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시한부 인생을 택했나
모든 것은 조직 검사 결과가 나와야 확실히 알 수 있다고 했다. 조직 검사 결과는 일주일에서 열흘 걸리지만 확실히 언제 나올지는 모른다고. 어떤 종류의 림프종인지, 몇 기나 되었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다만 이제 확실히 아는 건, 가만히 누워 배꼽 왼쪽으로 약 5cm정도 옆을 꾹 눌러보면, 아래에 뭔가 아주 단단하고 커다란 덩어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 동안은 왜 몰랐을까. 왜 몰랐긴. 누가 아프지도 않은 배를 이리저리 눌러보면서, 어 여기 뭐가 있네, 심상치 않은데? 암인가보다! 하겠냔 말이다.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희망적일 수 있다면 너무 좋겠지만, 현실은 그 반대였다. 복부 CT 결과가 나오기 전, 근종도 아니면 민망해서 어쩌냐고 낄낄대다가 암 소리를 들었고, 그냥 확인 차 한다고 했던 흉부 CT 의 결과는 온몸이 암으로 꽉 찼다는 거였다. 낙관에 기대고 있다가 맞은 뒤통수는 너무 아팠다. 그래서 나는 나름의 방어 기제로,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을 때의 충격을 최소화 하기 위해 최악을 가정했다. 뭐가 나와도 그거보다는 나을 수 있는.
그래서 나는 시한부 환자가 되었다.
1년, 아니 6개월, 아니 그보다 더 적게 남았는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하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애들이 투닥대도 그저 이쁘고 세상 모든 게 마냥 애틋했다.
주일에는 주일학교 교사 모임이 있었는데 (그 와중에 교회도 가고 교사도 하고 할 건 다 했다. 나름의 처절한 주의 분산 전략이었다.) 10월 말부터 12월까지 빼곡하게 늘어선 행사 일정들을 논의하는 와중에 나는 속으로 이 생각밖에 안 들었다.
‘하나님, 저 열심히 할게요, 그저 제가 여기 참여만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월요일이 되었고, 나는 출근을 했다.
워낙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문화라 선뜻 아무도 대놓고 묻지는 않지만, 일주일 내내 종적을 감춘 나를 동료들은 걱정하는 눈치였다. 내 옆자리에 앉는 제니퍼가 그 중 가장 용감했다.
“혜원, 우리 산책 갈까?”
회사 근처를 한 바퀴 돌며 일주일간 있었던 일을 그녀에게 이야기하고 있으려니, 어째 머릿속이 정리가 되는 느낌이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일주일간의 대 서사시를 읊어준 후, 지금은 이 불확실성 속에서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노라고 담담히 마무리 했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가려 노력했다. 최악의 상황 이래 봤자, 죽기밖에 더하겠어? 아직 모를 일이니까 일단 오늘은 내 할 일을 열심히 하자.
그렇게 생각하니 일이 또 잘 풀렸다.
내가 일하는 회사는 Mental Health NGO인데, 병원이나 각종 기관에서 정신건강에 관한 진단이 있는 사람들의 의뢰서를 보내주면 이들을 돕는 일을 한다. 불안증이나 우울증과 같은 기본적인 진단부터 공황장애, 강박, 조현병, 경계선 성격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등 진단은 다양하다. 이 다양한 상황 안에서 각각의 사람들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는데, 그것을 잘 이룰 수 있도록 서포트 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목표라 하면 집을 구하는 것, 취업을 하는 것, 소셜 그룹에 참여하는 것이 될 수 도 있고, 그저 침대에서 일어나 문 밖으로 나와 보는 것일 수도 있다.
지구에서의 1분 1초가 아까운 사람이 되었던 지라, 그 어느 때 보다 열심히 말하고 열심히 들었던 것 같다. 입사 이래 이렇게 보람을 느끼며 일한 날들이 없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서는 길에는 그간 뜸 했던 눈물이 주룩 흐르기도 했다. 주일학교 회의 때 들었던 꼭 같은 생각이 또 들면서 말이다.
‘하나님, 저 이 일이 너무 좋아요. 이 일 계속 하고 싶어요. 계속 하게 해 주세요.’
불확실 하다는 것. 아직 모르지만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것은 너무 좋으면서도 무척 잔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