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여름 Aug 03. 2023

시절인연

현주가 청첩장을 건넸다. 4년 넘게 사귄 남자친구가 있어서 언젠가 결혼을 할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게 올해가 될 줄은 몰랐다. 친구의 갑작스러운 소식에 나는 깨나 놀랐다. 그녀의 결혼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임의 절반이 유부의 세계로 진입하게 되었다.

“얘들아, 결혼해도 나랑 놀아 줘야 해.”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고 농담을 하는 현주를 보며 나는 ‘당연하지, 결혼 못해도 나랑 놀아 줘야 해.’라며 마음속으로 대답을 한다. 누가 결혼을 하든 말든 특별한 생각이 없었는데 가까운 친구가 결혼하는 것을 보니 괜스레 마음이 어수선하다. 그녀의 행진에 뜨거운 축하를 보내면서도 문득 ‘이러다 나만 남겨지는 것 아니야?’하는 짧은 두려움이 스친다.


한 쌍의 부부가 탄생하고 자연스레 연애와 결혼 이야기가 오가는 결혼식장에서 나는 소수자가 된 듯이 움츠러든다. 그러니까 결혼이라는 평범한 절차를 밟고 있지 않은 빨간 머리의 펑크족이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멀쩡하던 마음이 괜히 불안해진 탓은 군중 속에 섞이고 싶은 생존 본능 때문일지도 모른다. 결혼식은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이 결혼을 하고 결국 나 혼자만 외로운 여생을 보내게 될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각본을 쓰게 만든다.  돌려받지도 못할 축의금을 내느라 허리가 휘청이는데, 소란한 마음까지 짐을 더한다.


친구의 결혼과 나의 외로움에는 상관관계가 없다. 단지 그날의 분위기가 착각하게 만들었을 뿐. 친구들은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이 결혼을 했지만 내 쓸쓸함의 크기는 변함없이 적당하다.

같은 동네, 같은 학교, 같은 색깔의 풍선을 흔들던 우리의 삶은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지고 있다. 어떤 이는 나와 같은 미혼이고 어떤 이는 딩크이고 또 어떤 이는 아기의 엄마가 되었다. 나와 함께 늙어갈 친구들은 예전만큼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서로에게 신경을 기울이지는 못하지만 구태여 연락의 빈도나 만남의 횟수로 우정을 증명하지 않아도 지나온 세월만큼 잘 익은 마음으로 서로의 안녕을 바란다.


가장 친하다고 가장 자주 만나는 것도 아니고 한 번 단짝이 영원한 단짝으로 남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 시기에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 잘 지내려고 한다. 친분을 쌓아 친구가 되겠다는 거창한 결심이 없이 그저 오늘을 함께해 줘서 고맙다는 다정한 마음으로 말이다. 시간과 환경이 맞아 요즘 잘 보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로 지내다 보면 상황이 바뀌어 헤어질 날도, 다시 만나게 될 날도 있을 것이다. 자주 만나서 수다를 떨고 달에 한 번씩 밥을 먹지 않아도 괜찮다. 어쩌다 만나면 반가운 마음으로 한결같은 응원을 보내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것이 인생이라고는 하지만 친구든 시절인연이든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고약한 세상을 헤쳐 나갈 힘이 된다. “너는 잘 될 거야”, “걱정하지 마. 다 괜찮을 거야”라는 말들이 나의 어둠을 얼마다 많이 걷어주었는지 그들은 알고 있을까? 나와 같은 시대를 보내고 나이 들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 한 편이 든든해진다. 때때로 어떤 날의 분위기가 불안을 몰고 올 때도 있겠지만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나면 걱정은 잠잠해지고 스스로를 다독일 것이다. 그때는 또 그 시절의 인연이 있을 거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