주교, 불교뿐 아니라 힌두교 이슬람교 등등 아주 다양하다. 채플에 들어서니 이미 몇 인도인 간호사들이 손을 뻗고 만트라를 읊조리며 자기 신을 찾고 있었다. 나도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앉기는 했는데, 하나님, 하고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할 말이 너무 많았는데, 그냥 눈물 콧물만 줄줄 나왔다. 나중에 따로 쓰겠지만, 암 진단을 받고 가장 먼저, 가장 많이 힘들었던 건 바로 하나님이 때문이었다. 하나님? 나를 엄청나게 사랑하시는 하나님? 이 시츄에이션 당신이 허락 하신 거 맞나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나 보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담당 간호사가 슬며시 내 옆에 와서 앉는다. 나를 찾고 있었는데, 왠지 여기 있을 것 같았단다. 소등 시간이 지난 모양이었다. 간호사는 다 괜찮을 거라고 너무 걱정 말라고 위로해 주더니 나지막히 묻는다. 너무 힘들면 소셜 워커라도 불러줄까? 하... 내가 그 소셜 워커야... 라고는 차마 못하고, 혹시 한국인이 있으면 만나보겠다고 했다.
잠들기 전, 남편은 아이들과 영상 통화를 시켜 주었다. 그렇게 울고 다운되어 있었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밝아졌다. 엄마 괜찮다고, 어디가 혹시 잘못된 걸까 봐 검사 하느라 병원에 있는 거라고 아주 거짓말은 아닌 말을 했다. 아이들은 아빠한테 뭘 들었는지 엄마를 웃겨 준다고 콧수염을 붙이고 빨간 빤짝이 마술사 모자를 쓴 채로 이상한 엉덩이 춤을 춰댔다. 정말 너무 우스워서 잠시 다 잊고 깔깔댔다. 그 덕에 암 선고 받은 날 밤을 나름 잘 보낼 수 있었다. 옆 침대 할아버지의 대포 같은 코고는 소리와, 건너편 치매 할머니의 밤새 계속되는 헛소리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