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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여름 Aug 10. 2023

우리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독립을 하려고 3년 전부터 의견을 피력했지만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았다. 일부 기자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가족과 함께 사는 청년들을 부모의 등골을 빼먹는 기생충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4평 남짓한 작은 방에서 탈출을 꿈꾸는 자식의 발목을 잡는 것은 부모이기도 했다. 언제나 가성비를 따지는 아버지에게 미혼인 딸의 독립은 길바닥에 돈을 뿌리는 어리석은 행위였으니 원룸이라도 구해서 나가겠다는 가당찮은 선언은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호시탐탐 독립을 노리면서 몇 번의 청약에 실패하고 주말마다 찾아오는 조카의 울음소리를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쯤 분가를 허락받았다. 회사에 있는 나를 대신해 엄마가 집을 보러 다녔다. 과년한 딸을 멀리 떼어놓고 싶지 않았던지 엄마는 본가에서 차로 5분 거리의 아파트에 선금을 걸고 돌아왔다. 지어진 지 30년이 넘는 낡은 복도식 아파트에 대출을 많이 껴서 들어갔지만 가슴이 터지는 해방감은 한 달 이자 30만 원을 지불할 만큼의 가치가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독립하니까 좋아?’라고 물어볼 때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진작 나올 걸 그랬어요, 너무 좋아요!” 부모와의 이별을 환영하는 나의 모습에 사람들은 당황했다가 이내 웃었다.


내가 집을 나오고 싶었던 까닭은 가족을 사랑했지만 그 이상으로 미워했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살고 있는 가족 구성원 중 강아지 마루를 제외하고는 어느 하나 죽이 맞는 사람이 없었다. 엄마와 가장 가까웠지만 엄마를 가장 미워했다. 좋든 싫든 매일 보아야 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스스로의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일이니까 그녀에 대한 오래된 애증을 가슴 깊이 묻어두고 모른 체하며 여러 날을 지냈다. 캥거루족으로 살면서도 좁은 내 방의 문을 닫고 ‘혼자서 잘 살고 있다’고 자위하고 있었다.


독립을 하니 숨길 필요가 없어 터져 버린 미움이 온마음을 집어삼켰다. ‘엄마,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 왜 나랑 동생을 차별했어? 왜 나한테 아빠에게 맞는 모습을 보여줬어? 이혼하라고 수십 번 말했는데도 기어코 헤어지지 않아서 그 모든 더러운 꼴을 어렸던 내가 다 보게 만들었어? 왜 나를 결혼을 무서워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어?’ 상상 속에서 매일 소리치고 따져 물었지만 막상 엄마에게 전화가 오면 평소와 다르지 않은 목소리로 안부를 전했다. 불같이 끓는 마음과는 다르게 머리로는 그녀 또한 피해자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만만한 게 엄마라서 매번 그녀에게만 화를 내는 것이 나의 못난 모습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요동치는 마음을 꽁꽁 숨겼다. 발산하지 못한 원망은 허공을 떠돌다 흩어지지 못하고 메아리로 모여 귓가에 맺혔다. 


진짜로 혼자 살게 되니 그동안 작은 방 안에서 혼자서도 잘 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엄마와 가슴이 닿은 채로 서로의 심장 소리에 반응하며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까지 감정이 얽히기 전에 헤어졌다면 우리는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서로의 안녕을 빌어줄 수 있었을까? 


폭풍 같은 감정들이 지나가기를 바란다. 지난한 감정들이 휩쓸려 무너지고 나면 폐허가 된 벌판에서 한 여자의 모습을 반듯하게 빚을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너무 미워하지도 너무 사랑하지도 않은 채로 우리의 관계를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쩌면 우리는 서
로를 영영 이해하지 못한 채로 살아갈 것이다. “왜”로 점철된 원망과 질문들에 대한 답을 끝까지 듣지 못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녀 자신도 왜 그랬는지 답을 모를 테니까. 우리는 모두 처음인 삶에 서투르다는 말에 기대어 어리석었던 시절의 잔상을 천천히 태워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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