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활동을 하는 일본 국적의 방송인 사유리가 몇 해 전 정자 기증을 받아 아들을 낳은 것이 화제가 되었다. 그러니까 그녀의 아들에게 생물학적 아버지는 있지만 사회적 개념의 아버지는 없는 셈이다. 그녀를 향한 응원의 말도 있고 비판의 목소리도 있지만 그러한 논쟁을 뒤로하고 그녀의 결정이 가족의 형태에 대한 고정관념에 작은 틈을 만들어 준 것은 사실이다. 그녀가 출산을 하고 아들과 함께 생활하는 모습이 화면에 나오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모르겠는데, 나에게도 딸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엄마는 인스타그램에 게시된 ‘힙’한 카페에서 나와 데이트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너도 너 같은 딸이 있으면 참 좋을 텐데.”라고 했다. 그래, 내게도 나 같은 딸이 있으면 좋겠다. 일이 년에 한 번씩 엄마와 여행을 가고 그녀가 좋아할 법한 뮤지컬이나 공연 티켓팅을 성공시키는 딸. 여전히 성행인 인생 네 컷 따위의 사진을 찍자고 하며 60대의 엄마를 유행에 동참시키는 곰살맞은 딸 말이다. ‘네 덕에 이런 것도 해보네.’하며 책상 앞에 현상된 사진을 가지런히 붙여 놓는 엄마를 보면 오랜만에 딸 노릇을 한 것 같아 마음이 한편이 뿌듯하다. 변변찮은 직업을 가져 부모님의 대단한 자랑은 되지 못하지만 별일 없는 일상을 들어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친구 같은 딸. 그런 분신이 나에게도 있으면 좋겠다.
비혼 중인 친구에게 딸을 낳고 싶다고 말하니 그녀 또한
“딸이라는 보장만 있으면 나도 낳고 싶지.”라고 대답했다. 우리 딸들에게는 왜 하필 작은 우리가 필요해진 것일까? 얼굴에 철판을 깔고 대답을 하자면 우리는 엄마에게 참 잘한다. 그러니까 남동생과 비교하면 확실히 그렇다. 장담컨대 한국에 태어나 남자 혈육을 둔 여성들의 8할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 걔 보단 내가 낫지’
‘딸같이 살가운 아들’이라는 말은 있어도 반대의 말은 없는 것으로 보아 일반적으로 딸은 다정하고 아들은 무심한 것이 타고난 특성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딸은 아들보다 싹싹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꼭 그렇게 해야 할 것만 같은 의무를 지운 것인지 혹은 성별로 인한 타고난 차이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엄마의 외로움을 걱정하고 적절한 순간에 격려와 위로를 건네기 위해 때때로 그녀의 감정에 기웃거린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나를 친구로 생각하는 듯이 종종 남편에 대한 험담을 쏟아내기도 한다.
“내가 너 아니면 어딜 가서 이런 이야기를 하겠니. 제 얼굴에 침 뱉기지.”라고 하는 엄마의 불평을 듣고 있으면 마치 감정의 쓰레기통이 된 듯한 골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지만, 견딜 수 없이 답답해 딸에게 하소연할 수밖에 없는 그녀의 마음을 외면할 수가 없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있으면 엄마와 싸운 남자가 딸을 너무나도 예뻐했던 내 아빠인 것을 잊고 소중한 친구를 괴롭게 하는 그녀의 못난 남편으로만 생각하게 되어 아빠를 볼 때마다 괜스레 부아가 치민다. 모녀는 뜨거운 커피 한잔을 사이에 두고 좋은 아빠이자 나쁜 남편인 한 남자의 뒷담을 하며 서로의 제일 친한 친구가 된다.
여느 친구와 마찬가지로 우리 모녀는 종종 맛집 탐방이나 쇼핑을 한다. 둘이서 팔짱을 끼고 동네를 걷다가 엄마의 친구를 마주쳤던 날, 유난히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나를 앞에 두고 그녀는
“딸이 있어서 좋겠네.”하며 엄마를 부러워했다.
“응, 좋지!” 엄마는 내 손을 고쳐 잡으며 의기양양하게 대답을 했다. 몇 발자국을 걸어가다 아줌마가 시야에 사라질 때쯤, 엄마는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저 집은 아들만 둘이야.” 아들은 엄마와 데이트를 하지 않는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그렇게 생각했다. 실제로 그녀의 아들도 애인을 두고 굳이 엄마와 무용한 시간을 보내지 않았으니까 경험에 근거한 자기만의 결론일 수도 있다. 오빠나 남동생이 유명한 카페를 검색할 때는 새로운 여자친구가 생겼거나 기념일. 그때뿐이 아닐까? 친구와 나는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역시 아들은 쓸모가 없어.’
자라는 내내 ‘정이 없다, 무뚝뚝하다’ 핀잔을 들었던 내가 우리 집의 애교 담당인 남동생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엄마와 함께 보내는 것이 모순이다.
내게도 나를 데리고 유명한 맛집에 데려가 줄, 유행하는 디자인을 알려주고 내 이야기를 다정히 들어줄 딸이 있으면 좋겠다. 엄마에게 내가 있는 것처럼 늙어가는 내게 영원한 젊음으로 남아있을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엄마는 좋겠다. 그런 딸이 있어서.
내가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