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와 같이 결혼을 잘 못한 여자가 있다면 반대로 이 세상 어딘가에는 결혼을 기막히게 잘한 여자도 있을 것이다. 한데 어째서 내 주위엔 죄다 결혼을 하지 말라는 친구들뿐일까? 절친한 친구인 선희는 7년의 연애 끝에 부모님의 반대를 꺾고 어렵게 결혼을 치렀다. 힘들게 한 결혼이니만큼 행복에 겨워 쌈바 춤을 출 줄 알았는데 첫 번째 명절을 보낸 뒤 속에서 천불이 난다며 나를 불러내었다. 그녀는 영하의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스커피를 시켜 한 모금 쭉 빨아들이고는 소파에 드러눕다시피 기대었다.
내가 진짜 네 친구니까 말해주는 건데, 넌 결혼하지 마라.
그녀는 빨대로 얼음을 휘저으며 지난 명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선희는 차례를 대신해서 시댁 식구들과 무려 2박 3일 동안 캠핑을 떠나게 되었다. 새벽에 일어나 시어머니와 시누이를 모시고 숙소에 도착한 그녀는 그곳에서 또 다른 시댁 친척들을 만나 낯선 시간을 보냈다. 모두들 그녀에게 잘해주려고 했지만 불편한 마음이야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한다.
마지막 날에 시어머니를 댁에 모셔다 드리며 반찬을 얻으려고 따라 올라갔는데 집을 비운 사이 냉장고가 고장이 나서 물이 새고 있었다. 그 바람에 얼렁뚱땅 시댁의 냉장고 청소까지 하게 되었다.
점심을 먹고 가라는 시어머니의 말을 어색한 웃음으로 넘기며 집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그녀의 남편이 상의도 없이 말했다.
이따가 저녁 먹으러 올게요.
출근까지 몇 시간 남짓한 휴식마저 빼앗긴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서 남편과 대판 싸우고야 말았다며 남자친구도 없는 나에게 결혼하지 말 것을 신신당부하였다.
‘명절 내내 시댁 식구들이랑 같이?’ 친엄마와도 하루 종일 붙어있으면 예민해져 가시를 뿜는 나로서는 도무지 상상을 할 수 없는 일정이었다. 하루 중 고요하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나에게 사람 냄새가 진동하는 3일은 고문에 가까운 수준이고 감당 불가한 시간이다. 더군다나 명절 내내 침대에서 5 미터를 벗어나지 않는 나른한 휴가를 보낸 직후라 기혼인 그녀의 삶이 나의 것과 더욱 대조적으로 보였다. 조용하게 보낸 명절이 조금 심심하긴 했지만 그녀의 표정을 보니 차라리 무 남편이 상 팔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새로운 관계와 중재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내지 못하는 남편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친구를 보면서 언젠가 겪을지도 모르는 나의 결혼생활을 생각하게 되었다. 어른 알레르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들과 함께 있으면 괜히 궁둥이가 들썩이고 그렇게 내 집에 가서 드러눕고 싶다.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라고 시작하는 말을 들으면 필히 기분이 나빠지는 것처럼 편하게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씀은 무엇 하나 편하지가 않은 상황에서만 나온다. 그들이 냉장고 청소를 시작하면 행주라도 빨아야 할 것 같고 설거지를 하면 과일이라도 깎아야 할 것 같다. 가정교육을 잘 받은 탓으로 예의 있거나 싹싹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강박이 발동해 아주 불편하기가 그지없다.
그래서 선희 또한 집으로 돌아가서 남편과 목에 핏대를 올려가며 싸우고는 저녁을 먹으러 시댁에 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방긋 웃었을 것이다. 별일이 없어도 어른들께 안부 전화를 하고 생신과 명절을 챙겨야 한다는 의무감은 상상만으로 피로를 준다. 피로 연결된 내 가족도 가끔 보아야 애틋하다. 오래 본다고 사랑스러운 것은 문학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현실에서는 오래 볼수록 신경만 긁힌다. 부모는 나의 것 둘 만으로도 충분히 어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