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걱정을 화로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엄마가 나를 염려하고 사랑할수록 내 마음에는 그녀로 인한 상처가 깊어졌다. 아무런 맥락 없이 엄마가 나를 힐난하기 시작하면 나는 영문도 모른 채로 화가 났다가 이내 서러워졌다. 바로 오늘처럼.
여느 때처럼 글쓰기 수업을 듣고 집으로 기분 좋게 돌아왔을 때, 엄마는 마치 내 기분을 망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처럼 남자나 만나고 다니지 ‘실속 없는 일’만 한다며 나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툭하면 나를 보고 제 때 제 값에 팔리지 못한 곯은 과일 취급을 했다.
결혼의 적당한 시기를 놓치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염려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엄마는 늙어서 아프게 될 내가 애처롭고 외롭게 보낼 시간들이 안쓰러웠을 것이다. 그러다 영영 혼자 울게 될까 봐 두려웠던 거겠지. 엄마는 자신과 다른 삶을 살아가려는 자식을 걱정했다. 본인의 결혼 생활이 얼마나 불행했는지 보았던 딸에게 자꾸만 결혼을 강요했던 까닭은 결혼을 하지 않은 여자의 삶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미지의 세계 한가운데 딸을 놓아버린 것 같은 불안한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예측하지 못한 세상 속에 던져질 바에는 차라리 예측 가능한 지옥 속에 있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혼자서도 살아갈 힘을 길러야 한다고 했던 것도 여자도 능력이 있어야 된다고 가르친 것도 엄마였다. 엄마는 나를 혼자서도 단단하게 살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왔다. 나 역시 경제적 무능으로 인해 이혼하지 못하는 엄마를 직관하며 자라왔기 때문에 외부적으로는 나 하나 먹고 살 경제적인 능력을 갖추도록 내부적으로는 내 마음을 자주 들여다보고 주어진 시간을 의미 있게 채우려고 노력해 왔던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두 발로 설 수 있게 되었는데 결혼할 시간이 되었다고 호박 마차를 타고 왕자님을 찾아서 그에게 마음을 기대어 살라고 하니 내 발을 옭아매는 유리 구두를 깨트려 산산이 부숴버리고 싶은 마음만이 가득했다.
다툼에 있어서 나의 결혼은 표면적인 문제였을 뿐, 모든 갈등의 원인은 이미 끊었어야 할 나와의 탯줄을 엄마가 손에 꼭 쥐고 있다는 것이었다. 독립할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엄마의 품에 살고 있는 것이 문제였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만한 적당한 거리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물리적인 거리든 심리적인 거리든 말이다. 우리는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면서 서로의 삶에 너무 많은 간섭을 하고 있었다. 엄마가 졸혼을 하든 결혼 생활을 유지하든 그 결정에 대해서 나의 동의가 필요 없는 것처럼 내 결혼을 결정할 권리는 오로지 나에게 있었다. 그리고 엄마가 어떤 결정을 하든 내가 엄마를 사랑한다는 사실에 변화가 없듯이, 엄마 또한 내가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나를 미워하지 않기를 바랐다.
엄마가 만들어 놓은 꽃밭에서 평생 살 요량이 아니라면 이제라도 탯줄을 버려야 했다. 방에 들어앉아 아빠에게 편지를 썼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이라고 하니 일단은 집을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울보인 나는 이 모든 상황을 침착하게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To. 아빠에게
아빠 뜬금없이 편지를 줘서 많이 놀랐죠?
제가 이 편지를 준다면, 편지를 쓰고 적어도 며칠 혹은 몇 달은 고민을 하고 주는 것일 테니 아빠도 같이 고민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아빠, 제가 요즘 엄마 때문에 마음이 너무 힘들어요. 엄마가 저에게 하는 말들이 악의가 없다는 것도, 저를 걱정해서라는 것도 혹은 정말로 별생각 없이 하는 말이라는 것도 다 아는데 제가 성격이 모가 나서 그런지 엄마의 말들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이 들어요. 둥글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를 자책도 해보고 스스로 한 귀로 듣고 흘리려고 노력도 해봤는데 그게 잘 안 돼. 상처만 남아요. 자꾸.
