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민정 Feb 17. 2023

통증, 귀한 손님이 왔습니다

[마음치유 프로젝트 힐링칼럼 27]


  센 놈이 찾아왔다. 38.6도의 고열, 칼칼하고 따가운 인후통, 계속되는 기침, 온몸이 뻐근한 근육통에 오한, 두통, 호흡곤란까지…. 말로만 듣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내 몸을 침투했다. 


  코로나 19 초기 대유행의 중심지에 있었던 그때도 무사히 잘 지나왔다. 3년째 접어들어 우리나라 누적 확진자 수가 3천만 명을 돌파하고 국민 5명 중 3명은 확진 판정을 받은 셈이라는 보도를 보았을 때까지만 해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었다. 주변의 친구, 지인들도 대부분 걸렸는데 우리 가족 모두 감염되지 않았기에 나는 슈퍼 면역자인가 하는 생각도 하면서 코로나를 잘 비껴가리라 안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방심은 금물이라 했던가! 노마스크 시대를 앞둔 시점에 코로나 바이러스의 거센 공격을 받은 건지 아니면 나의 방어력이 자체적으로 와르르 무너진 건지 이렇게나 갑자기, 강력하게 찾아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올해 들어 공사(公私)를 불문하고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몸이 점차 무겁고 피로감이 몰려오는 것 같아 괜한 나이 탓을 하기도 했다. 바닥난 체력에 더 이상 물러서면 안 되겠다 싶어 얼마 전부터 새벽 운동도 시작했는데 이미 저하된 면역력은 어찌할 수 없었나 보다.     


  많은 통증이 한꺼번에 내 몸을 급습하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전에 아무리 매스컴에서 떠들어대도 그냥 흘려듣기만 했다. 보통의 감기 증상이겠거니 하고 쉽게 여겨왔는데 실제로 겪어보니 이렇게 매운맛일 줄이야! 약을 먹어도 떨어지지 않는 열과 불덩이 같은 몸 때문에 밤새 뒤척이느라 한 숨도 자지 못했다. 코막힘에 숨 쉬는 게 힘이 들고 입은 바싹 마르는데 머리까지 왜 이리 지끈거리는지…. 


이 총체적 난국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방법을 내가 딱히 가지고 있는 것도, 그렇다고 통증이 당장 달아날 모양새도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통증을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아프다는 것에 속상해하거나 울분을 토하지 않고 가만히 통증과 함께 있어보기로.      


  그저 잠잠히 통증과 함께 한다는 건 아프다는 감각을 느끼는 것 외에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는 것이다. 지금 현 상태를 그대로 느끼기만 할 뿐 그것에 잇따른 부정적인 감정과 느낌에 빠져들지 않는 것. 


처음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계속되는 통증에 ‘원래 이렇게 아픈 건가? 나만 더 심각한 건 아닌가?’ 하고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런데 어떠한 판단도 없이 지금 이 상태로 가만히 머물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평온해진다. ‘통증이 있긴 하지만 별 거 아니구나. 아무것도 아닌데 괜히 겁먹었네.’ 하는 안도감까지 느끼게 된다고나 할까. 그리고 아파서 슬프다거나 일을 못해 손해가 커서 화가 난다 혹은 중요한 일정을 취소해야 해서 왜 하필 지금이냐고, 왜 나냐고 억울해하거나 서운한 마음도 일절 없다. 줄곧 평화로운 마음 상태에 머물다가 자연스레 감사한 마음이 자라난다.      


  ‘나의 면역 세포가 치열하게 코로나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구나. 나를 지키고자 열심히 싸우고 있으니 이렇게 아픈 거야. 잘 이겨내리라 믿어. 그리고 앞으로 나는 더 강해지겠네. 참 감사하다!’      


  예상치 못한 병이 찾아오거나 갑작스러운 통증 때문에 당혹스럽고 힘들 수 있다. 그때에는 마음까지 같이 아파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지금 이 병은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러 온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나를 돕기 위해 온 것임을 받아들인다. 그러한 생각에 닿으면 통증도 기꺼이 수용할 수 있다. 

아프고 불편한 감각 때문에 괴로워하기보다는 내 몸의 균형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과정으로 여기며 이 상황을 가볍게 여길 수 있다. 몸이 더 상하기 전에 잠깐 쉬어가라고 나에게 신호를 보내준 것이자 삶의 쉼표를 만들어준 것이라고. 욕심내지 말고 과도하게 무리하지 않도록 육체적 건강과 삶의 균형을 찾을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란 걸.     


  병이 오기를 기다리며 환대할 것까진 없다. 하지만 왔을 때 내치거나 거부하지 않고 귀한 손님으로 대우할 수는 있다. 그래야 병도 고마워서 쉽게 지나가지 않을까. 통증이 찾아왔을 때 괴롭다고 밀어낸다고 해서 서둘러 떠나지 않는다. 빨리 낫지도 않는 법이다. 그러니 나는 통증을 기꺼이 맞이하고 흐뭇하게 보내리라.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을 축복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