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Day-3

암이 온 몸에 퍼져 있네요

by 혜원

어제와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 첫 타자로 CT 를 찍었다. 이제 거진 암 환자고, 너무 불안하고, 복부 CT를 찍었는데 왜 가슴을 또 찍는지 걱정되고, 그래서 CT 대기하는 내내 하릴없이 또 울었다. 꼬질한 양 인형을 안은 채로 줄줄 울고 있는 동양인 아줌마가 안 되어 보였는지 지나가던 간호사가 손을 꼭 잡아주고 간다. 가슴을 또 찍는 이유는 뭔가 의심이 되어서는 아니고 혹시나 해서 찍는 거라고 했는데, 아니 오늘은 어제보다 왜 이리 오래 찍어? 왜 이리 왔다 갔다 자세히 찍는 건데? 사람 더 불안하게, 응?

병실에 돌아오니 한국인 소셜워커분이 오셨다. 내 얼굴을 보시자마자 멈칫 하시더니 “...혜원샘 이셨어요?” 대학원 논문 때문에 연락 드린 적이 있어 안면이 있는 분이다. 이 혜원이 그 혜원이라 적잖이 놀라셨고, 오래 전 본인이 암 투병했던 경험들을 따뜻하게 나눠 주시며 용기를 듬뿍 주고 가셨다. 8년전 처음 이민 왔을때는 두 세 다리만 건너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좁은 한인사회였는데, 이제는 한 다리만 건너도, 가끔은 안 건너도 그냥 다 아는 좁디 좁은 한인 사회다. 정말 착하게 살아야 하는 동네다.


그 후에는 같이 공부한 대학원 동기 중 이 병원 소셜워커로 일하고 있는 친구가 찾아왔다. 2년을 친하게 지내고도 여태 내 이름을 제대로 발음 못하는 이 중국인은 날 보자마자 눈물부터 흘린다. “헤윈......” 싸 온 간식을 주섬주섬 펼쳐놓고는, 조직검사 결과 나오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거라며, 희망을 잃지 않는 법과 약점 보다는 강점에 집중하는 법 등 께 열심히 공부했던 이론들을 한 보따리 잘 풀어놓고 갔다.


남편의 친구들도 다녀갔다. 남편이 얼마전까지 다니던 회사가 병원에서 지척인데, 지금까지도 무척 친하게 지내는 가족들이 있어 아빠들이 병문안을 온 것이다. 노란 해바라기 꽃다발을 사들고 온 친구는 쌩얼에 퉁퉁 부은 내 몰골에 눈도 제대로 못 맞추고, 얼른 퇴원하면 내가 좋아하는 고기를 잔뜩 구워주겠노라고 침대 끄트머리에 대고 말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새로운 CT결과를 들고 온 의사는 어제 그 젊은 의사보다는 경험이 많았는지, 이런 말을 전해 미안하지만, 이라는 말 따위 없이 훅 들어온다. 림프종이 가슴과 배 목 얼굴 등등 온 몸에 다 퍼져있다고. 오후에는 조직 검사와 초음파를 할 거라고.

회사의 배려로 일단 쉬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보고를 해야겠지. 회사의 내 팀 리더는 한국 사람인데, 어릴 때 이민 와서 영어가 더 편한지라 영어를 주 언어로 사용한다. 한국말을 할 수 있다고는 들었지만,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린 보스가 그 동안 말 하고 일 하던 스타일이 있을 텐데, 굳이 한국말을 써서 커뮤니케이션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싶지 않았다. 전 직원 통틀어 몇 없는 한국 사람 중 한 사람이 내 보스이니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다만, 정말 위급한 상황에 정신줄 겨우 잡고 전화를 할 경우가 생긴다면, 그 때는 내가 한국어로 말하더라도 이해해 달라고는 진작에 얘기 해놨었다. 그 위급한 상황이 클라이언트가 큰일 나는 상황일 줄 알았지, 나일 줄은 처 생각 못했다.

온 몸에 종양이 퍼져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여태 내려놓지 못하고 어정쩡 안고 있는 나의 역할 중 회사는 아예 떨쳐버려야겠다 싶어서 보스에게 전화를 했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한국말로 할게요...”


보스는 내 얘기를 듣더니 처음 들어보는 어눌한 한국말로 이리저리 진심 어린 위로를 해주고는 회사는 걱정하지 말고 이번 주는 푹 쉬란다. 상황 봐서 다시 연락 하기로 하고 일은 그렇게 내려놓았다.

오후에는 초음파와 조직검사를 했다. 일단 얼굴과 목 초음파를 했는데, 이젠 눈물도 안 났다. 하나보다. 그런가 보다... 기계가 어느 한 곳에 오래 머무르며 정성스레 스캔을 하면, 아 저기 뭔가 큰 암 덩어리가 있나 보다 했다.


조직검사는 좀 달랐다. 나의 경우 배에 큰 종괴가 있었지만 (GP에서 줄자로 대충 쟀을 때 19cm였던게 복부 CT 후엔 15cm로 그나마 줄어 있었다) 거기다 바늘을 냅다 찌르기에는 앞뒤 각종 장기들 때문에 위험하기에 목에 있는 림프절에서 생검을 했다. 일을 하며 의학 용어나 약 이름 등은 아직 배워가는 중이라 모르는 게 많은데, 어느 날 어떤 사람에게서 biopsy 라는 말을 듣고 그게 뭐지, 찾아봐야지 하고는 그냥 지나간 적이 있다. 아, 바이옵시가 조직검사구나. 이렇게 배우니 까먹을 일은 없겠네, 라고 씁쓸해 한 것도 잠시. 굵은 바늘이 목에 꽂힌다. 마취도 했고, 천천히 조심스레 들어오고, 남편도 저기 앉아있고, 다 좋은데, 아픈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제대로 채취를 못 해서 다시 하는 불상사가 없게, 머릿속이야 이리 저리 들고 뛰느라 바쁘지만, 축 늘어뜨린 목만큼은 꼼짝 않고 잘 유지했다.

셋째 날은 너무 정신 없이 지나갔다. 저녁이 되어 남편을 애들 곁으로 보낸 후 정신 차려보니 나는 또 채플에 앉아 있었다. 마침 그날은 채플이 텅 비어 있었고, 그 동안 소리 없이 줄줄 울어온 나는 이날 마음껏 소리 지르며 마음을 토했다. 이게 뭐냐고, 왜 하필 나냐고, 왜 하필 모든 게 딱 좋았던 지금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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