결혼 생각이 딱히 없는 것 같은 저를 보며 두 분이 걱정을 많이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저도 제가 결혼을 할지 못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제가 아는 것은 내 삶이 행복해지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것과 어떤 삶을 살아야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지 스스로 답을 구해 나갈 것이라는 거예요. 나는 몇 번이나 엄마에게 내가 생각하는 행복과 내 삶의 가치 있는 것들을 이해시키려고 했어요. 어쩔 땐 엄마도 이해하는 것 같았어요. 그 순간뿐이었을지라도.
아빠, 결혼을 하지 않는 제가 이기적인 거예요? 무언가를 배우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실속이 없는 일이에요? 나이가 들면 저는 값이 떨어지나요? 제가 지금 불효를 하고 있어요?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기에, 뭘 그렇게 잘 못 살고 있기에 엄마는 자꾸만 나를 비난하는지 모르겠어요.
남자를 안 만나는 것이 그렇게 큰 잘못은 아니잖아요. 그건 제 마음대로, 온전한 제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외로울 때도 있겠죠. 그런데 배우자가 있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건 아니잖아요. 제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결국 저예요.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나타나면 결혼을 하겠죠. 부모님이 닦달한다고 해서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스스로를 불행해 속에 집어넣을 생각이 아니라면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이 없는데 결혼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누구보다도 저의 행복을 바라는 것은 저예요. 엄마가 생각하는 행복한 딸의 모습이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고 사는 삶인가 봐요. 그런데 그것은 엄마의 상상 속에 있는 행복이지 진짜 저의 것이 아니에요.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사는 삶이 행복할 수도 있죠. 그리고 불행할 수도 있고요. 어떤 삶의 형태든 행복과 불행이 공존하잖아요. 옆에 누군가 있다면 위로가 될 수는 있겠지만 결국 모든 것들은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것이에요.
아빠 나는 이런 것들을 엄마에게 이해시키려 노력했어요. 그런데 결국 나는 엄마 마음도 헤아리지 못하는 못난 딸이 되고, 미래를 대비하지 않는 철부지가 되어 버려요. 엄마가 하는 말 때문에 상처받는다고 말하면 모나고 예민한 애가 돼요. 아무 말도 통하지 않는 것 같아서 참다가 폭발하면 결국 저는 별것도 아닌 일에 신경질을 내는 못된 딸이 되고 엄마를 상처 입히는 나쁜 애가 되죠.
화가 났다가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자존감이 떨어지고 자꾸 눈물만 나요. 엄마는 내 행복을 위해, 나를 걱정해서 말을 하는 것일 텐데, 나는 그것 때문에 자꾸만 불행해져요.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그것을 자꾸 하찮게 만들어요. 그게 저한테 너무 큰 스트레스를 줘서 엄마랑 마주치는 것, 말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져요. 아빠, 엄마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나에게 너무 큰 상처를 줘요. 물론 행복도 주지만!
아빠, 나는 집을 나가야겠어요. 엄마를 미워하지 않고 싶고 제가 행복해지고 싶어서 하는 선택이에요. 더 이상 싸우기도 싫고요.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말해주세요.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집을 나가는 것밖에 답이 없는데, 아빠 생각은 그게 아니라면 말해줘요.
아빠, 내가 이걸 쓴 이유는 엄마를 원망하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엄마도, 아빠도 정말 사랑해요. 그냥 내가 좀 마음 편히 살고 싶어서, 둥글지 못한 제 성격을 고칠 수가 없어서 그래요.
