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발 비행기의 통로 쪽 좌석에 앉아서 이륙을 기다리고 있을 때, 아기를 안은 창가 자리의 여자가 그녀와 나 사이에 앉은 남자를 보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여보, 기저귀 좀 갈아도 될까? 축축해.”
아기 똥은 냄새도 안 난다고. 혹은 쉬야라서 괜찮다며 식당이나 카페에서 기저귀를 가는 몰상식한 부모들은 여럿 봤어도 비행기 안에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녀는 왜, 내가 아니라 자신의 남편에게 양해를 구했던 것일까? 난데없이 일면식도 없는 아기의 엉덩이를 보게 되어 기가 막히는 사람은 바로 나였는데!
노키즈존이 생기고 맘충, 앱충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는 것을 보면 세상에는 나와 비슷한 종류의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아동 혐오를 멈춰 달라고 소리를 높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평화로운 휴식시간을 갖고 싶어서 노키즈존을 속으로 바랐던 것이나 공중도덕을 모르는 아이들과 예의 없는 부모들을 보고 아주 돌아버릴 지경이 되어 인상을 찌푸렸던 것이 어쩌면 아동 혐오였을까? 그렇다면 혹시 아동을 혐오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내가 엄마가 될 자격이나 갖출 수 있는 것일까?
손 닿지 않는 거리의 아기만을 좋아하는 나도, 아기를 돌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집 근처 카페에 가서 글을 쓰다가 종종 아기를 안은 내 나이 또래의 여자를 보게 될 때가 있다. 멀쩡하게 잘 놀던 아기가 어떤 이유로 울기 시작하면 그녀는 아기를 안아 어르고 달래기 시작하다가 기어코 높아지는 목청에, 어쩔 수 없는 얼굴이 되어 채 식지도 않은 커피를 두고 쫓기듯 나가게 된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것은 여유롭게 차 한 잔 마실 시간도 쉽게 갖지 못하게 되는 일이다. 내 시간을 아이를 키우는 일에 내어주기에는 나는 아직도 혼자로서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직장을 다니기 전까지는 베이비시터를 구해서 자유 시간을 가지며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 수령 200만 원이 넘지 않는, 심지어 언제 넘을지도 모르는 한심한 내 월급으로 베이비시터는 가당치도 않은 말이었다. 아니, 그보다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회사를 다니는 것만 해도 축복이라는 것을 사회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친정 집에 초등학생인 아들을 맡기는 김 주임은 결혼을 하더라도 엄마에게 아기를 맡기지 말라고 당부했다. 아이를 보는 일이 고되어 친정 엄마가 한 해가 다르게 늙는 다며, 엄마의 사진을 보면 아기를 맡기기 전보다 너무 늙어서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부모님이 나 때문에 더 이상의 고생을 하는 것도 싫은데, 돈도 없는 내가 아이를 낳는다면 여러모로 민폐일 것이 분명했다.
아이를 낳는 것이 부담이라면, 부부끼리 산다는 선택지도 있었다. 팀장 중 유일한 여자였던 홍 팀장은 결혼 7년째 아기가 없었다. 아기를 가지면 직장에 계속 다닐 수 없을 것 같다는 것이 이유였다. 실제로 디자인 회사에 다닐 때에는 육아휴직을 쓰고 돌아온 여직원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또 시댁과 친정에 매달 각 100만 원씩의 생활비를 드리고 있는 친구 수정도 애까지 있으면 답도 없다며 딩크를 선언했다.
아기 가지기를 미루거나 포기한 부부들도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이제껏 아기를 가지고 싶지 않다는 남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 아기를 가지는 것이 두렵다는 나의 말에 네가 원하면 아이를 갖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던 남자도 시간이 지나자, 결혼해서 살다 보면 생각이 바뀔 것이라며 별 문제가 아니란 듯이 넘기기도 했다. 물론 사람이란 내일 일조차 모르는 것이기에 그의 말대로 살다 보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무슨 커피 먹을래?’ 따위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에 아이가 없을 수도 있다는 중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나의 두려움을 왜 이리 가볍게 생각했던 것일까?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 그는 용감한 여자를 만나서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겁이 많은 나는 혼자서 생각에 잠긴다.
내 동생은 그런 나를 보고 쓸데없는 잔걱정이 많다고 했다. 나도 안다. 나란 사람은 무슨 일이든 닥치면 군말 없이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심지어 삶에 애정도 많은 데다 꽤 열정적이기까지 한 사람이라서 비혼으로 살든 애 엄마로 살든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도 기꺼이 할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굳이 그런 피곤한 일을 닥치게 하고 싶은 마음이 도무지 생기지가 않고 그것이 때때로 나를 결혼 부적격자처럼 느끼게 한다.
나이가 이쯤 되니, 어쩌면 결혼하지 못하고 영영 혼자 살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간혹 ‘내 장례는 누가 치러주지?’ 같은 걱정을 할 때도 있지만 먼 미래의 일을 대비하기 위해서 지금 빨리 결혼을 해서 아기를 낳아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기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경제력을 갖췄을 때,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희생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엄마가 될 자격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내게 그럴 자격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