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나에게 연애를 몇 번 정도 해봤냐고 물어보면 나는 한 명이라고 대답해야 할지 열댓 명이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적당히 생각하는 척하다가 “글쎄, 한-(열다섯 명에서 오차범위) 두 명쯤이요?”라고 얼버무린다.
사랑이라고 부를 만한 연애 하나와 별 의미가 없었던 관계들이 여럿 있었다. 부질없이 연애의 숫자만 늘렸던 까닭은 딱히 대단한 남성 수집벽이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고 그들의 호의를 거절하기가 미안했기 때문이다. 아, 그렇다고 내가 착한 여자란 말은 절대 아니다. 고백의 수락이 쉬웠던 만큼 헤어짐을 말하는 것도 무겁게 여기지는 않았으니까.
연애를 게임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20대에는 남자들이 나에게 관심을 표현하는 것이 왜 그렇게 설레던지, 밀고 당기던 그들의 아슬아슬한 마음을 가지면 게임에서 이긴 듯이 기쁘다가 이내 최종 보스를 잡고 엔딩 화면을 본 것처럼 급격히 흥미가 떨어지곤 했다. 콩깍지가 벗어지니 싫은 점만 전부로 보였다. 싸우고 대화하며 관계를 풀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이별을 말하며 등을 돌려 도망쳐버렸다. 좋은 대응 방식이 아니었다.
부모님의 잦은 다툼으로 인해 싸움에 대한 공포를 갖게 된 나는, 싸우게 되는 상황을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잠시 불협화음을 참고 조율해야 할 관계 속에서 자꾸만 비겁하게 굴었다. 그래, 구차한 변명이다. 나는 좋은 사람도, 괜찮은 연애상대도 아니었다. ‘나쁜 년!’ 아마도 몇몇은 나를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아님, 더 심하려나?
깨나 많은 남자들을 만났으나 소호를 제외한 대부분이 잊혔고 혹은 잊고 싶은 만남들이었다. 못생겼지만 작은 코가 예쁘던 소호는 내가 6개월을 쫓아다닌 남자였다. 아무리 꾀어도 나를 본 척도 안 하기에 술에 취한 척 어깨에 기대 버려서 사귀게 되었는데, 대단히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어서 그에게 ‘박 부처’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다.
‘내 여자가 아니면 따뜻하게 대하지 않는다.’는 요상한 철학을 가진 소호는 반년동안 나에게 그렇게 차갑게 굴더니 사귀자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온 세상의 다정함을 끌어안은 사람이 되어서 “GAME OVER, YOU WIN!”이 반짝이는 화면을 집어치우고 반전 매력으로 다시 나를 홀렸다.
엉망진창이었던 첫 연애로 인해 ‘남자란 동물은 사랑이라는 걸 할 줄 모른다’고 생각하던 나에게 그는 매 순간 진심으로 다가와 아픔을 치유해 주고 불안을 녹였다. 소호는 나를 사람답게 만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뱉던 욕을 고치게 하고 미대생이랍시고 겉멋이 들어 피우던 담배를 끊게 하고 연애에 대한 마음가짐도 바꾸어 놓았다. 소호에게서 배운 연애는 게임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였다. 그것은 다른 말로 희생이었고, 신뢰였고, 배려였고, 이 세상의 가장 좋고 예쁜 단어들이었다.
소호와 헤어진 후에도 그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계속해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몇 년이 흘러 자정에 맞추어 보내던 생일축하 메시지를 까무룩 잊어버리게 되었을 때쯤 연애를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좋은 사람을 만나 성숙한 연애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질수록 쉽게 누군가를 만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냥 연애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 부를 만한 연애를 하고 싶었으므로 몹시 까다로운 여자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남자를 많이 만나봐야 남자를 보는 눈이 길러진다는 말을 들었다. 아는 언니 1도 그렇게 말했고 아는 언니 2,3,4... 여하튼 숱한 아는 언니들이 그렇게 말한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말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꼭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자칭 남자를 많이 만나본 나는 애석하게도 여전히 남자를 보는 눈이 조금도 없다. 그저 걸러야 할 사람 정도만 보이는데 그것은 굳이 연애를 많이 해보지 않아도 알 만한 수준이었다.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사람을 보는 눈이 생기니까 굳이 전 남자친구의 숫자만 늘리는 연애는 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그런 연애들로 얻은 것은 높아진 눈밖에 없었다. A는 고집이 세서 헤어졌고 B는 자꾸만 나를 기다리게 해서 헤어졌으니, 헤어진 이유만큼
1. 고집 센 남자 싫음.
2. 기다리게 하는 남자 싫음.
…
같은 싫음 목록만 줄줄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들에게서 보였던 내가 싫어했었던 모습 혹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성향들은 새로운 사람이 절대 가지지 말아야 할 행동의 목록이 되어서 내 주제는 파악하지 못한 채 공연히 눈만 머리 꼭대기로 붙어 버렸다. 나와 백 퍼센트 맞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와 만나서 싸우고 화해하며 맞춰갈 생각은 하지 않고 처음부터 이것저것 따지고만 드는 것이 문제였다. 그렇게 사람을 거르다 보니 아무도 남지 않는 불상사가 초래된 것이다.
하지만 어쩌다 나와 잘 맞을 것 같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자꾸만 걱정이 되었다. 잦은 연애의 반복으로 인해서 관계의 지속성에 대한 기대가 떨어지다 보니 만남과 동시에 이별을 생각하게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언젠간 이 사람과도 헤어지게 되겠지?’ 헤어지고 나서 후회가 남지 않도록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 사랑을 하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것은 끝이 가진 장점이지만 다시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서 벽을 세우게 되는 것이 단점이었다. 홀로서기가 너무 힘들지 않도록 온전히 그에게 기대지 않고 나의 독립적인 생활은 유지하고자 한다거나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두고 일정거리 이상 다가오지 못하도록 만들며 이별이 나를 헤치지 않도록 쓸데없이 갖은 애를 쓰고 있는 것 말이다.
과거의 실패들은 불안이나 좌절, 두려움이 되어 미래의 가능성을 발목잡기도 한다.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험은 없다지만 굳이 겪지 않아도 되었을 사람과 피했어도 될 상처도 있는 것이다. ‘마음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나 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좋은 사람과만 보내도 모자랄 인생이다. 나는 이제 겨우 한걸음의 사랑을 배웠고 길 위에 홀로 서 있다. 그것이 서툴기 짝이 없더라도 내 속도에 집중해 걸어갈 용기를 내보려고 한다.
이 세상의 가장 좋고 예쁜 단어들을 위해서, 다시 한 걸음만큼의 용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