오랜만에 쓰는 편지가 좋은 이야기였으면 좋았을 텐데. 죄송해요. 엄마에게는 이야기하지 말아주셨으면 해요. 상처받으시거나 저를 별난 애 취급하시겠죠. 둘 다 원하지 않아요. 말로 하자니 횡설수설할 것 같고 또 갑자기 서러워져서 울다가 아무 말도 못 할 것 같아서 글로 써요. 아빠도 같이 고민해 주시고 상담 좀 해줘요. 기왕이면 너무 늦지 않게 부탁할게요. 매번 요구만 많은 딸이라서 미안해요. 별나서 미안해요.
From. 딸내미
편지를 모두 쓰고 나니 새벽 4시쯤이었다. 분노와 설움으로 점철된 문장을 책상 서랍 깊이 처박아 두고 부은 눈으로 출근을 했다. ‘한 번만 더 긁으면 정말로 집을 나와 버려야지.’라고 다짐하고는 며칠이 지났다.
엄마와 딸의 싸움이 으레 그렇듯, “밥 먹어.”라는 한마디로 우리는 대충,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화해를 했다. 나는 한동안 엄마의 불안에 전염되지 않고 편하게 지낼 수 있어서 돈을 좀 더 모을 때까지 독립을 미뤄야겠다고 생각했다. 편지는 다시 꺼낼 일이 없어 잠시 잊고 있었다. 부모님과 나는 이제 서로의 신경을 긁어대는 농담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관계로 돌아왔다.
평화로운 저녁시간이었다. 아빠가 약 올리는 웃음을 지으며 내 취미생활들을 ‘실속 없는 짓’이라고 칭했을 때, 엄마가 갑자기 정색을 하며 아빠에게 면박을 주었다.
“여름이 그런 말 싫어한다!”
나는 그때야 알았다. 득달같이 ‘결혼천국, 독신지옥!’을 외치던 엄마가 하루아침에 누그러진 이유를. 내 일기를 훔쳐보는 것이 취미인 엄마가 전하지도 않은 서랍 속의 편지를 이미, 기어코 찾아 읽었다는 것을 말이다. 헛웃음이 났다. 나의 모든 비밀과 생각을 낱낱이 알고 싶어 하는 엄마의 앙큼한 관음증을 어찌 칠칠치 못한 내가 막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게라도 엄마가 나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면 구질구질한 편지를 들킨 것이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내 삶의 방식에 누군가의 이해와 인정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나와 가장 가까운 누군가가 내 삶의 방식을 부정하는 것은 도무지 견디기가 힘든 일이다. 가끔 만나는 친척들이 나의 삶을 온전하지 못하다고 여기는 것은 충분히 무시할 수 있는 일이지만 나의 사랑이자 미움이자 친구인 엄마가 나에게 분원하는 것은 내 한쪽 세상을 부식시키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의 결혼관과 행복에 대해서 엄마의 이해가 필요했다. 결국은 일상 속에서의 그 많은 대화들이 무용했고 집을 나가겠다는 협박만이 통했을지라도 말이다.
나는 여전히 내가 원하는 대로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모든 외로움과 책임을 견디는 것은 오로지 나뿐이라는 사실이 때때로 무겁게 여겨질지라도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내게 있음에 기쁨을 느낀다.
내가 엄마에게 바라는 것은 오직 응원과 위로뿐. 넘어진 나를 일으켜 결승선까지 부축해주지 않기를 바란다. 직접 도와주는 일보다 일으켜 세우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누르고 내가 무릎을 털고 일어나 다시 뛰어갈 것임을 기꺼이 믿는 일이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안다. 가슴이 졸여지는 일임을, 인내심이 필요한 일임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엄마, 기다려줘요. 그럼 나는 다음에 또 넘어져도 엄마를 찾으며 자리에 주저앉아 우는 대신에 다리를 절뚝이면서도 끝까지 걸어갈 테니까. 나는 아직도 넘어질 일이 수없이 많을 거예요.
나는 엄마와의 거리가 필요하다. 운동장과 응원석만큼의 거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