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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여름 Jul 28. 2023

달님에게

몇 번의 선을 흘려보낸 뒤, 새로운 남자들을 만나는 일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나를 보고 엄마는 답답해하며 말했다.

남자를 만나려면 노력을 해야 할 것 아니야, 노력을!

글쎄, 인간관계에 전병인 나는 다른 사람과 친해지는 데 있어서 도무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학창 시절, 친해지고 싶은 친구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것이 두려워서 자기 전에 달님을 보며 ‘제발 수진이랑 친해지게 해 주세요!’라고 간절한 소원을 빌었던 소녀는 이제 남자를 만나려 해도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모르는, 아가씨와 아줌마 그 사이 어디쯤으로 보이는 어른으로 자라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성향은 엄마를 닮은 것이다. 엄마는 종종 “AB형이 좀 그런 데가 있잖아~”라며 우리가 닮은 이유를 설명했다. 나는 아닌 줄 알면서도 “AB형이 좀 그런 데가 있지.”라며 엄마의 장단을 맞췄다. 솔직한 듯하면서도 아주 가까운 사람이 아니고서야 결코 울타리를 허물지 않는 성격 탓에 친구가 그리 많지 않은 점도 비슷했다.


그런 엄마가 자꾸만 선을 보라며 자리를 만들 때 의심을 했어야 했다. 엄마 친구의 아들이나 엄마가 아는 누군가의 아들이 그렇게 많을 리가 만무했다. 엄마는 이번 주말에 만날 사람이 친구의 아들이라고 했으면서도 수화기 너머의 가짜 친구와 통화를 하며 두 손으로 핸드폰을 모시듯이 잡고 깍듯하게 높임말을 썼다. 나는 직감했다. ‘아, 내가 주선 업체에 가입이 되어 있구나!’역시 나의 허술은 엄마에게 물려받은 것이 확실했다.


내가 남자를 유혹하려 짧은 치마를 입고 엉덩이를 흔들어대지 않은 탓으로 엄마는 160만 원이라는 거금을 주선 업체에 갖다 바치고도 모자라 나의 개인정보를 넘겨버리는 끔찍한 노력을 저질러 버렸다. 내가 받은 상대에 대한 정보가 아래와 같았으니 내 정보도 아마 비슷한 수준으로 팔리지 않았을까?


▪이름: OOO 씨 (O 씨 하며 성만 알려 주는 경우도 있다.)
▪생년월일: OO년OO월OO일생
▪최종학력: OO대학교 OO학과 졸
▪직업 및 직급: OOOO회사 5년 차 대리
▪외모: 176cm, 외모 깔끔 (내 경험상 정말 깔끔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가족사항:
   1.      2 남중 첫째, 동생 기업근무
   2.      부친 OO전자 상무로 퇴직 현재 대전 회사 부사장
   3.      모친 대졸 경제력 있음
▪자산: 집 마련가능 또는 부산해운대 근처 아파트 10억짜리 있음


통화가 끝나고 나는 곧장 엄마에게 따져 물었다. 엄마는 거짓말을 들켜서 놀랐다가 곧장 명령했다.

어쨌건 선보러 가!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이라고는 그저 부지런히 선을 보러 나가는 것밖에 없었다. 엄마, 아빠 그리고 주선 업체가 번갈아가며 차리는 밥상에 그저 숟가락 하나 얹는 작은 노력이라도 하려면 말이다.

자칭 100번에 가까운 선을 봤다는 박 선배도 노력을 하라고 말했다. 36살까지는 기회가 있으니 노력을 해야 한다고. 박 선배의 애정 어린 조언에 따르면 내 시간은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 염병할 시한부 인생의 기준은 누가 정한 걸까? 나는 그 말을 듣고 갑자기 우울해졌다. 기회의 시간이 곧 닥칠 것임에 그랬던 것이 아니라, 기회의 기준이 되는 시간을 누군가가 내 허락도 없이 정해버리고 알기를 원하지도 않은 당사자 앞에서 선언한다는 사실에 울적함이 밀려왔다. 기회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도 내 결혼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될까? 아니, 내 앙증맞은 새끼발가락을 걸고 장담컨대 내게 폐경이 올 때까지 엄마는 기회의 시간이 남았다고 주장할 것이다.


