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을 어떻게 발견하셨어요?

운이 좋아 발견했어요

by 혜원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네 달 전, 2025년 10월 어느 날.

생리통이 심상치 않았다.


뉴질랜드는 어디가 아프면 무조건GP (General Practitioner / 주치의) 를 먼저 찾아가야 하는데 한번 가서 잠시 상담만 받아도 한국 돈 약 7만원쯤 하기에 평생 달고 살아 온 내 삶의 동반자 생리통 따위로 GP를 가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 날은 뭔가 달랐다. 아니, 생리 전 증후군부터 심상치 않았다. 가슴 통증이 마치 수유 때 2시간 예정으로 밖에 나왔다가 어쩌다 보니 5시간 동안 있게 되어 젖이 돌다 못해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은 뭐 그런 느낌이었다. 이번 생리통은 얼마나 심하려나 나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던 차에 그날이 왔고 나는 7만원이고 뭐고 바로 GP로 달려가야 했다. (정말 운 좋게도 누군가가 당일 취소를 해서 바로 예약이 가능했다.)

GP 는 나를 꼼꼼히 살펴 주었지만 내가 생리 중이었던 탓에 시원한 결과를 내 주지는 못했다. 다만, 자궁 근종이 있는 듯 한데, 사이즈가 상당한 것 같다고 했다. 생리 끝나면 반드시 다시 오라는 말과 함께.

꼭 일주일 후, 나는 선생님 말씀 잘 듣는 얌전한 학생 모드로 다시 GP 앞에 앉았다. 생리가 끝나 아프지 않았는데도 예약대로 병원에 갔던 건 지금 생각해도 신의 한 수였다. GP는 나를 눕혀 여기저기 눌러보고 찔러보고 전에 없이 진지하게 진찰하더니 급기야 줄자를 가지고 와서 배에 얹어 뭔가를 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지금 당장 큰 병원 응급실로 가라서 CT를 찍으라고.

여기서 잠깐 뉴질랜드의 의료시스템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한국과는 정말 비교도 할 수 없는 형편으로 한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정말 별로이다 (매우 정제된 표현이다). 치과와 응급실을 제외하고는 어디가 아프면 무조건 GP로 먼저 와야 하고, 얕고 넓은 지식으로 무장되어 감기도 눈다래끼도 무좀도 두루 다 보는 GP 가, 혹시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은 GP 라면 환자와 함께 구글을 검색해가며, 웬만해선 약을 주기보다는 물 많이 마시고 푹 쉬라고 하는, 그런데 느려 터지기까지 해서 예약하고 기다리는 동안 웬만한 병은 다 낫는다는, 뭐 그런 속 터지는 시스템이다.


GP선에서 해결이 되지 않으면 specialist (스페셜리스트 - 전문의) 에게 연결을 해 준다. 딱히 갈 일이 자주는 없지만 아이들 때문에 가 본 적이 있기는 한데, 아들 소아과 스페셜리스트 만나는 데는 4개월쯤 걸렸고, 딸 눈다래끼가 너무 심해 대기한 안과 스페셜리스트는 결국 못 만났다. 웨이팅 리스트에 있은지 며칠째라 미안하다는 친절한 편지를 한 달에 한 번 집으로 보내주는데, 480일까지 받고 취소해 버렸다. 편지에 사용된 나무한테 미안했다. 눈다래끼는 이미 흉터가 된 지 오래였다.

GP는 다시 말했다. 외래로 CT 찍으려면 최소 2주는 기다려야 하니까 당장 응급실로 가라, 보통 이런 당일 워크인은 안받아 주지만 내가 소견서 보내놓고 지금 많이 아프다고 사정해 놓겠다고.


아니, 근데 나 하나도 안 아픈데?...


내 GP는 아이들을 꽤 잘 진찰하기로 유명해서 몇 년 동안 꾸준히 만나고 있지만, 매사 차가우리만큼 담담하고 차분했던 그녀였기에 이런 모습은 참 생경했다. 그 생경함 앞에서 뇌가 너무 해맑았던 나는, 그런데 지금은 다시 일하러 들어가봐야 한다고 했다. GP 는 3초 정도 나를 빤히 보더니 다시 입을 뗐다.


“Whatever that work is, just cancel everything and go to ED now.”

그렇게 나는 응급실로 갔다. 나름 중요했던 오후 일정을 아쉽게 취소하고, 안 아픈데 아프다고 해놨으니 얼마나 심도 있게 아픈 척을 해야 하나 고민하며. 우리 엄마도 자궁 근종은 있었고, 한국 성인 여성의 절반 정도는 근종이 있다는데, 나도 이제 어쩔 수 없구나 생각하며.




이상하게도 전에 없이 심했던 그 생리통은 그 후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나중에 의사들과 이야기 해 보니 GP 도, 지금 나를 담당하고 있는 스페셜리스트도, 그 통증은 내 암과는 아무 상관 없는 것 같단다.



그래서 암에 걸린 걸 처음에 어떻게 알았냐고 사람들이 물으면 나는 늘 답한다.

운이 너무 좋아서 알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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