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편하게 입을 시원한 원피스가 사고 싶었다. 계획 없이 옷가게를 돌아다닐 때는 모든 옷이 예쁘더니 막상 돈과 뭣 하나 건지려는 단단한 의지를 장착하고 쇼핑을 나서면 이상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 하나도 없다. '이 많은 옷 중에 내 마음에 꼭 드는 것 하나가 없을까?' 결국 허탕을 치고 카페에 앉으니 문득 옷 고르는 일이 연인을 찾는 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창밖의 저 많은 남자 중에 어떻게 내 인연 하나가 없을까?' 다들 재주도 좋지.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사랑을 득템 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설령 창밖으로 희대의 이상형이 지나간다고 해도 이제는 그의 손목을 잡아채고야 말 용기가 남아있지 않다. 20대 초중반의 나는 가지고 싶은 것을 쉽게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쓸모도 없는 자존심 따위야 애초에 팽개쳐 버리고 호감이 있는 사람에게 ‘뭐 해?’라는 의도가 뻔한 메시지를 보내고 놀아달라며 억지를 부렸다.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 못해서 며칠을 앓느니, 대차게 차이고 이불을 차며 ‘여자 보는 눈도 없는 자식!’하고 욕을 하는 편이 후회가 없었다. 그렇게 연애가 어렵지 않은 한때가 있었다.
하지만 헤어짐을 열댓 번쯤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가벼운 만남에 감정을 소모하는 것이 싫어졌다. 이별은 무뎌지지도 않아 매번 새것처럼 아프고 나는 이제 스스로를 그만 다치게 하고 싶었다. 마음마저 노화가 진행되는 것인지 상처를 회복하는 속도는 해가 지날수록 더뎌지고 조금 지쳐 버렸다.
자연스러운 만남의 기회가 없다는 것도 한동안 연애를 쉬게 된 이유가 되었다. 직장에는 60명에 가까운 직원이 있는데 그중 미혼인 남성은 단 두 명뿐이고 심지어 한 명은 공익근무요원이다. 그나마 취미로 다니는 미술과 발레학원마저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더욱이 대학시절 캠퍼스커플을 경험함 탓으로 같은 소속에서 연애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알기 때문에 사내연애는 지양하는 편이라, 도무지 자주 봐서 정이라도 들 만한 사람이 없었다.
부모님은 결혼은커녕 연애도 하지 않는 딸이 걱정되었는지 중매 업체에 거금을 내고 "값 떨어지기 전에 (시집) 가라."는 충격적인 말을 남겼다. 어른들의 강요와 부탁으로 나온 남녀의 대화는 겉돌았다. 어색한 공기에 기운이 눌려 손을 벌벌 떨며 뜨거운 커피를 홀짝이려다 입술을 데는 것이 예사였다. 처음 본 사람과 대화를 하는 일은 무진장으로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었다. 짧은 한두 시간의 만남 뒤에 집으로 돌아와서는 그대로 침대에 엎어졌고 다른 것을 할 의지가 모두 사라진 무의미한 주말을 보내게 되었다.
‘이번에는 괜찮은 사람이 나오지 않을까?’라는 기대는 매번 실망으로 바뀌어 점점 새로운 만남을 기피하게 되었다. 더구나 내 정보가 주선업체에 등록되어 있는 한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이 아니어도 계속 선이 들어올 테니 각각의 만남들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마치 아리아나그란데의 Thank you, next라는 노래의 제목처럼 '어쨌든 만나서 고맙긴 한데, 다음 사람~'이라고 하게 되는 것이었다.
40대 중반의 세무사인 유리 언니는 자신의 나이쯤 되니 괜찮은 남자는 이미 갔거나 갔다 왔더라고 농담을 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니 주위에 괜찮다 할 만한 사람이 없는 것이 나만의 어려움은 아닌 것 같아 이상한 안심이 되었다.
만남이야 억지노력으로 횟수를 늘릴 수는 있겠지만, 사랑이 어디 나 혼자의 의지로 되는 일이던가? 스치는 바람에도 휘청 흔들리는 것이 마음인지라 늘 로맨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우연한 만남을 꿈꾸고 있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언제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사랑의 가능성에 마음을 쏟는 것보다 지금은 그저 내실을 다져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내게 주어진 자유로운 시간을 배움의 즐거움으로 채우며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 여길 수 있도록 나를 아끼고 사랑할 것이다. 자고로 Love는 My self부터 시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