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거기 계세요?

계시면 대답 좀 해 보세요 쫌

by 혜원

GP가 내 배를 줄자로 재더니 큰 병원으로 날 보낸 순간에도, CT 결과 높은 가능성으로 림프종인 것 같다는 말을 들은 순간에도, 조직 검사를 하느라고 굵은 바늘이 목에 꽂혀 꼼짝 못 하고 있던 순간에도, 내가 줄기차게 불러댄 존재, 의문의 대상, 원망의 상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는 단연코 하나였다.

하나님.

나는 기독교인이다. 이십 대 후반의 어느 날 크리스천이 되었고, 그 날 이후의 내 삶이 그 전보다 낫다고 생각하며 감사하고 살아왔다.

교회 청년부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도 했고, 차츰 성장하며 사역도 맡아 하기도 하고. 교회는 나에게 그저 안전한 울타리였다. 하나님은 나를 너무 사랑하시는 분, 나를 자녀 삼아 주시는 분, 그리고 전지 전능하신 분.

그런데, 그런 하나님이, 내게 이런 상황을 허락하셨다고?

도대체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내가 왜? 물론 누구에게나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있지. 알아, 근데 나에게 왜? 크리스천이고 아니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알아, 그렇지만 내가 왜? 아니 수 많은 크리스천이 병에도 걸리고 암에도 걸리지. 알아, 그렇지만 왜 난데? 전도사님인 우리 시어머니도 유방암에 걸리셨었지. 알아, 하지만 왜 내가 왜 내가 왜?


평탄하고 쉬운 길을 감사한 줄도 모르고 걸어온 나로써는 도대체가 알 수가 없었다.

모든 화살은 하나님께로 갔다. 많이 생각하고 기도하고 조언을 구했다. 심지어 챗GPT 에게도 물어보았다. 전지 전능하시고 선하시며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이 상황을 허락하신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성경 신학적으로, 조직 신학적으로 다각도로 설명해내라고 따졌다.


......

아직도 나는 정답을 모른다. 아니, 정답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제는 하나님이 나를 위해 옛다, 암이다, 고생 좀 해 봐라, 하고 툭 던져주신 것이 아니라는 확신은 있다. 이 일이 하나님이 기쁘게 계획하신 것은 아니지만, 그냥 생긴 일이지만, 이 속에서도 선한 것을 찾게 해 주시고 더 나은 내가 되도록 해 주실 것이며, 무엇보다도 이 시간들을 함께 걸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은 있다.


그리고 하루 하루 지날수록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나는 내가 어느 정도의 연민과 동정심, 그리고 공감력을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으니 제 2의 인생의 업으로 사회복지사를 택했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다시 일어서는 것을 돕는 일을 하는 것일 테다. 하지만, 내가 너무나 힘든 상황을 겪고 나니 그 이후에 보이는 것은 이전과는 정말 달랐다.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마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그런 마음, 기약 없는 병원의 연락을 기다리는 애타는 마음, 무도 이해해주지 못할 상황에 너무 외로운 마음, 너무도 애절하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의 마음...


내가 돕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간절함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마음들을 그냥 책으로 배울 수는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회사에서 직원 복지의 일환으로 한 달에 한 번 외부 수퍼비전을 받는 제도가 있는데, 일 외에도 개인사든 뭐든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자리이다. 나의 사정을 들으신 대표님께서 특별한 수퍼바이저를 추천해 주셔서 만나 보았는데, 이 분의 직업은 Spiritual coordinator란다. 영성 코디네이터라니.


마음을 나름 잘 수습한 채 담담하게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한 터라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참 따뜻하고 노련한 분 앞에서 그간의 마음 고생을 털어놓다 보니 서러운 마음이 솟구쳐 눈물이 나왔다. 그 분은 나를 이렇게 위로해 주셨다.


“혜원, 너는 2년 동안 대학원 다녀서 소셜 워크 마스터 학위를 땄는데, 단 2주간의 경험을 통해 emotional (감정의) 박사 학위를 딴 것 같아!”


그렇게 나는 초 단기간에, 돈 한푼 안 들이고, 학위를 하나 더 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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