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Day -1

나쁜 예감

by 혜원

응급실에 도착하니 GP 의 의뢰서가 도착해 있어서 나름 빨리 진행이 되었다. 8 층으로 가라는 안내를 받고 올라가는 와중에, 금방 내 손을 떠날 게 뻔한 그 의뢰서를 나중에라도 찬찬히 보려고 사진을 찍어 두었다. 의뢰서를 받아 든 간호사는 침대를 하나 내 주더니 일단 누우란다. 이것 저것 바이탈 체크를 하고 피를 잔뜩 뽑아가더니 CT를 찍을 건데 오늘 안에 찍을 수 있는지는 장담을 못하지만 밤에라도 찍을지 모르니 지금부터는 금식이라네? 아 오늘따라 하필 아침도 못 먹고 빨리 가라 등떠밀어서 점심도 못 먹고 부랴부랴 왔건만…


언제까지가 될 지 모르는 기다림을 시작하며 남편에게 전화해서 예상치 못하게 급 전개된 상황을 알려주고, 오늘은 늦게야 집에 갈 것 같다고 아이들을 부탁해 두었다.

커튼을 닫고 침대에 벌렁 누워 기왕 이렇게 된 거 좀 쉬자 생각하다가 문득 의뢰서가 생각났다. 대체 뭐라고 써있으려나.


배에 19cm 덩어리가 있음.

응?


자궁에 손을 넣어 움직여 보았으나 영향을 받지 않음.

응??


자궁 근종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야? 아니 그럼 뭔데???

그때부터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인간은 불안 앞에서 맥을 못 추린다. 불안은 눈덩이처럼 몸집을 자꾸 불린다. 나는 정신건강 분야에서 일하는 social worker(사회복지사)라 늘 불안지수가 높은 사람들을 만나며 그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업인데, 내 불안 앞에서는 도리가 없었다. 그냥 좀 큰 자궁 근종이려나 했는데, 아주 거대한 자궁 근종이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고, 최악의 시나리오로는 자궁 적출이나 난소 절제를 생각해 두었다. 토끼 같은 아들 딸 하나씩 다 있어 이제 가족 계획도 끝났으니, 그런 장기 없이도 잘 살 수 있을 거다.

전혀 계획에 없던 입원은 저녁을 훌쩍 넘겼고 남편이 잠시 들러 속옷이니 충전기니 급한 것들을 전해주고 갔다. 이쁜 딸내미는 엄마 혼자 자는데 무서울 거라며 자기 애착인형인 하양이를 전해주라 했단다. 이젠 결코 하얗지 않은 꼬질이 양 인형 하양이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응급실의 CT 는 그날 결국 내 차례까지 오지 못했고, 나는 밤 9시쯤에야 첫 끼를 먹을 수 있었다. 그 시간에 먹는 첫 끼는 뭐라도 꿀맛이었어야 마땅했는데, 식어빠진 샌드위치와 이국적인 인도 카레는 정말 더럽게도 맛이 없었다. 내일 아침 첫 타자로 나부터 찍을 거라는 공수표와 백지수표 사이 어딘가의 약속을 받고 응급실의 첫 밤이 저물어갔다. 하양이를 꼭 안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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