처음부터 순순히 선을 보러 나갔던 것은 아니다.


한 살이라도 어려서 잘 팔릴 때 시집가야 할 것 아냐?
내가 무슨 시장 가판에 배추 떼기야?
잘 팔리긴 뭐가 잘 팔려? 나 가지고 장사해?


엄마가 소리를 지르면 진저리를 쳤다. 그녀가 가시 돋친 말을 하면 결코 지지 않았다. 내가 선보기를 거부한 날부터 우리는 매일 링 위에 올라갔고 서로 다쳐서 내려왔다. 나는 반복된 엄마와의 입씨름에 지쳤다. 결국 어떻게든 나를 좋은 값에 팔아넘기겠다는 그녀의 열정에 곧 백기를 들고 말았다.


엄마가 답답한 마음에 나를 선업체에 등록시킬 동안 나도 인연을 만나기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에 안정적인 직장을 갖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자기 계발을 위해 책을 읽고, 법규를 잘 지키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엄마나 박 선배가 생각하는 노력과 나의 노력은 결이 달랐다. 하지만 내가 이런 생각을 피력한다고 한들 엄마는 ‘꿈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넌 너무 이상적이야!’라고 말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어쨌든 선을 보러 나간다. 어떤 노력이건 간에 나중에 내가 그것을 하지 않았음을 후회하게 될까 봐. 그리고 이상 속에 살고 있는 나와 현실에 살고 있는 엄마가 또 서로의 괴리를 좁히지 못하고 싸우게 될까 봐 말이다.


뭐든지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이제는 선을 보는 것이 더 이상 벌레 먹은 배추가 된 기분은 아니다. 그저 아르바이트를 하는 느낌이랄까? 인간관계에 서툴었던 나는 중학교를 거치면서 조금씩 사회화가 되었고 몇 십 번의 선이라는 인터뷰 실습을 통해 대화 분야의 준 전문가가 되었다고 자부한다. 상대편의 눈을 보며 말을 걸고 반응하는 것은 이제 내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불행한 것은 그래서 더 이상 만남이 새롭거나 기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출근하는 마음으로 선을 보러 나가는 요즘처럼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말이 유난히 가슴에 닿는 날이 없었다.


모순되게도 선을 볼수록 결혼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나는 사랑을 속삭이고 웃고 떠들고 장난칠 사람을 원했지 단순히 결혼이라는 울타리를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가 자산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어머니가 대학을 나왔는지 보다 상대의 취미가 무엇인지, 싸웠을 때 어떤 방식으로 풀어가는 것을 선호하는지 등이 훨씬 더 궁금했다. 결혼을 원하는 남자는 모든 것이 급했고 연애를 원하는 여자는 모든 것에 느긋했으니, 둘이 만나 제대로 된 대화의 바퀴를 굴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소개팅을 보는 족족 남자와 사귀게 된 20대의 나와는 달리 선을 보는 30대의 나는 매번 시간만 낭비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많아졌다. 괜히 남의 시간만 뺏고 온 것이 아닌지 선을 보고 돌아오는 길엔 발걸음이 무거웠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관계를 쌓아간다는 것은 노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사랑 앞에서 엄마의 노력과 나의 노력은 모두 무용했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달님에게 소원을 빌어 이루어지는,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니까. 마침 보름달이 뜬 오늘 밤에는 오랜만에 달님에게 소원이나 빌어봐야겠다.

‘달님, 사랑 따윈 개나 줘 버리고 부자나 되게 해 주세요.’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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